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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네 들었어?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우리 학교 뒷산에 연못 하나 있는거 알지? 거기 밤 12시가 되면 수면에서 귀신이 걸어나온다더라. 여기가 예전에 화장터였던거 알지? 그 연못에 뿌려진..."

"야!"

난 더 이상 들어줄 수 없어 소리를 지른다. 안 그래도 기분 안 좋은데 무서운 건 딱 질색이다.

"그런게 어딨어? 귀신? 너 본 적 있어?"

그 때, 장난스러운 목소리 하나가 끼어든다. "백민하, 왜 발끈하고 그래? 너 무섭냐? 아, 너 아까 잘 때 귀신 꿈 꿨구나? 생긴건 귀신도 때려잡게 생겨가지고 겁은 많네"

그 말에 아이들은 모두 자지러지게 웃는다. 별로 웃기지도 않는데 이 녀석, 안민우의 발언력은 그만큼 아이들에게 파워가 있다. 난 참고로 이 녀석이 정말 싫다. 아마도 그건 이 녀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유독 나한테만 심한 장난을 치는데 저번에도 내가 책을 베고 자고 있는데 자기가 씹던 껌을 내 머리카락에 붙여놔서 그 해당 페이지를 찢고 내 머리카락의 일부분도 잘라내야 했다. 더 화가 났던건 그런 일을 벌이고도 사과는 커녕 뻔뻔하게 굴었던 점이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러는 지 모르겠다. 지금도 날 도발하려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매우 성공한 것이다.

"아니, 난 그저 귀신이라는 게 어딨냐고 했을 뿐, 무섭다고 한 적은 없는데? 언어 장애인이신가 봐요. 전 한국말로 했는데 말예요. 아... 무섭다? 그러는 너야말로 무서운 거 아니세요? 아주 집중해서 들으시던데?"

난 내 나름대로 한 방 먹였다고 생각해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는데 예상과 달리 녀석은 무슨 웃긴 얘기라도 들은 듯 낄낄 거리면서 쳐 웃었다.

뭐야? 기분 나쁘게 왜 웃지?

"그럼 내기할래? 오늘 밤에 자신 있는 녀석들 학교 앞으로 나와. 오늘 한 번 귀신의 존재를 확인해 보자."

녀석의 도발적인 말에 난 심호흡을 한 후

"귀신을 만났다간 죽을 걸? 무서운 건 둘째 치고... 그리고 넌 내셔널 지오그래픽도 안보니? 귀신이라는 거 대부분이 인간의 착시현상에서 오는..."

"겁쟁이" 민우는 비웃듯이 말한다.

"야, 도망가지 마라"

나 역시 충동적으로 말해버린다.  



"뭐야, 안민우, 왜 너밖에 없어?"

결국 나오고 말았다. 사실 아무도 안올 줄 알았는데 이 녀석이 나왔다는 거에 조금 놀랐다. 어디까지나 조금이다. 나야 조금이라도 지고 싶지 않으니까 나왔지만... 그래도 내뱉은 말은 지킬 줄 아는 녀석인건가?...

"오, 백민하, 도망 안쳤네?" 서글서글하게 웃는 녀석.

"시끄러워. 야, 우리 둘밖에 없는 거 같은데 그냥 집에 가자. 사실 아까 그 말 너가 나 자극해서 그렇게 말한거 뿐이야. 사실 귀신 좀 무서워하긴 해."

그러고 뒤돌아가려는 데 녀석이 날 붙잡았다.

"그래도 이왕 나온거 궁금하지 않아?"



연못으로 가는 산길은 생각보다 험했다. 낮에 보는 거랑 달리 밤에는 시야의 제한 때문에 길 찾기가 쉽지 않았다.

벌써 삼십여분 째, 민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평소와 다른 그의 과묵한 분위기에 말을 걸지 못했다. 그저 민우가 앞에서 길을 헤치고 내가 그 뒤를 묵묵히 좇을 뿐.

그렇게 한참을 가던 차 였다.

"민하야, 다 왔어."

난 마지막 산길을 헤치고 내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광경을 눈에 새긴다.

"예쁘다..."

내가 멍하니 연못가를 망막에 새기고 있는데 녀석이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인정. 귀신이 어딨냐. 이렇게 예쁘기만 한 곳에. 안그래? 백민하 너가 다른 애들보다 용감하네. 얼굴값은 했다." 하며 다시금 날 보며 웃는 안민우. 달빛에 등진 그의 미소가 어딘가 어른스러워 보인다. 난 머쓱해져서 돌아가자고 말하려 하는데...

삐-

?... 뭐지 방금?

머리 속이 새하얘지며 내가 보고 있던 연못의 표면이 점점 가까워 지다가 이내 그 안으로 풍덩 들어간다. 등 뒤에 나를 부르는 듯한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온다. 이내 소리가 멀어져간다... 그의 기억도... 수면 밑으로 사라려 간다... 삐 -

삐- 삐 - 엄마... 삐 - 

삐- 삐 -



엄마?...

철컹철컹-

정신이 드니 여긴 달리는 기차 안이다. 투명거울에 비춰지는 나의 모습이 보인다. 눈이 오면 그 곳에 내려앉아 이슬이 되면 조용히 스러질 만큼 가늘고 긴 속눈썹, 성숙한 느낌이 드는 길고 자연스러운 컬을 가진 머리카락. 너무 붉지도 그렇다고 창백하지도 않은 선홍빛 입술이 깊은 수면에서 깬 모습을 반영하듯 짙은 한숨을 주기적으로 토해 내고 있는 서른 살 전후의 미인이 그 곳에 있다.

"엄마, 괜찮아? 땀을 많이 흘려"

난 옆을 돌아본다. 나를 빼다 박은 예닐곱 살의 여자아이가 날 걱정스레 쳐다보고 있다. 그래, 난 이아이의...

"엄마는 괜찮아. 민주야, 아빠는?"

내 말에 민주는 작은 머리를 갸우뚱한다.

"웅? 엄마! 아빠 만나고 왔어? 아빠 백 밤 자야 볼 수 있다며."

아차...

하지만 민주는 내 거짓말을 티끌만큼도 의심하지 않고 천진난만하게 웃는다. 나도 따라 웃지만 민주의 그것과는 다른 어른의 때가 묻은 죄 많은 웃음이다.

"민주야, 엄마 화장실 좀 갔다 올게. 금방 올 거니까 모르는 아저씨 따라가면 안된다. 알았지? 저번처럼 갑자기 없어지고 그러면 우리 민주 아야 하게 혼날 거야. 알았지?"

"웅웅. 여기 가만히 앉아 있을게 엄마."

엄마...

난 사랑스러운 내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엄마, 사랑해."

민주가 해맑게 웃는다.

그 웃음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씁쓸한 감정에 휩쓸린다. 나도 사랑한다 얘야. 눈물이 핑 도는 걸 보이지 않으려고 도망치듯 벗어나 무작정 한 방향으로 걸어간다. 열차 두 칸 정도 지나자 먹을 것을 파는 잡상인이 지나고 있다.

"저기요, 아저씨."

"예예, 뭘 드릴까요?"

그는 딸뻘인 내게 지나치게 굽신거린다.

물건들을 본다. 캔커피, 콜라, 사이다부터 시작해서 번데기, 오징어, 쥐포 심지어 과자 선물 세트 같은 꽤 덩치 큰 물품까지 다루고 있다.

"생수... 생수 한 병 주세요."

"예예. 여기 있습니다." 그가 두 손으로 내게 생수통을 건넨다. 

난 지갑을 꺼내 지폐 한 장을 그에게 건네고는 "잔돈은 괜찮아요"라고 말한다.

"물을 사서 먹다니 세상 참 별나졌죠? 하하."

난 그의 사람 좋아보이는 웃음에 가볍게 웃음짓는 것으로 답한다.

"그나저나 정말 미인이시네요. 저도 여기저기 열차 타고 전국 돌아다니면서 사람 많이 보지만 이렇게 예쁜 분은 보기 드물어요. 빈말 아닙니다? 하하... 그럼 즐거운 여행 되시길."

내가 무임승차로 잡상인 하시는 거냐고 물어보려는 데 그는 템카트를 밀며 반대편 칸으로 사라져 갔다. 묘한 이질감이 나를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난 기차 내 휴게실에 들러 사 놓은 생수를 들이킨다.

창가에 지나는 살풍경과 목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느낌이 어우러져 매우 상쾌한 느낌이 든다. 흩날리는 바람이 내 머리를 결따라 어루만지고 남편에 대한 기억이 직소 퍼즐 조각을 맞추듯 하나둘씩 맞춰져 들어간다. 

그 사람...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살아있긴 한 걸까...

결혼 후, 내 남편은 사업에 손을 댔다. 이유는 나 때문이었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결혼 한 나는 다른 내 또래 친구들처럼 술 마시고 노는 것을 안하는 대신 옷, 시계, 귀금속 등 사치에 관심을 가졌고 이는 작은 회시를 다니는 남편의 쥐꼬리만한 봉급으론 역부족이었다. 결국 내 사치의 댓가는 남편을 사직하게 만들었고 사업에 손을 댔지만 커다란 빚만 진 채 고리대금 업자들의 눈을 피해 잠적했다. 실종신고를 냈으나 이미 그것도 몇 해 전이다. 후회해봤자 지난 일... 

빚 때문에 장기가 사라진 채 비참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등의 뉴스를 접하면 마치 내 남편 얘기인 것처럼 가슴을 졸였다. 죽으려고도 생각해 보았지만 죽음을 생각하고 가까이 하는 사람일수록 그 무서움을 알기에 스스로 죽지 않는다. 죽음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 뭣 모르고 죽음에 덤볐다가 선을 넘는 일은 있어도. 

나의 미련함이 내 전신을 감싸며 죄여 온다.

남편은 내가 죽인 거야... 내가... 살아 있을 리가 없잖아?...

일어나 걸어보지만 현기증 때문인지 앞이 어지럽다.

민주에게 돌아가야는데...

털썩. 삐 - 괜찮아요? 여보세요 삐 -

정신차려요 삐 - 삐 - 엄마... 삐 -




삐 - 삐 - 엄마!

"엄마, 일어나 보세요." 

들려오는 목소리에 눈을 뜨지만 눈이 침침하고 시야가 흐릿하다.

"안경, 여기 있어요."

"민주니?"

민주는 "그럼 저 아니면 누구겠어요."하고 웃으며 내게 안경을 씌워준다.

그보다... 내가 안경을 썼었나?...

"무슨 꿈이라도 꾸셨어요? 꿈도 안꾸고 푹 주무시는 분이 잠꼬대도 하시고..."

민주는 나를 아이 다루듯 내 머리는 매만져 준다. 그러다 앉아있던 의자에서 허리를 90도로 굽혀 의자 밑에 있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그 안엔 약으로 보이는 캡슐들이 약통에 빼곡이 담겨 있다.

"그게 뭐니, 얘야"

내 말에 슬픈 표정을 짓는 그녀. 그녀는 내 젊은 시절을 빼다 박았다. 

난 그 모습에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온다. 그녀는 내 시선을 알아챘는 지 "영양제에요... 드셔야해요."하며 얼버무린다. 그런 후 내게 캡슐 두 어개와 미리 사 두었는 지는 모르지만 75ml짜리 의약용 드링크를 먹인다.

그녀가 주는 약을 먹고 "여기가 어디니" 하며 묻는 나

"그 말... 벌써 다섯번째에요. 병원이에요."

"병원? 왜? 누가 아프니?"

"..."민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픈 사람이 있었던가?... 미안하구나 얘야. 내가 요새 깜빡깜빡 하는 구나. 내게 누가 아픈 건지 되내어 주지 않겠니?"

"엄마, 그 누구도 아프지 않아요." 그녀는 억누른 감정을 쥐어 짜듯이 말을 했지만 목이 메인 듯 더 말을 잇지 못한다.

"그렇구나... 그렇구나... 사랑하는 우리 딸, 엄마가 사랑하는 거 알지?"

그 말에 그녀는 날 껴안는다. 그녀의 어깨가 가볍게 떨리는 것이 보인다.

"에구 우리 딸, 아직도 애기네 애기야"

난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져 준다.

"엄마가 미안해. 아빠 백밤만 자면 볼 수 있다고 얘기해 놓고 난 결국 널 아빠 없는 아이로 키우고 말았어. 그런 와중에도 이렇게 훌륭하게 커 준 너가 대견스럽고 고맙단다."

"왜 또... 왜 또 그런 소릴 하세요..."

그녀는 왜인지 모르게 눈가가 젖어있다.

그 때, 간호사 한 명이 우리 쪽으로 다가와 섰다.

"안민주 씨? 할머니 모시고 오지 말고 혼자 오시라 했잖아요! 학교 선생님이시라는 분이 정말..."

간호사의 차갑고 신경질적인 말투에 저승사자를 보는 것마냥 아연실색해지는 민주의 표정에 울컥해져서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진다.

"나한테 얘기하세요! 왜 우리 아이에게..."

"엄마, 그만 하세요"

놀랍게도 내 말을 가로막은 건 간호사가 아닌 민주였다. 난 당황스러워서 말을 잇지 못한다.

"여기 가만 계셔야 해요. 알았죠? 모르는 사람이 와서 가자고 해도 절대 따라가시면 안되요. 엄마. 제 눈 보세요. 부탁할게요. 잊으시면 안되요."

그 말에 난 마치 보호 받는 작은 새처럼 "으응..."하고 만다.

민주는 간호사를 따라 어디론가 사라지고 난 홀로 남는다.

대기실엔 환자들과 그 지인들이 있어 북적였지만 그것은 나로 하여금 더욱 외롭게 만든다.

카운터의 간호사 두 명이 무슨 얘길하는 지 자기들끼리 열심히 떠들고 있고 화상으로 보이는 응급환자 한 명이 의료진들에게 둘러싸여 대기실 앞을 긴급히 지나간다.

저 사람... 죽는 걸까?...

모든 장면 하나하나가 무서워지고 머리 속엔 계속 삐- 하는 소리만 들려온다.

난 늙었고 너무도 약해져 있다. 민주 없이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나는 어느새 아이를 보호하는 엄마에서 그 아이에게 보살핌을 받는 힘 없는 노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때...

난 익숙한, 아니 익숙했던 눈동자 하나와 마주친다.

그 사람을... 하지만... 이상하다.

살아있다면 그의 모습은 노인이어야 한다. 하지만 내 눈에 비춰지는 그는 어린 시절 장난스러운...

그 녀석... 안민우...

그는 날 바라보다가 등을 돌려 가버린다.

난 녀석을 뒤쫒는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부딪치고 넘어진다. 약한 피부가 찢겨져 나간다. 그래도 상관없다.

난 그를 만나야 한다. 그 사람에게 사과해야 한다. 내가 잘못했다고. 그리고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했는 지, 말해주지 못했던 말들을 해야 한다.

곁에 있지 않아서야 그 소중함을 알고 나서야... 나는...

내가 뛰고 그가 걷는다.

그러나 그의 등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병원을 나와 어느 학교를 지나 산길로 들어서도 이 추격전은 멎지 않는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 한 연못에서 그가 멈춰선다.

삐-

마침내 안민우를 닮은 그 소년은 뒤돌아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내게 말한다.

"괜찮아?..."





"안민주 씨? 상심이 크시겠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의사는 의료용 침대에 늙은 여자를 바라보며 사무적으로 얘기한다. 의사의 환자 진료 차트에 '백민하, 72세, 알츠하이머'라고 쓰여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민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늙은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귓바퀴 뒤로 쓸어넘긴다.

"안민주 씨?"

의사가 재차 말하자 민주의 공허한 눈동자가 그를 응시한다.

"선생님... 선생님이 굳이 말하지 않으셔도 알고 있어요. 제 엄마인 걸요. 엄마의 상태는 제가 더 잘 알아요. 다만 엄마랑 더는 얘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민주의 힘없는 목소리에 의사는 무언가를 말하려다 결국 이렇게 밖에 말하지 못한다.

"아마... 앞으로 말할 수 있는 기회가 한 두 번 정도는 있을 겁니다."

"아뇨... 엄마는 절 기억조차 하지 못하시는 걸요. 그게 정말 엄마와 얘기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관계라는 것은 기억을 공유할 수 있어야 이뤄진다는 것을... 엄마가 기억을 잃어버린 지금, 엄마는 이미 세상에 없어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요? 저는... 선생님, 저는 말이에요... 이미 오래전에 엄마를 보냈어요. 그러니 더는 슬퍼하지 않기로 했어요. 계속 슬퍼한다면 엄마도 저 때문에 떠나지 못할 거에요. 그러니..."

민주는 흐느낀다. 의사는 그런 그녀를 위로하 듯 그녀의 어깨를 토닥인다.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를 메마른 눈빝으로 쳐다 본다. 전에 병원 대기실에서 홀연히 사라졌을 때만 해도 자신을 기억하던 그녀였다. 그러나 몇 주 만에 발견된 어머니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했다. 무슨 수를 써도 소용없었다.

민주는 어머니의 침대에 이마를 기댄다.

삐- 삐-

민하의 생명음이 방안에 고요히 울려 퍼진다.

삐- 삐-




"괜찮냐니?"

"너 물에 빠졌었잖아. 봐 너. 옷도 다 젖었어."

난 내 옷을 살핀다. 물이 뚝뚝 떨어진다.

"너가 나 구해준거야?"

"어"

"왜? 너 나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그러자 민우는 평상시의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곧 웃으며 날 껴안는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라 너무 당황스러워서 어쩌지도 못하는 나.

"따뜻하지?"

"으응..."

"민하야"

"응?... 왜?..."

"저기 말야... 사실은 나 너..."

"너 뭐...?"

민우는 잠시 주저하다 이내 내뱉는다.

"싫어하지 않아."

...지구가 정지했다, 태양이 흑점으로 뒤덮이고 사막에 북극곰이 살기 시작했다, 원숭이에게 날개가 생기고 모기 크기가 사람만 해졌다 수준의 말도 안되는 그런 차원의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내 표정은 멍때림, 당황, 놀람을 순차적으로 거쳐 부끄러움에 이르고 얼굴은 새빨개진다.

"너... 너 그럼 만날 나 괴롭히던게 혹시 나..."

꿀꺽...

"좋아한다는 말은 안했다."

민우는 정색하며 말을 했지만 내 얼굴을 보더니 이내 쿡쿡 웃는다.

내 얼굴이 어지간히 허둥대 보였나 보다. 나도 무안해져서 같이 웃어버린다.  

"업혀"

"응?"

"업히라고, 민하 너 집에서 걱정 안해? 집에 가야지. 너 아까 보니까 이 조그만 산 하나 타는 것도 헥헥거리던데 약해빠져가지고... 빨리 업혀 이게 더 빨라."

"응... 미안"

난 민우의 등에 업힌다.

따뜻하다...

삐- 삐- 삐- 삐삐- 선생님! 여기 빨리! 삐 - 삐 -

여기 - 삐- 선 삐 - 급해요 삐- 삐-

"민하야"

"응?"

"너 나랑 사귈래?"

"뭐?"

"아니, 사귀어 줄까?"

"싫어"

"왜?"

"난 진지한 사람이 좋아. 민우 너처럼 장난스러운 애는 싫어"

"어? 너 지금 나한테 업혀 있는 상태다? 이 상태에서 뒤로 넘어갈 수 있어?"

"역시 싫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난 쿡쿡 웃는다. 민우도 날 따라 가볍게 웃는다.

"민우야" 

"어?"

"생각... 해볼게 사귀는 것"

난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낸다.

민우는 내 말에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무언가 흥얼거린다.

아... 이거 전에 학교에서 내가 좋다고 했던 노래인데...

난 민우의 따뜻한 등에 업힌 채 그가 흥얼거리는 노래에 집중한다.

그보다 아까 무언가 할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정말 중요한 무언가가...

...모르겠다 나중에 하지 뭐...

"민우야"

"왜?"

"나 좀 잘게. 왠지 졸려..."

"그래 잘 시간이지 그러고 보니..."

그의 말에서 이질감이 느껴진다.

"내가 데려다 줄게. 이만 자."

"으응... 그럼 잘게 고마워."

"이 정도 가지고 뭘... 내가 당연히 해야하는 건데. 잘자 민하야."

"응..."

삐- 삐- 삐-

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