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할 무렵, 나는 어떤 한 사람과 서울 변두리 단칸방에서 살았다.
작은 방이였다. 세 사람이 누우면 꽉 찰 크기였지만, 그 작은 공간을 사랑으로 채우고 싶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작은 단칸방에 꽉 차 있었던 것은 사랑이 아닌, 다른 불편한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
***
이 땅바닥은 매일 보고 걸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크게 나있는 돌부리는 항상 발에 채인다. 뽑아버리고만 싶은 장애물이다.
" 또 땅바닥 보고 걷는다. "
밖으로 나있는 작은 창문으로 그녀가 웃는 얼굴을 빼꼼, 내민다.
항상 퇴근시간만 되면 저렇게 싱글벙글이다.
헐레벌떡 뛰어나와 대문을 열어준다. 그리곤 얼굴을 가까이 내밀고 묻는다.
" 그래서 돈은 좀 받았소? "
" 받기는...우리 사장 자린고비인거 알잖아. "
항상 임금은 정확히 주면서 부려먹는 건 거의 막노동 수준이라니까. 빌어먹을 놈팽이 자식.
지친 몸을 달래기 위해 빛깔이 독특한 마루에 몸을 눕힌다.
" 일어나요. 주인이 마루 더러워진다고 싫어하잖아. "
" 뭐, 어때. 지금 없는데..."
일어나기 싫다. 몸이 녹초가 되어 천근만근 힘이 들어 움직일 기운도 없다.
이미 시간은 오후를 훌쩍 지났는지 밤하늘의 별빛이 아스라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윗부분이 떨어져 나간 가로등이 덜렁이며 불빛을 비추고 있다.
몸을 일으켜 마루에 걸터앉은 후,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나는 대체적으로 들떠있는 것 같았다.
휴일에 틈만 나면, 다방에서 차를 마시며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영화를 보며 감상을 나누며, 밤늦게까지 덕수궁 돌담길을 산책하곤 했다.
그것은 마치...
책에서나 보던 구라파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항상 친구들을 만날 때면 곧잘 우쭐해 지곤 했다.
대학 졸업을 기준으로 그들에게는 레디메이드한 인생이, 나에게는 구라파적인 삶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전거, 매표소, 영화관, 구멍가게, 빛을 내는 가로등, 새까만 연탄까지...
별것도 아닌 것에 알지도 못할 희열감을 내고는 곧잘 흥분했었던 것 같았다.
" 아~ 구라파가서 살고싶다."
" 왜요?"
그녀가 마른 빨래를 개며, 내게 물었다.
" 왜긴 왜야... 남들 눈치도 안 보고, 연애도 자유롭게 하고..."
푹, 한숨을 쉬며 말하니 그녀가 나를 보고 말했다.
" 그럼 우리 진짜로 외국 나가서 살까?"
외국 나가서 산다고?
그럴 돈이 어딨다고...
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지 않고, 하늘을 보며 말했다.
" 외국 나가기가 얼마나 힘든데... 돈도 벌기 힘들고. "
" 가서 벌면 되지. "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야. 하고 퉁명스럽게 내뱉자 그녀도 맞받아치듯이, 의지가 없는 건 아니고?
하고 비꼬는 냥 내게 말했다.
의지가 없어?
그녀의 말이 맞긴 맞았다. 진심으로 원했더라면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해 보았을 것이다.
근데 왜 지금까지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을까...?
아마 생각하건대, 나의 의지의 반은 그 사람과 있는 이 단칸방에, 나머지 반은 고향집에 놓고 왔을 것이다.
근데 이 의지라는 것이, 방향은 그녀를 향하고 있지만, 무게는 고향집이 더욱 무겁다는 것이다.
고향에는 그녀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 단 한 번도.
그렇기 때문에 나의 의지가 반으로 나뉘어져서 따로 생활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녀는 이런 나의 의지박약을 알고 있는지 내게 결혼을 재촉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녀의 의지는 우리가 살고 있는 단칸방에 꼭 눌러앉아 있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점이 부담스러웠고 미안했다.
만약 내가 단칸방에서 생활하고 있는 의지를 데리고 가면 그녀가 무게중심을 잃어서, 뒤로 고꾸라질 거란 생각이 든다.
나의 의지박약이 밉다. 나 자신도 밉다.
희생하고 있는, 아니. 희생당하고 있는 것은 그녀이다. 이런 나의 모자란 결단력 때문에 그녀가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가끔씩, 그녀의 해맑은 미소를 띤 얼굴을 볼 때마다 가슴 한 켠이 아려온다.
마치, 그녀의 미소가 슬픔을 의미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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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조 님의 작품 <기억의 촉감>을 개작하였습니다.기억의 촉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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