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습작

 

 

 

 

비 갠 후

물웅덩이 위로 뭉개 구름이 찬찬히 일렁일 때

구름의 엄숙했던 얼굴은 한결 가벼워지고

물방울들이 바닥에 새긴 표의문자 속을 백치가 되어 걸어갈 때

바닥, 바닥, 지느러미 없는 포유류의 우울함으로 물바다에 발을 담굴 때

예수의 얼굴도 하지 못하면서 물 위를 걸어갈 때

실은 걷는 것도 걷지 않는 것도 아니라서

신발은 지느러미가 돋아나 헤엄을 치고

신발만 눅눅한 속사정을 키울 때

난 아무 생각도 하기가 싫고

난 빨래가 하고 싶어져

난 자꾸 슬퍼져

네가 버리고 떠난

비누처럼 둥글고 깨끗한 이 세상

비 홀딱 맞으니 그제서야 훠언한 이 세상

난 집에 도착하자마자 거실에서 쓰러져

벌써 젖어있거든 바닥을 덮칠만 하지

내 몸에서 물이 자꾸 새어나와

난 녹고 있나 봐

난 녹고 있나 봐

바닥이 내 뼛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거 같아

난 온몸으로 바닥을 먹지

그러다가 벌떡 일어나서

가스레인지를 켜고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갈래

너가 버리고 떠난

양동이 속 걸레 같은 내 마음 넌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