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가

  ㅡ날아가는 새가 사랑의 머리카락을 물고 가면

     그 사람은 밤에 날아다니는 꿈을 꾸게 된다*

    

       김경주

  긴 머리를 자르기 위하여

  긴 머리를 자르기 위하여 밤을 나선다 밤에 머리를 자 를 만한 곳이 없다고 수첩에 옮긴다 나는 비스마르크 제 도에 사는 초록파푸아 달팽이의 느린 생을 이야기하고 싶다 맥주 거품 같은 구름이 근원에 홀린 듯 떠 있는 밤. 생은 머 데서 흘러오고 나는 벼락이 수천 년 전부터 하늘 속을 흐르다 찾아온, 숲 속 가장 어두운 나무의 눈을 떠 올린다

  맥주의 매복지

  맥주를 사러 가기 위해 우리는 방 안에 매복해 있었다 게릴라처럼 우리는 웃었고 게릴라처럼 우리는 코피를 흘 렸다 그러나 게릴라처럼 매복지에서 죽지 못했으므로 우 리는 맥주를 사러 가기 위해 일어났다 누군가 창문 앞에 서 인생이라는 혐으를 벗어나고 싶어라고 말했으나 그는 곧 우리가 '입술 깨물기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했으므로 검은 라이방을 쓰고 몇 개의 검은 종이학을 탁자 위에 접 어놓았다 그러곤 스스로의 영혼 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음 악을 살리기 위해 우리는 조금씩 떨면서 땔감처럼 푸르고 축축한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그 가운데에는 음악을 향 해 날아온 섬도 있었고 '한 번도 우리는 그 섬에 가본 적 이 없었고' 코레아의 감나무에 매달린 칠레 사내의 칠레 같은 푸른 발목도 있었다 달팽이의 입술을 가진 청년이 몰래 안아서 집으로 훔쳐온 '책 읽는 소녀 동상'도 있었다

  물속에서 건져올린 머리칼

  당신들은 한패로군 저녁마다 서로 말을 나누는 사이임 에 틀림없어 그녀의 머리를 마지막으로 감겨주었던 세숫 대야를 찾고 있다고? 미안하지만 이 가게에 그런 건 없 어. 이보게 그런데 거울을 좀 보도록 하게. 자네넨 지금 담 배를 거꾸로 물고 있지 않은가. 휴일엔 가끔 혼자서 십자 가를 뒤집어놓고 방에 앉아 쓸쓸한 칼을 갈기도 하는 거 야. 이런 당신들은 정말 한패로군 내 새장의 새들이 입을 열지 않아 오늘도 밤을 샐 모양이군.

  연두색 담배의 마지막 한 모금

  불가피하게 오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사랑하는 사람 이 없으니 오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 눈이 너로 인해 번식하고 있으니 불가피하게 오늘은 너를 사랑한다 오늘은 불가피하게 너를 하랑해서 내 뒤편엔 무시무시한 침물 이 놓일 테지만 너를 사랑해서 오늘은 불가피하다 불가피하게 오늘은 내가 너를 사랑해서 이 영혼에 처벌 받을지 모르지만 시체를 사랑해서 묻지 못하는 사제처럼 불가능한 영혼을 꿈꾼다 환영에 습격받은 자로서 나는 사 랑하는 사람이 없으니 불가피하게 오늘은 너를 사랑한다 오늘은 몇천 년 전부터 살았던 바람이 내 머리칼을 멀리 데리고 날아갈 것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니 불가피 하게 오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로 시작되는 연기가 연두색 담배의 끝물에서 흘러나온다

  기타를 맨 잠수부

  용기를 얻기 위해 창가에서 나는 조용히 침대로 간다 비가 오는데 창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다면 당신은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수첩에 옮긴다 무서워서 으으 으 나는 입이 거의 돌아가는데 머리를 자르기 위해 밖에 나가야 하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나는 시조새처럼 꾸루 룩거리며 날개를 바닥에 펼쳐놓고 타이핑을 하지 기타를 멘 잠수부들이 강물 속에서 또 음악을 연주하는군. 수면 으로 뽀글뽀글 올라오는 음악의 냄새 그런 날이면 어김없 이 새들이 어디선가 주워온 머리칼을 물고 내 노래 위에 도 앉아 있지

*중국 고전 '박물지'의 한 구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