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무플라주


먼 곳을 바라보다 주위를 둘러보면 낯선 세계가 있다

겨우 가까운 사물의 이름들이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저 멀리 지중해연안 가자지구에서부터 날아온 바람은

내 손바닥 곳곳에 굵은 역사를 새기고

담아 본 적 없는 풍경만이 신기루처럼 골목마다 일렁였다

나는 그림자를 옮겨 적듯 내 세계를 표절했네

계절의 시작을 달력에 적지 않는 것은 오랜 약속이었기에

나는 소나기에게 여름을 통보받았다


도심에 숨은 달은 화장을 고친 듯 빛을 내어 밤을 낯으로 위장했다

밤이면 땀에 젖은 꿈이 불청객을 맞이하고

길고양이들은 자신의 도플갱어를 찾아 누군가의 잠자리를 뛰어다녔다

아스팔트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는 내가 놓쳐버린 기억의 한 가닥처럼

목적지를 찾아 해매는 기류에 편승한다

구름이 새벽을 모방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거짓말이 서툴러 침묵을 닮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