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과 허깨비>
90년의 해는 매우 청초했다
나는 한기에 옷깃을 여몄다
죽은 이파리들 사이 서린 눈꽃들을 보곤
피어오를 얼음의 꽃들을 생각했다
대문 앞 개집은 꽁꽁 얼어버렸다
바람도, 추위도, 서릿발도
원망스럽지 않았다
빼빼 마른 이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내 세상은 모래 위의 나뭇가지였다
짙은 먹구름은 느리게 흘렀다
시간도 더뎌가듯이
제법 쌓인 나뭇떼기들은 무거웠다
지금은 사라진 친구가 내 옆에 앉았다
우리는 불을 지피고 장작을 멀리 던지며
추운 하늘과 도망친 개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저 멀리, 초점 잃은 상가들의 불빛이 보였다
우리는 그저 허깨비였다
<전조前兆>
저녁 하늘은, 상온의 수은처럼 미지근했다
건물의 벽과 창틀과 옥상과 전선줄
어슴푸레한 방 안에서 창문 밖의 송전탑을 보다
아무 전조도 없이, 게슴츠레한 빛을 깜빡인다
외로움은 푸른색 유화물감 수 억개를 쥐어짜내듯 밀려오며
예고없는 이 삶에 신비를 느꼈다. 아직 나는 어렸다
새 한마리가 마지막으로 하늘을 그었다
푸른빛 전혀 없이 약디 약한 밤하늘이 되었다
쥐포가 굳듯, 내마음도 굳었다
그저 껌껌한 어둠 속에서, 리모콘으로 TV를 틀었다
<추방자>
외로운 손님은
12월의 어둠속에서 나타났다.
빗발치는 눈보라를 뚫고
나무 오두막으로 초대되었다.
그보다 전, 흰 눈송이들이
아주 까마득한 밤에 발견되었다.
외로운자들은 이것들을 줍기 위해
일동 까치발을하곤 손을 뻗었다.
나는 양초에 불을 붙였다.
점화되는 불꽃은 정적을 깨웠다.
손님의 얼굴은 백지였다.
외로운 손님은 초에 머리를 가져갔다.
그 예쁜 얼굴은 양초와 함께 서서히 타들어갔다.
나는 팔짱을 끼고 그를 지켜보며 닦달했다.
양초보다 좀더 일찍이 타버릴 수 없는거냐고.
언뜻 그을음이 그의 미소처럼 보였다.
<모퉁이>
줄곧 무미건조한 지평선을 쫓았다
유년시절의 멀리보이던 계단들엔
붉은 태양과 민들레 그리고 빽빽한 현관문
높은 키다리들의 무진행렬 또는 주황빛 목걸이
등등이 서로 악수하곤 헤어짐을 반복했다
그러나 나는 외면했다 사이 사이 녹아들어
이제 제발 허무한 이데올로기들의 쇠창살에서 벗어나
지펑선을 다시 곧게 뒤집어놓고 싶지만 불가항력의
손길 아래에 나는 또 다시 응축되어 이 모퉁이 저 모퉁이로
오뚝이처럼 기우뚱 거린다 이렇게도 무참하게
보아라 이 옥죄는 상아색 목걸이는, 이제는 무뎌진 너의 뼈의
잔해들로 이루어진 볼품없는 겉치례다
항상 지평선 너머를 볼때 나는 이것을 생각했다
끝없이 인식할 수 없는 부재
그저 공허의 한 가운데에서 미약하게 공명하는 부재
그래서 심장은 매시각 가려웠고 가슴 속 눈물 마른지는 오래되었다
그저 굼뜬 공상이다 오늘도 별 볼것 없이 내 인지 아래에서
나는 모퉁이와 모퉁이를 오뚜기처럼 기우뚱거린다
<격자무늬>
안정된 탁자, 그 위로 노을이 스민다
고요히 떠도는 먼지들에게도
바깥은 아이들 웃음소리로 시끄럽다
작은 창문으로 어렴풋 구름이 지나가는것을 느꼈다
그것도 붉게 젖어들다 곧 어디에선가 식어버리겠지
나는 미지근한 전율을 기다리며, 또한 결국엔
예고없이 찾아오게될 것을 알면서 이렇게 허투로 앉아있다
이곳을 스치는 신호들을 맨 손으로 쥐었다 펴본다
오래되었건 멀리서 온 것이건 나는 가릴틈이 없는
그저 비루한 존재이므로 그저 움켜쥔 손을 허공에서
놓지않는다
<전위차계 電位差計>
너는 복잡한 도식을 너무 많이 그렸다
무음
나는 차가운 대기를 가로지르며 선을 잇고
그토록 당부했다
너는 왜 딱딱한 아스팔트 바닥을 기어서라도 이동하는가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유령들의 한기에 사무쳐
이토록 답답하기 짝이없는 계측을 해본다
뼈 남은 잔가지들의 손짓들에
최면에 걸린 듯, 너는 얼어붙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끌려다니는 리어카의 업(業)을 내려다볼 것인가?
무구한 너의 마음 속 도식에 어떠한 것들을 바꿔나갈것인가?
벽돌빛 태양이 게슴츠레 졸린 눈으로 먼 동을 이끌고 올 동안
선이 부식되지 않도록 주의하며
너는 다시금 정확한 수를 일구길 기도한다
<석양>
지는 석양에 매달리고 싶다
천천히 내려앉는 해에 발디딛고
정향유(丁香油)의 향취를 방울이 떨어뜨리며
매우 겸허하게, 죽은 시체더미를 필두로
별 마저 끌어안고 낙조(落照) 하리라
<전조 前兆>
저녁 하늘은 상온의 수은처럼 미지근했다
건물의 벽과 창틀과 옥상과 전선줄
어슴푸레한 방 안에서 창문 밖의 송전탑을 보다
아무 전조도 없이, 게슴츠레한 빛을 깜빡인다
외로움은 푸른색 유화물감 수 억개를 쥐어짜내듯 밀려오며
예고없는 이 삶에 신비를 느꼈다. 아직 나는 어렸다
새 한마리가 마지막으로 하늘을 그었다
푸른빛 전혀 없이 약디 약한 밤하늘이 되었다
쥐포가 굳듯, 내마음도 굳었다
그저 껌껌한 어둠 속에서, 리모콘으로 TV를 틀었다
<축 軸>
밤은 산기슭을 어둑히 감싸고
수많은 별들은 휘황찬란하게 빛났다.
대낮같은 빛들 아래 나는 외로웠다.
눈이 부셨다. 마치 섬광같았다.
축(軸) 아래에서 머물고 싶었다.
습기에 젖은 종잇뭉치들
이 또한 태우려니, 목이 턱 막혔다.
떨리는 불꽃들은 나의 불안의 전조요.
수 없이 깜빡이는 주위는 불완전한 나였다.
또 다시, 축 아래에서 머물고 싶었다.
새벽 기러기 무리가 하늘을 긋는다.
산 위의 송전탑을 지나며
나와 하늘 사이의 높이를 가늠하게 한다.
축은 항시 나를 일깨워줬다.
이 기러기처럼 나를 보여줬다.
누구도 꺼낼 수 없는, 내안의 축이있다.
<자동화 곡선>
해오라기 날아올라
그 잔향은 한 호수에 순간 기억되다
연속적인 파동의 물결은 부드러이
우주 외적 밖의 사소한 일을 매듭짓는다
인간이란 연속된 긴장감을 아우러
삶의 경계선 너머의 불가항력의 벽에
거대한 공이를 차례로 맞부딛힌다
여럿 혹은 남겨진 껍데기들도
회전하고 앞과 끝을 되감는 기계의 불분명성은
역사의 기록 그 떨어지는 분진과 양피지들을
자유롭게 안고서 하향나선을 그린다
빛의 맥동은 왜곡되어 벗겨져간다
차마 한 호흡으로서 공명할 수 없기에
인류는 달을 개척하고 타키온을 구분하였다
새벽 고속도로를 지나치는 냉동트럭들
나는 하나둘씩 솟고 내리는 단단한 건물들과
이곳 허무한 전신주의 무음들을 뒤로
이렇게 직사되는 태양볕에 허우적대다
<청색소음>
퍼런 귀鬼 하나, 장롱 속에 숨었다
내 두 손목엔 오랏줄이 메여있다
십삼월十蔘月에 항시 앞 사람을 찾았다
그러나 애처롭게두 내 앞은 평야平野 였다
필히 내 손모가지가 썩어야 빠질것이다
장롱 속에서 게거품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에 잡영雜影들이 주위를 노닌다
소름끼치도록 외로운 순간이였다
더욱이 내게 소름끼치는 것은, 앞 사람이 다가와
느슨한 오랏줄을 다시금 조여놓고 찰나刹那에 떠났다는 것이였다
<어둠과 흑백, 그리고 차세대 신호>
어둠이 무서워서 태양을 훔치다.
너는 송전탑을 기어오르며 별과 별을 지웠다.
유연한 마음을 둘둘 말아놓고, 너는 찾는다.
신호를, 혹은 이리저리 흔들리는 불꽃들을
아무것도 없는 깜깜한 벌판 위
무한한 탑의 경계에서 울음을 터뜨린다.
무수히 많은 신호들이 자신을 관통하는걸 느끼고,
너는 당황스러움에 잠기다 곧 다시 새로움을 느낀다.
툇마루에서 나는 지켜보았다.
저 멀리 비친 너의 위태로운 그림자.
달빛과 함께 휘어지는 너의 잔영.
나는 이따금씩 소름끼쳤다.
시대를 넘어가야한다.
너는 계속해서 기어오른다.
끝없이 기어오른다.
나는 너를 흑백 TV로 보았다.
이 서체를 궁서체라 하나. 읽기가 `백골난망'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