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갔다 오면 몸이 아프다. 낯선 곳에서는 자는 것도 치밀한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그 공간을 함락하려 애를 써 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둘러싼 산림에서 시작되는 상쾌한 공기가 폐를 긴장하게 하고 더이상 무섭지 않은 산등성이는 기분 나쁘게 시야를 방해한다. 촌스럽게 섞이는 음악이 흐르고 불치병에 걸린 비장애인들은 웃음이 헤프다. 술, 담배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낯섦이란 질환에 있어서 이 둘은 최고의 처방전이 아니던가. '나'는 유실되었다. 평소보다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하는데 그러다 잠시 몸을 기대려하면 깨닫는다. "아, 이곳에선 몸을 기대는 것이 더 바삐 움직이는 거야." 그렇게 나는 그곳에 적응하지 못한 채 익숙해졌다.

  부적응에 익숙해진 후, 단 2시간만에 되돌아온 적응의 세계에서 나는 다시 외로웠다. 부적응이 적응이 되었고, 적응이 부적응이 되었다. 내 육체에 가장 가까이 있던 언어부터 부서져 내렸다. 음악은 이제 상황에 매끄럽게 스며들었다. 다시 한번 술, 담배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낯섦이란 정에 이 둘은 가장 적확한 시간과의 교환물이 아니던가. 1박의 시간이 흐르면 또다시 익숙함에 적응이 되겠지만 이전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마치 현현한 과거를 지닌 여자처럼, 아무리 하얀 천을 뒤집어 쓰고 그 위에 유화를 서너장 그려도 얼굴은 어제의 빛이 명멸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