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박하게 말하면 꾸민 이야기를 쓴다는 것인데, 쓰겠다는 것인데, 좀 얄궂지nasty 않나. 한가하게 이야기한다는 것도 아니고 꾸며 쓰겠다는 건데 좀 비정직스럽지 않나? 쓰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소설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수기나 자서전, 일기는 아니라는 건데 그게 말이 되는 건가? 이렇게 보아야 할 걸? 일기에다가 수기나 자서전을 섞고 이것저것 넣을 것 넣고 뺄 건 뺀다. 꼭, 무슨, 음식 장만하기.
이제서는 그게 뭔 짓인가 싶다. 왜 사서 거짓말을 땀 삘삘 흘리면서 하겠다는 건데? 아이 낳는 것처럼.
일기나 그런 데서도 하지 못할 말을 소설 형식을 빌어 한다?
순전히 자기 이야기지만 남들이 볼 때는 그것이 꼭 소설 같고, 소설이라고 썼는데 남들은 그걸 작가 사생활로 읽고.
어떻게 생각하는지들.
생각하다 보면 한도 끝도 없죠. 근데 지금 일어나신 거임, 아니면 아직 취침 전이심.
난 완전히 다른 마인드긴한데 폰이라 구구절절 쓰기가 힘듦... 다만 나는 소설을 좀 다른시각으로 보긴함
새벽 두세 시에 일어남.
제가 전에도 말씀드린 건데 건강 생각하셔성 일주일에 나흘은 금주하셈.
그러는 셈임.
일콜의 각성효과로 불면증 옵니다.
ㄴ 늙으면 일찍 일어나게 됨. 이렇듯.
홍동지에게 시는 자연이나 인생을 명료한 언어로 잡아내는 것이고 소설은 이야기를 꾸며 자기 얘기를 전하는 것이니 이런 생각이 들밖에. 그래서 고루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거지.
고루하지 않아요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일기에 수기를 섞어서 음식 장만한 그런 소설이 홍동지가 본 거기까지의 소설임. 20년전 문학 교과서 같은 것. 레퍼런스가 그따위고 최인훈파 운운하니 새로운 글 읽어도 눈에나 들어오나. 시도 마찬가지. 홍동지가 문학을 아는 것처럼 유세부리는 거 엄청 웃김. '문청' 40이라는 자기 주제와도 맞지 않음. 늙을수록 겸손해져야..
지당하신 비판입니다
글 오래 쓰면 등단을 했든 안 했든 권태기가 오지. 단, 등단을 했을 경우 적절한 당근과 채찍이 있을 텐데, 오랜 기간 채찍만 있었으니 더 그럴 수도. 또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지. 소설이 단순한 픽션인 줄 알았더니 인간 새끼들 하는 짓 보니 보이는 그대로 적어도 소설이 되네. 내가 이걸 왜 쓰고 있나. 이 사회를 방조하는 건 아닐까. 2012년 창비 최종심에 올랐던 그 작품으로 올해 신춘문예 등단하신 남자 분의 당선소감에 약간 그런 회의, 냉소가 묻어나더군.
또 어릴 땐 당선금도 큰 돈인데, 나이 좀 들면 사실 단편의 경우 직장 다녀 한두 달에 버는 돈이라. 더 회의가 들겨. 차라리 직장 다녀 돈 벌지. 내가 왜 인생 허비해 가며 이 짓을 하고 있을까. 어른스럽지 못한 것도 같고 그렇겠지. 소설의 독자를 고려해 화자의 연령의 넘나들어야 해서 더 그럴겨. 그래도 할 거면 참고 써. 내가 타임캡슐 써서 니 작품 이백 년 뒤에 대작가로 발굴되게 해 줄게.
근데...박민규, 편혜영 등 글 보고는 니 사생활 같다고 안 하잖아. 그 말 싫음 갸들처럼 장르를 좀 뒤섞어 봐.
나는 고루하다고 봄. 현대성의 반댓말이 그것이라면.
비평가 신형철이 한 말인데. 나에 대한 글쓰기에는 두 종류가 있다데. 있는 나를 파헤치기. 없는 나를 창조하기.
ㄹㅎ아재는 '있는 나'만 주구장창 파헤치고 그것만 읽는 분이야.
빨갱이냄새나는 소설쥐어주면 ㄹㅎ도 가치있다고해줄거야
써놓으면 이렇게 항상 뭔가 부족한 게 생기지. 모든 게 그런 거 아닌가. 소설이야 재미와 유익함 정도가 있어야 하겠는데. 상상력 이것을 나는 거의 혐오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그렇겟
겠군. 소설은 상상력 아니면 이룰 수 없는 건데 내가 이걸 거부함. 그러니 소설을 소설답게 쓰겠다는 게 아니지. 해리포터 뭐? 아유 이건 작품 축에도 못 들지. 그건 한갓 장난질에만 속하는 천박함이라고 보지.
심상:이미지 상상 상상력 환상 공상 망상 들을 나는 싫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