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우선 


  한국문학은 어떤 이유로든 다른 민족의 문학에 대해 우월하지도 열등하지도 않다


  고 봅니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더 우월한지 열등한지 비슷한지 모릅니다. 이 세 가지의 가능성에 대해 시시때때로 입장이 바뀝니다. 


  

  피츠제럴드 님의 주장에 몇 가지 반론합니다. 


  우리 말에서는 '노랗다'와 관련한 이형태적(異形態的) 표현이 많습니다. 피츠님이 예로 든 색깔 표현은 유의어이지 이형태적인 표현은 아닙니다. '노랗다, 노르스름하다, 노리끼리하다, 노릇노릇하다, 누렇다, 누르스름하다, 누리끼리하다' 등의 표현은 의미론적으로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습니다. 즉, 어떤 대상의 색깔을 묘사할 때 어떤 단어를 사용하든 근본적으론 크게 어색하지는 않습니다(물론 문맥상으론 어색한 경우가 있을 겁니다). 


  사람의 머리카락 색깔을 표현할 때 제가 예로 든 모든 단어가 한국어에서는 가능합니다. 그것이 어떤 사물이든 대체로 다 가능합니다. 머리카락의 색깔이 주는 느낌의 미묘한 차이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 가능한 어휘들이죠. 영어에서도 그런가요? 어떤 사람의 머리칼이 때로는 크림 빛깔이고 또 때로는 블론드이고 가끔은 바닐라 빛깔이고 그런 건가요? 제가 알기론 그렇진 않습니다. 님이 예로 든 어휘들은 용법 상으로 어느 정도 구별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만약 영어에 'yellow-yelloou-yelowe-yello-yallow' 등과 같은 어휘들이 존재한다면 우리말과 유사한 이형태적 표현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적어도 제가 알기론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말에도 '노랑-황색-금색-황금색-똥색-귤색' 등 님이 예로 든 "색을 나타내는 표현"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앞서 전제했듯, 전 우리 말 색채어휘가 영어보다 더 풍부하다고 보진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말이 색채 표현 면에서 영어보다 뛰어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완전히 동의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노랗다'라는 중심어에서 이형태적으로 파생되는 어휘가 영어에 비해서 훨씬 많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말이 더 우수하다는 게 아니라, 우리 말이 영어에 대해 상대적으로 그런 특징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반대로 영어에는 우리 말이 갖지 못한 다른 특징이 있을 겁니다. 어떤 경우든 두 언어 사이의 완벽한 번역이 어렵다는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요점이라고 봐요. 


  소위 '국뽕'에 취한 이들이 내세우는 주장에 문제가 있긴 합니다만, 그 어설픈 일부의 주장만 가지고 어설픈 반론만 한다면 뭐가 남겠습니까. 


  반론이라고 할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만...옥스포드 영영 사전 어휘가 75만개, 표준국어사전이 50만개...님이 제시한 수치인데요..이게 왜 "배가 많다"는 주장의 근거가 됩니까. 1.5배겠지요. 


  덧붙여, 영어는 2세기 가까이 인류를 대표하는 언어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님이 주장하신 것처럼 다른 언어를 흡수한 표현들도 존재합니다. 반대로 우리 말은 지난 몇 세기 동안 꾸준하게 어휘의 수가 줄고 있습니다. 이 경우는 두 언어가 지닌 어휘 수를 그대로 비교하기가 어려운 걸로 봅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한국문학이 노벨문학상으로 선정되지 못한 이유가 한국어의 특성에 있다


  라는 주장에 대해 반쯤 신뢰하고 반쯤 회의하는 편입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겁니다. 제가 언제 기회가 된다면 '그럴 수도 있다'는 주장에 대해 반론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이렇게 반론을 제기한 겁니다. 


  한국 문학이 노벨상에 선정되지 못한 이유를 전 대략 다음과 같은 가능성으로만 판답합니다. 


  한국어의 특수성 때문

  한국문학의 짧은 역사 때문(혹은 20세기 이후의 단절 때문)

  한국인들의 창의력이 부족하기 때문

  한국의 정치외교경제문화적 후진성(혹은 정체성 불명) 때문


  이외에도 다른 이유를 들 수도 있을 겁니다. 아무튼 저는 우리말의 특수함이 노벨상으로 가는 길에 분명 일정한 저해요소라고 보는 편입니다. 물론 님이 주장하는 바의 큰 틀 대로 그것을 핑계로 삼아선 안 된다는 데에 동의합니다만, 핑계를 대는 쪽이나 서둘러 한계를 짓는 쪽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 정치의 여당과 야당처럼요. 대개 진실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데에 뭐라 말하기 힘든 형태로 존재한다고...저는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