<어둠과 흑백, 그리고 차세대 신호>

 

 

어둠이 무서워서 태양을 훔치다.

너는 송전탑을 기어오르며 별과 별을 지웠다.

유연한 마음을 둘둘 말아놓고, 너는 찾는다.

신호를, 혹은 이리저리 흔들리는 불꽃들을

 

아무것도 없는 깜깜한 벌판 위

무한한 탑의 경계에서 울음을 터뜨린다.

무수히 많은 신호들이 자신을 관통하는걸 느끼고,

너는 당황스러움에 잠기다 곧 다시 새로움을 느낀다.

 

툇마루에서 나는 지켜보았다.

저 멀리 비친 너의 위태로운 그림자.

달빛과 함께 휘어지는 너의 잔영.

나는 이따금씩 소름끼쳤다.

 

시대를 넘어가야한다.

너는 계속해서 기어오른다.

끝없이 기어오른다.

나는 너를 흑백 TV로 보았다.

 



우선 내가 A에 대해 느낀 건, 나이가 그렇게 많은 것 같진 않고 확실히 공부의 양은 심각하게 빈약하며, 성격도 그리 좋은 것 같지 않다는 인상이지만


그래도 시에 대한 열정은 어느 정도 있는 것 같고 절대 시를 잘 쓴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름 많이 써본 티가 나는 건 사실이라고 생각해




A를 까는 애들과, 그거에 게거품을 물고 달려드는 A를 보면서 A에게 안타까움을 느끼게 됐던 이유는


분명 까는 측에도 이유가 없는 건 아니고 나름 적절한 지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에 비해 A의 반론은 공부의 빈약함 때문에... 내가 보기에 자기가 방어할 수 있는 최소한의 부분도 방어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를 깎아먹고 스스로를 더 우습게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야




결론부터 말해서 저 시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것까진 가혹하다는게 내 생각이고


여기서 말하는 의미란 주제의식이나 시어가 상징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야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시에서 어떤 시에서 의미를 획득하는 것은 맥락 속에서, 다른 시어들과의 연관성 속에서 같아


누구나 알겠지만 모든 시어가 다른 대상을, 혹은 어떤 정서를 지시하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단어는 빼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시어가 있는데, 그 이유는 시의 전체적 맥락 속에서 연관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즉 이 시 안에 들어 있어야할 근거를, 존재 이유를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그럴 때 저런 시어를 '의미 없는 단어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고


다시 말해서 좀 더 적확하게 지적하기 위해서 우리는 '저 시어에 의미가 있느냐'라고 묻기 보다 '꼭 저기 저 시어가 들어가야 하는 이유는 뭐냐', '저 시어를 쓴 이유는 뭐냐', '저 시어가 꼭 쓰여야 하는 시적 근거는 뭐냐' 같은 방식으로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위의 시를 보자...나도 자세히 볼 생각은 없고




1연 1행에서 '어둠이 무서워서 태양을 훔치다'라고 시상을 제시하지


그리고 2행에서 송전탑을 오르는데... '별과 별을 지웠다'는 사실 적절하지 못한 거 같아


어쨌든 1행과 2행에서 제시하는 이미지는 "어둠에 대한 두려움"과 "높이"에 대한 이미지 이렇게 두 개지


게르샤는 "제목은 왜 저렇게 지었으며 송전탑의 의미와 흑백TV에 대해서 설명 바랍니다. " 라고 했는데


내가 봤을 때 송전탑이 이 시에서 '자기의 자리', '계속 남아있어도 될 최소한의 이유'를 획득하는 지점은


멀리 갈 것 없이 1연 4행에서 '신호'라는 시어를 사용함으로써, 송전탑의 이미지를 변주해가며 연계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부분부터라고 생각함



2연에서 "아무 것도 없는 깜깜한 벌판 위"에서 "너"는 울음을 터뜨리는데


역시 어둠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첫째 이미지와 연계가 되고


"무한한 탑"은 "높이"에 대한 이미지를, "무수히 많은 신호들"은 다시 송전탑의 이미지를 변주하고 있는 부분이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상한계절이 "툇마루부터 말아먹었다"고 지적한 건 상당히 적절하게 느껴짐


3연에서 A는 "툇마루에서 나는 지켜보았다."고 갑자기 '나'를 등장시키는데, 지켜보는 주체가 굳이 등장해야할 이유가 없을 뿐더러 지켜보는 위치가 '툇마루'로 설정된 것도 뜬금없어. 물론 높이에 대한 관점에서 탑에 오른 너와 낮은 곳에서 보는 나를 대비시킨 의도가 있었나 싶기도 한데


중요한 건 우선 앞서 말했듯이 '나'라는 존재 자체가 이 시에서 등장해야할 근거를 전혀 획득하지 못하고 (3연 4행에서 "나는 이따금씩 소름끼쳤다"라고 그야말로 소름끼치게 공허한 진술이 한 번 더 나올 뿐...)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나'가 있는 공간인 툇마루도 공허한 공간이 되는 거지. 게다가 단어가 자체적으로 갖는 이미지의 결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송전탑이나 신호, 경계, 무한한, 탑, 이런 시어들 사이에 갑자기 '툇마루'라는 약간 시골 느낌이 나는 시어가 갑자기 등장한 것 자체도 맞지가 않다고 생각돼


아마 A가 직접 툇마루에서 송전탑을 보고 쓴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데... 만약 그렇다면 자신의 사적 상황을 시에 너무 집어넣으려 했던 걸로 보여. 말했듯이 집어 넣으려면 최소한 독자가 저 단어를 왜 쓴 것 같다는 것에 대한 설득은 되도록 시를 구성해야지



그리고 이제 4연에서 A가 하고 싶었던 말이 비교적 직접적으로 나오지. "시대를 넘어가야 한다" 댓글 중엔 아무 의미 없이 멋있는 말만 부려놓은 것 같다는 평도 있었던 것 같은데, 뭐...나는 그런 것 같진 않음 오히려 너무 추상적이고 직설적인 화법이 문제가 되겠지


다시 말해서 어둠은 말 그대로 뭔가 어두운 시대, 혹은 개인적 상황을 암시하는 거고... 송전탑으로 변주됐던 높이에 대한 이미지는 그런 상황을 넘어가고 싶은 '너'의 심정일 텐데


만약 내가 이 시를 비판을 한다면 그런, '어둠'으로만 표현되는 어떤 부정적 상황이 너무 추상적이라는 거지. 추상적이라는 건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막연한 느낌만으로 시를 이끌어갔다는 거고, 내가 뭔가를 요구한다면 '너'는 왜 어둠이 무서운가? 그 구체적 실상을 드러내야 하지 않는가? '어둠'이 무섭다는 건 너무 상투적 생각이지 않은가? 등등에 대한 것일 테고


마찬가지로 탑을 오른다는 것도 그나마 '송전탑'이기에 (시대를 넘어가야 한다는 진술이 나오면서 '신호'라는 시어, 즉 송전탑의 이미지도 조금의 설득력을 추가로 얻는다고 생각됨) 약간의 구체성을 얻는 거지, 뭔가를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기어 오른다'는 이미지로 표현되는 건 너무 상투적이라고 생각함. 추상적이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투적이란 것도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지. 내가 한 생각,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남들이 이때까지 해온 생각, 해왔던 표현을 그대로 차용하는 거니까.



마지막 행의 "나는 너를 흑백 TV로 보았다."는 게르샤의 지적과 반대로 이 시에선 그나마 가장 괜찮은 문장이라고 생각해. 시에서 뭔가를 표현하는 방식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여. 이를테면 A가 "시대를 넘어가야 한다"고 직접 말해야만 했던 이유는 그 생각을 직접 말하지 않고서는 시에서 그것을 전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즉 그 생각이 시에 형상화되어 있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일텐데, 그게 맞지.


좋은 시라면, 이 시의 경우 이를테면 "탑을 올라야 한다"는 진술이 그 자체로 "시대를 넘어가야 한다"에 준하는 어떤 심상을 불러일으켜야 하는거지. 그러려면 왜 탑을 올라야 하는지, 탑을 오르는 건 어떤 의미인지가 여러 사물과 이미지로 형상화가 잘 되어 있어야 할 테고..


그래서 직설적으로 저렇게 말해버린 건 시적인 표현 방식이라고 하기 어렵겠지. 그렇지만 "나는 너를 흑백 TV로 보았다"는 문장은 송전탑의 이미지, 그리고 어둠(흑백)의 이미지를 버무리면서 이미지로 뭔가를 드러내려는 시도가 보였던 것 같아. 


그리고 제목을 보면 "어둠과 흑백, 그리고 차세대 신호"인데 '어둠'과 '흑백'을 굳이 나눠놓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크게 '어둠'과 '차세대 신호' 즉 뭔가 부정적인 상황과, 그 시대를 넘어야 한다는 이미지가 결합되고 있는 거지... 그런데 송전탑에서 보내는 신호가 꼭 차세대 신호일까? TV에서는 뭔가 '차세대' 적인 무엇이 나오는 상황을 난 본적이 없는데...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 어쨌든.




그렇지만 이 모든 글에 동의한다 해도 "그래서 결국 탑을 오른다는게 뭐냐?"는 질문을 해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해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왜 시대를 넘는게 꼭 탑을 오르는 걸로 표현되어야 하느냐"일 수 있겠지만... 어쨌든...전자의 질문은 내가 중요하다고 한 질문의 거친 표현인 경우도 있을 것 같고


어쨌든


나는 그걸 화자의 가장 직설적 진술에 연관지어 해석했지만


그 해석이 확실한 것도 아니니 일단 그 문장을 없다고 놓고 생각해보자.


다시 말해서 이 시는 시대를 넘는 것에 대한게 아니라 그냥 탑에 오르는것만 묘사해놓은 것이다, 라는 거지



내 요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전탑이나 흑백TV같은 시어들은 이 시에서 나름의 자리를 찾고 있다는 거야


시라는 게 꼭 어떤 생각을 표현할 필요는 없는 거고, (앞서 밝혔듯 나의 개인적인 시론이지만) 이미지의 연계라는 큰 틀 속에서,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다고, 다시 말해 그냥 아무런 상징과 이차적 의미 없이 그냥 "탑을 오른다"는 행위 혹은 이미지 자체에 대해서만 시를 쓸 수도 있다는 얘기야



물론 "그게 좋은 시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할 말이 없어. 나도 개인적으로 그런 시를 보면 약간의 부족함이나 갈증을 느끼니까. 그렇지만 내가 알기로 현재 시풍에서 그런 식의 표현주의(?)가 그다지 큰 거부감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어


더 중요한 질문은 "그럼 그게 잘 표현됐냐?" 일텐데... 사실 나는 이 질문이 우리가 진짜 초점을 맞춰야할 부분이라고 봐. 의미가 있고 없고는 먼저 읽히고 나서, 먼저 독자를 매혹시켜서 붙잡아 두고 난 다음에야 생각할 수 있는 문제 같고... 




자세히 안 본다고 했는데 그냥 쓰다 보니 엄청 길어졌네.


공감이 갔을려나 모르겠네. 어쨌든 이렇게 읽을 수도 있다는 정도의 관점에서 봐줬으면 좋겠음



비평하는 태도에 대해서야 어차피 디씨고 내가 말해봤자 듣지도 않을테니 나는 크게 하고 싶은 말은 없어


다만 내 경험을 비추어 A에게 한마디 한다면..


여기 시를 올리는 건 누가 읽어줬음 하니까 올리는 거고, 어쨌든 읽기 힘든 (우리가 시는 다 못쓰는 건 사실이잖아) 시를 읽고 평을 해줬다는 건 그 자체로 고마워할 일인 것 같아


물론 댓글 다는 사람도 재밌자고 하는 거지 뭐 봉사식으로 하는 건 아니지만...



그리고 내 경험으로 봤을 때 일부 부적절한 말을 하거나,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 시를 읽은 사람이 갖는 느낌은 의외로 정곡을 찌르는 부분이 많았던 것 같아


당장 납득이 가지 않는다 해도 하여튼 뭔가는 있으니까 그런 지적을 했다는 거고, 물론 나는 주로 아는 사람한테 보여주니까 그런 신뢰를 더 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어쨌든 나름의 효용이 있다는 거야. 그러면 싸가지 없는 말투 정도는 그에 대한 비용으로 감수하고 참아 넘길 수 있지 않을까?


내 생각에 자기가 의미를 분명히 가지고 썼다면 다른 사람이 '네 시에는 의미가 없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의미가 있는 거잖아?


전달이 되지 않았구나, 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면 된다는 거지, 혹은 최소한 '누군가에겐 전달이 되지 않았구나' 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면 되는 거지, 굳이 다른 사람한테 "이 시는 의미가 있어!" "의미가 없어도 좋은 시야!"라고 납득시켜야 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그걸 잘 모르겠다는 거지




쓰다 보니 엄청 길어졌네 사실 좀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기분전환 겸으로 몰입할 게 필요했던 거 같아..


영양가는 없는데 너무 긴 글이라 미안하고 다들 건필하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