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그린다
그리다가 지워간다
나무는 밑그림을 새기는동안 그만큼 자라난다
자란만큼 지우고 또 그려간다
순례하듯 잎사귀들을 그려넣자
지금은 겨울이고
그런 것은 사라졌다고
언제나 나는 나무보다 한 박자 느리다
나무를 향한 제자리 걸음이 흔들린다
발자국은 미세한 느낌에도 낙엽처럼 쏟아진다
점에 박혀 가만이 깊어지는 삶을 엿본다
슬럼프 없이 단단한 박자로 팔을 뻗어가는
년마다 한번씩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려가는
그런 것은 없을지라도
조금씩 목표없이 커지고 무거워지기로 결심했다
끈질기고 집요하게
나무도 나도 끊임없이 키가 크고 무거워지는데
세상은 조금도 낮아지고 가벼워지지 않았다
조금씩 기준이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은 나무의 느낌뿐인데
나는 나무에 너무 가까워졌다
믿기지 않게도
열매가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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