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전에 미리 밝혀둘 것은 나는 손보미 소설의 팬이라는 사실이고 최근에 나온 <상자 사나이>까지 모조리 찾아 읽은 사람이야.
소설 자체가 레이먼드 카버와 비슷하다는 건 손보미 자신도 밝혔듯이 이견의 여지가 없어.
그런데 바꿔 생각해보면 지금 그런 류의 글에 환호하는 한국소설의 현실에 비추어봤을 때
나는 가끔 한국문학의 성취가 그 정도 만큼(80년대 미국소설)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내 말이 비약이 심한 것도 알지. 나는 학부는 다른 공부를 했지만 대학원을 문창과로 왔는데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한국소설의 저변이 좀 약해보인다. (근대문물, 사상의 수용이 다른 나라보다 늦은 탓도 있겠지)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에 비해 트렌드가 조금 쳐지는 것도 사실이고.
한국 소설가들도 자기 한계라던지 지역색을 벗기 위해서 끊임없이 갱신하려고 노력하지만
힘이 딸리는 건 어쩔 수가 없나보다. 그래서 나는 손보미 소설을 읽을 때마다 조금 답답한 기분이 든다. (물론 내 주변에도 손보미 소설에 거부감 느끼
는 사람들이 있지만.) 쓰다보니 뻘글이 됐어.
대체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도 저도 어느 댓글에선가 말했지만 우리나라 소설은 아직 저변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그렇게 깊이가 있는 상태는 아니죠. 실험성이 강한 소설이라는 것도 사실 알고 보면 대개는 남미쪽에서 이미 실험되었던 것들. 그리고 사실 다른 나라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만 놓고 보면 소설은 커녕 책 자체를 많이 읽는 것도 아니고. 더 성장해나가야하는 판에 죽고있죠. 솔직히 이대로가면 문지 문동 같은 출판사도 그리 오래 못버틸 거 같다는 걱정이 됩니다.
한국 문학은 전통이 단절돼 있다. 근대 문물 수용이 늦어서라는 말이 맞는 말이긴 한데 거기에 조금 더 덧붙여 볼게. 사실 일제를 거쳐 광복 직후에도 문학은 있었다. 현진건, 김동인 등등 참 많았잖아? 근데 6, 70년대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문학의 맥이 끊기게 돼. 모두들 알다시피, 폭력적인 자본주의화의 영향이 컸어. 80년대에 와서야 저항하는 문학, 거대 담론의 문학이 나오고 90년대를 걸쳐 지금 2000년대에 이르게 되었지.
뭐 그렇다는 거고... 손보미에 주목하는 이유는, 부르주아의 냄새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 신선하잖아? 전기물 같은 형식도 꽤 신선하고 말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