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하늘은 수은처럼 미지근했다

 

건물의 벽과 창틀과 옥상과 전선줄

 

어슴푸레한 방 안에서 창문 밖의 송전탑을 보다

 

아무 전조도 없이, 게슴츠레한 빛을 깜빡인다.

 

외로움은 푸른색 유화물감 수 억개를 쥐어짜내듯 밀려오며

 

예고없는 이 삶에 신비를 느꼈다. 아직 나는 어렸다.

 

새 한마리가 마지막으로 하늘을 그었다.

 

푸른빛 전혀 없이 약디 약한 밤하늘이 되었다.

 

구워졌던 쥐포가 딱딱해지듯, 내마음도 굳었다.

 

그저 껌껌한 어둠 속에서, 리모콘으로 TV를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