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who is cruel to animals becomes hard also in his dealings with men. We can judge the heart of a man by his treatment of animals. 동물에게 잔인한 사람은 사람과 거래에서도 굳어진다. 우리는 동물 대우로 한 사람 마음을 판단할 수 있다.
Always recognize that human individuals are ends, and do not use them as means to your end. 항상 사람이 목적이라고 알라, 그리고 사람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쓰지 말라.
Live your life as though your every act were to become a universal law. 모든 행동이 보편법칙이 되는 것처럼 살라.
What can I know? What ought I to do? What can I hope? 무엇을 알 수 있나. 무엇을 해야 하나. 무엇을 바라야 하나.
Immanuel Kant 임마누엘 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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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 of the cr0oked timber of humanity no straight thing was ever made. 인간성 구부러진 나무에서는 곧은 것이 맹글어진 적 없다.
http://en.wikiquote.org/wiki/Immanuel_Kant
사람은 기계가 아니라는 것. 그놈은 꼭 나를 기계로 보더군. 처음은 아주 례의바르게 나오는데 막상 만나고 보면 아주 나를 개나 돼지나 기계처럼 다룬다는 것. 그런 놈이 글도 쓴다더군. 써봤자 오죽하겠는가만. 또 한 놈은 역시나, 로동을 해서 먹고 사는 이지만, 이 놈도 사람을 기계처럼 가지고 놀기를 좋아하는 놈. 그렇다고 나는 안 그러냐면 오죽하겠는가 하는 것. 과거엔 나도 사람을 개 돼지같이 욕설로 사람 부리기도 하였던바.
동물에게 잔인한 사람은 사람과 거래에서도 굳어진다. 우리는 동물 대우로 한 사람 마음을 판단할 수 있다.
저기에 나오는 "동물"은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한 무언가를 지칭하는 거라고 이해하면 되나? 왜냐하면 이전의 동물과 지금의 동물은 개념 자체가 아예 다르잖아. 이전에 동물은 지배의 대상이었고, 그들과의 소통은 전혀 무관심이었음. // 사람은 언어에 속한 동물임.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으면 대상은 존중 받지 못함. 예컨데 노땅이 아이를 무시하는 것, 아이가 노땅을 무시하는 것. 동물을 食으로만 보는 자, 동물을 정서 교감 가능 물체로 보는자. 이러한 맥락에서 더 나아가, 채식주의자의 사고 방식까지 추측해보자면, 그들이 식물을 食로 이해하는 까닭은 의사소통 불가능 때문에 그러한 것. 동물도 생존본능과 생각이 있고, 식물 역시 있고, 벌레와 미생물 역시 있음. 모두 있는 것. 하지만 차별이 존재하지. 이러
하지만 차별이 존재하지. 이러한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원활함에 기반한 것.
커뮤니케이션은 한 개체를 세상의 주체로 인정해주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을듯. 대화가 통하면 대상의 존엄은 존중 받아야 마땅한 것이 되고, 대화가 통하지 않으면 압살의 대상임. 의견 차이로 빚어진 갈등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듯.
이를 공감능력이라고도 표현하고 싶음. 예컨데 현대의 가장 큰 관심사 중의 하나인 사이코패스, 그들의 범죄행위는 공감능력의 결여에서 비롯된 것임. 그들이 남들의 고통에 무관심한 것은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능하지 않기 때문임. 대개 공감은 오감을 통해서 이루어짐. 사람을 보고 "이야 예쁘다!"라고 생각하는 미적 공감, 순수하게 목소리만 듣고 감동하는 청각적 공감, 대화를 하고 서로의 의견이 일치됨에 따라 화학반응 하는 구어적 공감, 그와 비슷한 지적 공감 등등...... 많겠구만. 모두 커뮤니케이션의 일련임. 하지만 사이코패스는 이러한 것들에 완전히 문제가 있는 것. 예컨데 이런 것임. 도살자가 개돼지를 잡을 때, 그들은 그들의 언어로 호소 함. 대개 소음.
하지만 도살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지(예외가 있을 수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를 들어서). 그때 죽음의 문턱 앞에 선 가축은 왈왈, 혹은 끼익끼익 소리를 지른다. 내가 글을 여기까지 쓰고도 보통의 사람은 와닿지 않을 것. 하지만 그들의 말을 사람 말로 해석하면 바로 이러이러하다. 쇠망치 앞에 선 개돼지가 말하길 "내 고기를 먹지마! 내 고기를 먹지마!" 아예 울림이 다르지. 그들의 왈왈, 끼익끼익은 "내 고기를 먹지마!"라는 의미임. 하지만 우린 그들의 언어에서 어색함을 느끼고 무시하기에 일수. 난 이런 걸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이라고 봄.
그렇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감. 칸트가 말한 동물은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은 무언가"를 지칭하는 것. 이에 해당되는 것은 동물이나 식물을 제외하고도 지적 장애인, 외모가 추한 사람, 목소리가 이상한 사람 등등과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고, 그 외에도 비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사람과의 언어소통을 논리로 이해하려는 것, 남이 뭘하든 무관심함 등등이 될듯.
윗 사람은 칸트를 전혀 모름. 괜히 좀비가 아니네
읽은 적이 없어서......
coesm // 칸트를 잘 아시는 분 같은데, 첫 번째 명제에서 칸트는 꼭 이렇게 말하는 거 같거든요? "동물을 대하는 자세가 사람과의 교제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 이거 사람과의 교제는 무슨 말인지 알 거 같음. 그러면 동물은 무슨 말인지 아심?
인터넷서핑하겠음.
그냥 일상적 의미의 동물임. 밑의 사람을 항상 목적으로 대우하라는 보편 격률과 관련이 있음. 사실 칸트에게 있어 동물은 잘 대해줄 필요가 없음. 그러나 동물을 잔인하게 대하는 사람의 품성이 인간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으므로 잘 대해주라는 것.
칸트에겐 인간 그 자체가 존귀한 것이라고 쉽게 생각하면 동물을 잔혹하게 대하게 되면 인간을 존귀하게 대하지 못할 수도 있으므로 동물에게 잘 해라, 라는 거.
ㅀ가 저 "동물"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문장을 게시한 까닭은, 저 문장이 칸트의 핵심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추측함. 그래서 읽지 않은 나로서는 오버할 수 밖에 없었음. ㅈㅅ, 조금마 더 묻겠음. 난 칸트를 읽지 않은 사람임. 그래서 고등학교 수준의 질문이 될 것.
[신 - 인간 - 동물]의 순으로 이성의 우위를 가늠할 수 있을 것임. 신은 곧 절대선이고 동시에 완전한 이성체임. 사람은 완전한 이성이 아니라, 신생아처럼 잠재적 이성체임. 즉 신을 닮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 그래서 끊임없이 이성(신 닮기)을 추구함. // 칸트는 인간을 그 자체로 존엄하다고 했음. 그래서 마땅히 존중해줘야 하고, 그것은 동시에 마땅한(보편적인) 것임. 이러한 사고는 이성을 통해서 일어남. 또한 이성이 깊어질 수록, 이러한 존중은 더 깊어짐.(이는 완전한 이성인 신을 닮아가는 과정임) 따라서 자신의 이성의 하위격 존재를 존중하는 것은 지극히 이성적인 것임. 여기서 동물을 존중해라는 말이 나온 것이라고 생각함.
그러니까 신은 사실 전지전능한 지져스가 아니라, 사실은 완전한 이성체인 것으로, 즉 사람이 추구해서 닮아가야 할 어느 목표라고 이해해버린 것임. 신은 사실 이성의 비유일 뿐이라는 것임. 동물 역시 일종의 비유. 이성의 우위일뿐. // 방금 잠깐 서핑하고 난 후, 난 이렇게 생각을 바꿈. 사실 이것조차도 아니고 신은 정말 신이고, 동물은 정말 동물임?
칸트의 신은 그냥 신이 아님. 기존의 신 증명을 다 부정하기도 했고, 사변적 증명이 불가능한 것에 대해서는 함구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임. 그저 그가 최고선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요청'되는 요청적 신이며 때문에 기존의 아퀴나스나 데카르트의 신과는 성질이 전혀 다름.
그니까 칸트는 전통적 의미의 유신론자라고 부를 수가 없음. 뭐 선의지를 가지고 있는 인간과 불가분에 관계에 있는 신이긴 하지만. 그러니까 칸트의 신은 그냥 신이 아니라 님이 말한 신과 오히려 가까울 거임.
그러나 저기서 말하는 동물은 그냥 동물 맞음. 물론 이성적 능력이 결여되어 있고 존귀한 존재라고 볼 수 없는 것도 맞음. 그러나 이성적으로 당연히 존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즉 선의지에 따르는 정언명령이 아니라) 동물을 하찮게 여기는 게 당연해질 때 그것이 인간 존재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해서(보편성의 격률을 어기게 될 것을 염려해서) 동물을 홀대하지 말라는 것임.
칸트의 신이 뭔가 찝찝한 이유는 칸트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여서 신을 어떻게든 남겨놓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추측됨. 사실 칸트의 인식론과 신 존재는 서로 충돌함. 그럼에도 어떻게든 신을 남겨놓기 위해 최고선을 정당화/도덕적 당위성을 부여하는 존재로서의 신을 얘기한 거. 굉장히 신에 대해 애매하게 말하는 부분이 많음.
많이 배웠음. ㄳ! 몇 마디 덧글로 이야기 나눠보시니 비로소 알았음. 땅강아지처럼 까불기만 하는 저랑은 전혀 다른 사고를 하심! 저도 상상의 나래만 펼치는 걸 벗어나서 어서 본격적인 공부를 해야겠어요. 많이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
겸손해서 좋음. 나도 많이 배우는 중임. 이런 얘기 하는 거 좋아함.
나도 고등학교 수준과 크게 다를 바 없음. 즐거웠음.
<becomes hard also in his dealings with men> => 사람과 관계에서도 힘들어진다[딱딱해진다]
해야함은 할수 있음을 내포한다 . -칸트형이 심부름 시킬때 자주 하던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