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사랑

달력에 적어두기라도 하면 좋았을 걸. 나는 그 날이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도 달빛이 어스름히 묻어나는 여름의 끝자락이 아니었을까, 그날 셋은 작은 집 안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나와, 너와, 이제는 얼굴도 모르는 어린 친구 셋이서.
그리고 어린 친구가 술래가 되었을 때, 낭랑하게 울리는 목소리를 제치고 조심스레 큰 삼촌의 방으로 숨어든 내 발소리가 들린 것인지 방 구석 커다란 목제 장롱이 날 향해 조심스레 열렸다. 큰 삼촌이 그렇게나 아끼던 검은 양복들 사이에는 네가 있었다. 나는 뭐에 홀린 것인지 네가 내민 손을 붙잡고 장롱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거기 있어?
조심스러운 내 목소리에 너는 낮은 웃음소리로 대꾸했다. 숨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우리는 장롱 벽에 각자 몸을 기대고 서로를 마주보며 앉아 있었을 것이다, 접은 다리가 겹치고 얽혔다. 다시 숨소리가 들렸다.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색함에 몸을 뒤척이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바닥에 깔아놓은 눅눅한 신문지일 터였다. 넋 놓고 있는 사이 뺨에 체온이 닿았다. 작은 손이 내 얼굴을 감싸고, 숨소리가 가까워졌다. 입술이 맞닿았다.

더 이상 숫자를 세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꾀꼬리는 숨을 죽이고 움츠렸을 것 이다. 너의 손이 내 뺨을 떠나갔을 때, 이미 이곳은 우주였다. 너의 우주. 여전히 입술은 떼어지지 않았다. 그대로 너는 나에게 말했다.

-좋다.

내가? 아니면 이 비밀스런 행위가? 이 우주가? 네 목소리는 귀가 아닌 맞닿은 입술을 통해 연기처럼 내 몸 구석구석에 퍼졌다. 몸이 오싹했다. 발가락이 저려 꼬물대자 너는 아까의 웃음소리를 내며 나를 일으켰다. 우주는 너무도 크고 넓어서, 내가 깊이 손을 뻗어도 끝이 없을 것만 같았다. 우리를 감싼 별들이 바스락거렸다. 장롱 아래 눅눅한 신문지들이 모두 별로 변했나보다, 하고 생각하며 우리는 손을 잡고 그 별들의 위에 올라타 우주 틈새에서 뛰어놀았다, 아아, 처음사랑이 별을 타고 내려왔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아침이 온 뒤였다. 거실 소파 위에 셋의 몸이 엉켜있었다. 내 배를 베고 있는 어린 친구의 머리를 살며시 밀어내며 나는 몸을 일으켰다. 곤히 잠들어 있는 너는 평소와 같았다. 나는 내 입술을 만졌다. 장롱, 신문지, 입술, 그리고 우주.

-......좋다.

네가? 아니면 붉게 취한 내가? 그 우주가? 나는 손으로 네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파리를 쫓는 듯 손길이 내게 닿더니 너는 번쩍 눈을 떴다. 그 눈에는 여전히 우주가 보였다. 나는 그 우주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우주는 그 넓은 몸을 펼쳐 나를 안았다.
-잘 잤어?

그제야 나는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