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디 사는 누구인지, 알아도 아무 소용 없을 궁금증이 자꾸만 떠오르네요. 당신이 어던 사람인지 그게 뭐 그리 중요할까요. 어차피 당신은 어디엔가 살고 있을 누군가 일테고 저는 당신을 볼 일도 없을 누군가니까. 그래도 궁금한 건 왜일지.
이 글의 종류는 뭘까요. 당연히 편지겠지만, 단순히 그런 것 말구요. 이 글을 수필이 될 수도 있고 소설일 수도 있겠죠. 당신은 영영 알지 못할거에요. 허구인지 아닌지는 오로지 저만 알고있으니까. 그리고 당신과 저는 절대 만날 일 없을테니까요. 이 글을 누가 처음으로 읽게 될지, 누가 마지막으로 읽게 될 지는 조금 궁금하네요. 저에겐 조금 특별한 글이거든요. 제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쓰는 글이니까. 사람들은 이런걸 두고 유서라고 부르는 것 같지만, 오해는 말아요. 이 글을 다 쓰고 바로 죽겠다는 말이 아니에요. 단지, 이 글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글을 쓰지 않기로 다짐했을 뿐.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왜 하필 글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스스로에게 묻고 싶을 정도.
저는 말이죠, 우연이라고 하는 것을 너무나도 싫어해요. 싫어하는 것을 넘어서 혐오스럽다고 느낄 정도. 그리고 우연을 좋아라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역겨워요. 저만 이런건가요? 우연이라는 건, 말 그대로 우연한 순간에,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시간에 우리들을 찾아와요. 그 우연을 이용해서 성공한 사람들은 그것을 '기회' 라 부르고 그 반대인 사람들은 '사고' 라고 부르죠. 그 차이를 가르는 것은 대체 뭘까요. 우리에게 닥쳐온 우연이 기회인지 사고인지는 그 누구도 알 지 못해요. 그 우연을 붙잡고 끝까지 가지 않는 이상에야 아무도 알 지 못한다구요. 그래서 저는 우연이 싫어요. 실패할 수도 있는데 겪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그 불확실성이 주는 불안감이 저는 무서워요. '경험주의자' 같은 시덥잖은 말을 하려는건 아니에요. 그냥 저는, 불확실성과 불확정성이 제게 안겨다 주는, 그로 인해 제가 한 가득 겪게 되는 감정의 다발들이 싫어요. 우연이라는 녀석은 그 두 가지를 모두 갖춘 것들 중 하나고. 아, 우연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글 내내 쓰려는 건 물론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이 글은 단순히 수 없이 많은 제 기억과 감정의 파편들을 담은 글일 뿐이에요.
다시 한 번 말할게요. 저는 불확실성과 불확정성이 너무 싫고, 이 세상엔 이런 것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인지 늘 불안감에 시달리며 살아왔어요. 왜, 그런거 있잖아요. 늪에 빠진 듯한 느낌. 너무나도 싫어서, 벗어나고 싶어서 계속 발버둥치지만 점점 빠져드는거죠. 불확실이네 불확정이네 하는 것들이 제 몸에 달라 붙는데, 그걸 떼어 내려고 용을 쓰며 뿌리치지만 다시 달라붙어요. 버둥댈수록 더 깊이 빠지는 늪처럼. 모기 같은 녀석이죠. 당신은 끊임 없는, 만성적인 불안감에 시달린 적이 있나요? 그 때의 느낌은 말이죠, 정말 묘해요. 물론 좋냐 나쁘냐 물으면 당연히 나빠요. 나쁜걸 넘어서 공포에 가까운 기분까지 느끼게돼요. 글이나 말로는 표현하기가 조금 힘든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아, 그런 표현 있잖아요. '머리가 비죽배죽 솟아 오르는' 느낌. 딱 그 느낌이에요. 그리고 관자놀이 부근부터 그 위로는 새하얗게 탈색되어 가는 듯한. 심장은 평소보다 훨씬 빨리 뛰고 손이며 발은 자꾸만 파르르 떨리죠. 정상적인 사고는 거의 불가능해요. 흔히 말하듯 '머리 속의 지우개' 같은게 있어서 누가 무슨 말을 하건, 내가 어떤 것을 보고 듣던 간에 즉각적으로 지워져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생각도 못했어요. 그 감정조차도 두려움에 잡아먹히고 말았으니까요. 만성적인 불안감에 시달린다는건 그런거에요. 지금은 어떠냐구요? 제가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걸 보면, 아시잖아요?
그런 영화 문구를 본 적이 있어요.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정말일까요? 저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을까요? 아니, 누군가의 사랑이긴 했을까요? 이건 자기고백인데요, 예전에 이런 적이 있어요. 중학교 때 였나, 고등학교 때 였나. 잘 기억도 나지 않아요. 그리 오래된 기억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잘 기억이 안 나요. 싫었던 기억이라 무의식적으로 부분부분 지워버린걸지도. 여하튼, 그 때의 저는 당연하게도 사춘기 때였어요. 혈기왕성할 때고 이성이니 뭐니 하는 것들에 조금씩 눈을 뜬 시기였죠. 그 당시에는 불안감을 느끼지도 않았을 시기였거든요. 학창시절을 겪은 이들이라면 누구나 다 한번 쯤은 그러듯 저도 누군가를 좋아했었는데요, 짝사랑이었어요. 말도 못 걸고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떨려 미칠 것만 같은데 주위 친구들에게도 말 못하는. 그런 비밀을 마음 속 깊은 곳에 품은 채 하루하루를 살아갔던 것 같아요. 참 신기하네요. 이렇게 적다 보니 조금씩 조금씩 그 때의 기억들이 선명해져요. 글을 쓴다는 건 먼지를 쓸고 닦는건가봐요. 나 자신도 잘 모르는 은밀한 곳에 꽁꽁 감춰두고 먼지로 가득 덮어둔 곳을 글을 쓰면서 깨끗하게 하는거죠. 스스로도 몰랐고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기억을 다시금 되내이며 놀라기도 하고. 흥미롭네요, 글쓰기라는거. 각설하고, 적어도 일 년은 넘도록 상대방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까지 했나, 싶기도 한데, 그 때의 저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거에요. '짝사랑 같은 일방향적인 사랑 역시도 사랑의 한 종류야. 난 이런 사랑을 하고 있는것 만으로도 행복해' 정말 우습고 얄팍하기 작이 없는 생각. 짝사랑은 그냥 기약도 없는 허튼짓일 뿐인데. 말 한 번 못거는 짝사랑은 미끼도 낚시 바늘도 없이 하는 낚시질과 전혀 다를게 없어요. 그 때의 저는 충분히 미숙하고 어리석었기에 가능했던거죠. 그렇게 일 년 넘게 짝사랑에 끙끙 앓다가 어느 날 결심했어요. 이렇게 앓다 끝내느니 마음이라도 전해보자고. 잘 생각해봐요. 그렇게해도 전 잃을게 전혀 없었어요. 성공하면 엄청 좋은거고 실패한다해도 그 전과 달라질게 없고.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어요. 어떠헤 말을 걸 것인가, 하는 문제.
세상의 모든 문제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걸로 해결되곤 해요. 제 문제 역시도 손쉽게 해결되었어요. 어떻게 해결되었냐구요? 궁금한가요, 그런게? 뭐, 그냥, 그 남자애가 먼저 말을 걸어왔어요. 그 애가 우물쭈물 제 책상 앞으로 오더라구요. 저는 순간 놀랐어요. 갖가지 생각이 다 들었죠. '왜? 갑자기 왜 나한테 온거지? 무슨 할 말 있나?' 그 아이는 내게 말했어요.
"야."
저는 읽던 책을 덮어두고 조심스레 그를 쳐다봤어요. 곁눈질로 주위도 흘끔흘끔 봤어요. 앞문과 뒷문, 창문 족과 교탁 부근에서 저를 빤히 보고 있더군요. 그 때까지도 별 생각 없었어요. 그냥 다른 반 애가 대뜸 말 없는 저에게 왔으니 신기해서 그러나보다 싶었죠. 저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어요.
"어? ...응, 왜?"
제 얼굴은 한껏 화끈거렸고 팔다리는 덜덜 떨렸어요. 긴장감을 주체할 수가 없었죠. 그래도 용기내어 그의 얼굴을 봤어요. 그는 눈을 유난히 자주 깜빡이며 자꾸만 입술을 혀 끝으로 촉촉하게 적셨어요. 한 십 초동안 묵묵히 있던 그는 나지막히 입을 열었어요.
"나, 여태까지 말 못했었는데, 너 좋아해."
순간 심장이 거세게 요동치면서 제 가슴께를 마구 두드렸어요. 심장이 터질 것 같다는 표현을 온 몸으로 느꼈죠. 과장 조금 보태서 꿈에 그리던 상황이었으니까요. 저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지도 못하고 물었어요.
"...정말?"
그 때의 제 표정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어요. 잔뜩 들떠있었을까요, 아니면 긴장과 두근거림을 참느라 일그러져 있었을까요? 확실한 건, 제 말을 들은 그의 표정은 이리저리 뒤틀려 있었어요. 이루 말하기 힘들 정도로 엉망진창.
"아, 씨발. 이만하면 된 거 아냐?"
그는 뒤를 돌아 크게 소리쳤어요. 그 순간 제가 있는 곳을 보던 애들이 모두 웃었죠.
"미친년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누가 미쳤다고 널 좋아해?"
그는 교실 바닥에 침을 뱉은 뒤 성큼성큼 교실 밖으로 나갔고 저는 멍하니, 그 자리 그대로 남겨졌어요.
...저는 지금도 궁금해요.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사랑이었을까요? 저 역시 '우리' 안에 들어갈 수가 있는 걸까요?
네. 아마 그 때부터였을거에요.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을 신용하지 않게 된게. 겉모습만으로 판단하지 않는건 물론이고 사람 자체를 믿을 수 없게되었어요. 그래요, 단순히 사랑에 데인 것 치곤 그 상처가 꽤 크죠. 그래도 제가 정말 좋아했던 사람에게, 그것도 그 사람의 내면까지 사랑한다고 제멋대로 믿었었는데 그런 일을 겪게 되니 사람을 못 믿게 되었어요. 사람의 마음이라는게 생각 외로 너무나도 여리다는걸 그 때 처음으로 느꼈어요. 아니, 어쩌면 제 마음이 유달리 약할 수도 있지만, 여하튼 별 것 아닌 일에도 사람은 망가지는구나 싶더라구요. 모욕감과 실망ㄱ암. 그 두가지에 저는 와르르 무너진 셈이에요. 불확실성과 불확정성에 시달리며 만성 불안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도 아마 그 무렵. 학창시절에 그런 일을 겪은 후, 자라면서, 아니 그 즈음부터 몇 가지 일을 연달아 맞았어요. 홀로 날 키우던 생모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서 절 버리고 떠났고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이 알고 보니 뒤에선 절 엄청 씹고 있었고 홀홀단신으로 고모 집에 맡겨진 저는 학대나 다름 없는 취급을 받게 되었고. 그래서 저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들을 믿을 수 없게 됐어요. 제가 믿어 왔던 세계가 알고 보니 제가 알던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 때 불안감은 저를 찾아왔어요. 세상에는 아무것도 확실한 것도, 확정된 것도 없다는 그 불안감. 몸도 마음도 잔뜩 너덜너덜해진 저는 불안감이 절 덮쳐와도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죠. 세상의 모든 문제는 아무것도 아닌 걸로 해결되지만, 별 것 아닌걸로 문제가 생기기도 해요. 정말, 별 것 아닌 일로. 저의 일그러진 세계 속에서 저는 뭘까요. 절 둘러싸고 있던 이들에게 저는 누구였고 어떤 존재였을까요. 존재하긴 했을까요.
뉴스를 봤어요. 선장과 선원들의 부주의와 무책임으로 벌어진 사고였죠. 사람이 정말 많이 죽었어요. 너무 큰 사고라서 일찌감치 이런저런 매체로 수도 없이 접하셨을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일주일이 지난 후에야 봤거든요. 원체 TV도 잘 안보고 밖도 잘 안나가니까. 마음이 좀 아팠어요. 사람이 많이 죽었기 때문은 물론이고, 어린 학생들이 많이 죽어서. 그 아이들이 죽기 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남긴 메세지를 본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떠오르더라구요.
'저 아이들은 모두 누군가의 친구고 애인이고 자식이겠지'
있죠, 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서로가 가진 마음의 일부분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교집합 같은 느낌. 그런 교집합이 사라진 부분은 영영 공허한 곳으로 남겠죠. 한 구석이 텅 비어버린 마음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은 얼마나 괴로울까요. 상실감은 절대 지워지지 않는 것인데. 그런데 더 괴로운건 말이에요, 분명 죽은 사람 가운데에는 저처럼 아무 것도 아닌 사람 역시 있을거란 사실이에요. 그 누구와도 교집합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분명.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가슴이 지르르하고 아려와요. 내가 죽게 되면 역시나 똑같이, 너무나도 고독하고 슬퍼 보이겠죠. 우리는 언제부터 이런 사람이 되어버린 걸까요.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가족, 친구, 애인, 우정, 사랑, 고마움이어야 할텐데. 어째서 우리들은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렸을까요.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주위 사람들에게 무슨 존재로 남아있나요. 우리가 만날 일은 절대 없겠지만, 서로가 누구인지 영영 알 길이 없겠지만, 만약 당신이 나와 같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만나 보고 싶어질거에요.
제 넋두리는 여기까지.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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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취미 삼아 끼적끼적 하고 있는데 혼자 적어봐야 소용도 없고. 어디 소통하기 좋은 곳 없나요.
...... 알아도 아무 소용 없을 궁금증이 ...... 첫줄쯤에서도 저것부터 걸리는구랴. 왜 말을 그렇게 길게길게 써야 했는지. 확 줄이면 읽는 사람 자세부터 달라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