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이름은 안정해서 그냥 일단 철수했다.  무조건적인 비난말고 어떤부분이 어떻게 별로고 어떻게 좋은지좀 말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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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십년만이다. 십년만에 다시 찾은 김천은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익숙한 건물들 사이로 못보던 가게들이 군데군데 들어섰고, 촬영팀 식구들과

 자주 갔었던 중국집이 휴대폰대리점으로 바뀐 걸 빼면 말이다.

 연석은 손에 쥔 쪽지를 보며, 걸음을 조금 빨리했다.


 벨을 눌러 보아도 안에선 인기척이 없다.

잘못 찾아왔나 싶어서 쪽지에 그려진 약도와 주소를 다시 보아도, 틀림없이 이곳이 맞다.

경북 김천시 평화동 평화원룸 208호 

 다시 몇 번 더 벨을 눌러보지만 사람이 나오기는 커녕 ‘누구세요’ 라는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 저기요 - 거기 아무도 없어요 ? "


 주먹으로 문을 직접 두드려 보지만,  역시나 대답이 없다. 

 약속에 늦지않으려 KTX안에서도 몇 번이나 시계를 들여다보고 , 그것도 모자라  승무원에게 도착시간까지 몇 번이나 확인 했었더랜다. 혹시나 제가 약속시간을 착각한건가 싶다.

 오른쪽 바지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안에 있어야 할 남자의 번호로 전화를 건다.

 연결음이 가기 시작하는데- 가까이에서 벨소리도 함께 들려온다.



" 문 부숴지것습니다. 피디님. "






"  냉장고가 비어서 마트가서 마실것 좀 사왔습니더. 아, 편한데 앉으시면 되는데... 쥬스 드릴까예 ? "

" 아... 난 그냥 쥬스말고 물 좀 주라 "



 남자를 따라 들어온 집은 생각보다 깔끔했다. 가난과 죄책감, 무력감 따위의 냄새는 나지 않았다. 잘 지내지 못할거란 자신의 생각은 마치 ' 잘 지내면 안돼. 그런 새끼들은 평생   사죄하며 살아야지' 라고 말하던 대다수 사람들의 그것과 별반 다를게 없는 것 같아 괜한 자책이 든다.

 남자는 비닐봉지에서 오렌지쥬스와 콜라, 토마토 등을 꺼내 냉장고에 옮겨담고는 생수병을 꺼내들었다. 유리컵에 물을 따르는 손은 이제는 19살의 그것이 아니였다. 그 십년동안 아이들은 어떻게 자랐을까. 예전의 파란 수의는 이제 몸에 맞지 않을터였다. 원래 또래에 비해 월등히 컸던 아이였지만, 십년전에 비하면 키며 덩치며 한 뼘 이상  더 자라있었다.


 우리팀들은 아이들의 옷을 파란옷이라 불렀다. 어린 그들에게 죄수복이란 말은 너무 무겁다- 라는 작가 미은누나의 의견이였다. 그 덕에 ‘ 어려도 범죄자는 범죄자다- ’ 라던 카메라 찬수와 미은누나는 한 바탕 싸웠더랜다.



 " 피디님 오랜만입니더 - 여기 물 있습니더 "

 " 어... 철수 너는 좀 달라진 것 같네 "

 " 십년인데 , 안변하는게 이상타아입니꺼. 근데 피디님은 진짜 그대로시네예 "

 " 에이, 늙었지- 난. "


 " 미은누나는 잘 지냅니꺼 ? "

 " 아, 누나.... 이주 전에 둘째 태어났어. 촬영 했었던 찬수 기억나 ? 좀 덩치있고 무섭게 생긴.. 둘이 결혼해서 잘 살아. "

 " 와 - 둘이 엄청 싸우더니 결국 결혼했네예. 피디님은예 ? "

 " 나 ? 나는 그냥 달라진건 없고, 늙었어. 눈에 주름봐 좀 봐. 아 나도 결혼 했었어, 이혼    도 했다는게 문제지만.


  너무 우리 얘기만 하는 거 같다. 어떻게 지냈어, 철수야 ? "


  인사치레로 꺼낸 어떻게 지냈냐는 말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어, 물 마시는 척을 하며 철수의 시선을 피했다.

  우리는 촬영이 마무리 될 시점, 아이들에게 ' 촬영이 끝난 후에도 자주 찾아오겠다- 출소하면 꼭 연락해라 ' 며 편지에 연락처까지 함께 적어주었다. 당시 전달사항이나 쪽지를 주는 것은 교도소내의 금지사항이였는데, 우리는 그것들을 ----------- 했다.

 다시보자고  손가락까지 걸며 약속했고, 6개월이라는 촬영기간동안 쌓인 정때문에 촬영팀이며 아이들이며 눈물바다가 됐었다.

 하지만 약속은 딱 일년까지였다. 촬영이 끝나고 일년까지는 면회를 가거나 편지를 보내는 등의 연락을 이어갔지만, 사는게 바쁘다보니 자연스레 멀어지고 잊혀지는게 그 다음이였다.

 10년만에 다시 그 뒷이야기를 담을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자 뭉쳤고, 그 당시의 아이들 중 몇몇에게 사전인터뷰 요청을 했다. 그 중 가장 연락이 어렵게 닿았던게 철수였다.


" 사실은 피디님 연락 받았을때, 이거 받아야 하나 말아야되나 엄~청 고민했습니더.  괜히 옛날 사람들보면 옛날 기억도 나고.... 지 지금 스물아홉이거든예. 근데 사람들보면 내 열아홉이 기억날까봐 너무 겁나는 거라예. "

" ...... 왜 그렇게 생각해애 - "

" 처음에 출소하고는 진짜 막막했습니더. 그래도 사람이라고 죄책감 때문에 잠도 잘 못자고 - 그래도 사람답게 살려고 엄청 노력했다아입니꺼. 다행이 일반수용소로 안넘어가서 빨간줄 안그였고. 교도소에서 배운 제빵기술로 나가서 자격증도 따고.

 요즘 그냥 빵집에서 빵만듭니더. 나이도 먹고...  아 피디님 앞에서 나이 이야기 하는건 실례지예 ? 근데 피디님은 진짜 그대롭니더 .  당황하면 귀만지는것도 - "

" 내가 그랬었나 "

" 네, 그 때도 막 인터뷰하다가 애들 울거나 그러면 항상 귀만지셨거든예. ...... 피디님 미안해하지마소 - "

 " 어 ? '

 " 지 잘 지냈습니더. 그러니깐 미안해하지 마시라고예 - "



 ****



" 근데 나는 솔직히 너가 김천에 살고 있을지는 몰랐어 "




 밥이라도 먹자며 나온 곳은 근처에 초밥집이였다. 초밥과 롤, 그리고 샐러드가 함께 나오는 세트를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고있다. 너무 내 취향만 고려했나 싶었지만 - 밤샘 촬영에 공복으로 달려왔던터라 배가 많이 고팠다.

 " 김천이 편합니더. 조용하고, 피디님 근데 여기 비싸지 않습니꺼 ? "

 철수는 연석의 종지에다 간장을 부어주며 대답했다. 의외였다. 김천에 살고있다는 것도,  질문에 대한 그의 답도.



 김천은 우리나라에서 소년교도소가 있는 유일한 도시다. 정부의 정책인지, 재정문제 때문인건지는 잘모르겠지만 십년이나 지금이나 한군데 밖에 없다, 경상북도  김천.

 소년교도소는 우리가 흔히들 알고있는 소년원과는 다른데, 비행 청소년의 교정, 교육 기관인 소년원과 달리, 살인, 강도, 강간 등 중범죄를 저지른 만 14세부터 만 23세까지의 아이들이 수감되는 곳이다.

 철수는 그 중에서도 가장 죄질이 나쁘다고 할 수 있는, 살인범죄를 저지른 아이였다.


" 피디 돈 많이 벌어. 더 비싼거 시켜도 돼. "

" 랍스터라도 한 마리 먹을걸 그랬네예......  김천에 살고있어서 놀랐습니꺼 ? "

" 놀랐다기 보단... 너 그 때 출소하고 고향집으로 가지 않았어 ? 어디였지? 경기도 였던 거 같은데 "

" 경기도 이천입니더. 지금은 갱상도 사람 다 됐다 아입니꺼. 이천 갔다가 이년뒤 쯤에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냥 다시 돌아왔습니더. 거기엔 더 이상 가족도 없고. "

" 아.. 그래 할머님, 그 때 돌아가셨었구나....


  미안하다 몰랐어 "


- 손님, 주문하신 A세트 나왔습니다. 더 필요한 거 있으시면 오른쪽에 벨을 눌러주세요.

  그럼 맛있게 드세요.


  직원이 서버해준 음식들이 나왔다. 세트메뉴라 그런지  초밥이나 롤의 양이 조금씩 다 적어보인다. 평소 입이 짧아 많이 먹는 편이 아닌데, 앞에 있는 철수를 보자니 모자라도 한참이나 모자랄 것 같다.



 " 많이 먹고- 모자라면 더 시키자 "

 " 예 잘먹겠습니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