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
언제부턴가 알아버렸다
우리는 끝도 없이 마취되고 있음을
한여름에는 무거워진 적란운이 모르핀을 주사하고
눈부신 겨우내 정제되지 않은 코카인이 흩날림을
나는 파스퇴르를 마시고
그녀는 스타벅스를 마신다
습관적인 국소마취다
명동 한복판에서 인형 뽑기를 하는 크레인이나
고성 공룡박물관의 전시창을 뛰쳐나온 티라노 사우르스나
신세계 백화점에서 루이비통이나 샤넬을 걸쳐보는 마네킹들을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견디겠는가
덕분에 우리는 하나도 아프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마취도 없이
자신의 허벅지살을 도려낸다
바비큐 그릴 위에 얹어 노릇노릇하게 구워내면
타자기를 두드리거나 붓질을 하면서 허기를 메울
좋은 밥상이 된다
누구보다도 먼저 아팠고
누구보다도 깊게 아프며
누구보다도 끝까지 아파할
사람들이다
노르웨이의 젖소를, 에티오피아의 커피빈을 생각한다
파스퇴르가 장내에 심어둔 유산균이
나를 찌른다, 나를 아프게 한다
조잡
뭐라는지 모르겠다 정신병자거나 시인이거나.
마취를 당해야만 견딜 수 있는 상황. 마취는 누가? 왜? 누구의 필요에 의해서? 마취가 그냥 됨. 이런 상황에서 마취를 당했어야만 말이 되니까. 근데 중간이 설명이 안 됨. 마취가 그냥 되는 일이 어딨나?
스타벅스, 파스퇴르가 마취제며, 마취의는 바로 우리들이다? 글쎄 언제 우리가 그렇게 의식 있는 사람이었을까. 터무니 없다. 내 생각엔 우리 중엔 자기가 마취된 줄도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일 거다.
우선 전체적으로 재밌게 읽었어. 판단은 본인이하는 거지만 개인적으로 1연이 설명적으로 읽혀서 2연부터 시작하는게 어떨까 생각했어. 그리고 행갈이를 어떻게하는게 더 효과적일지도 한번 생각해봐
시대정신이 담긴 매우 훌륭한 시입니다. 혜안에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