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나날

 

- 정기석

 

 

오전과 오후와 저녁과 밤이 지나자

아침과 오전과 점심과 오후와 저녁과 밤과 새벽이 왔다

대체로 당신이었으나 때때로 나인 시간을 나누자

당신의 나날은 무리수가 되었으므로, 완전하지 못했다

 

당신의 시간은 대체로 일요일 오후였으므로

때때로 나인 시간도 대체로 일요일 오후에 머물렀다

대체로 당신이었으나 때때로 나인 시간에서

달력은 대체로 빨간색이었으므로, 우리는 불온했다

 

달력의 빨간 날들에 당신은 오후에 일어나

마른기침을 하였으므로 시간의 순서는 대체로 뒤섞였다

뜯기듯 나누어진 서사의 셈에는 피가 고였으므로

때때로 나인 시간 속 당신의 부재는 불투명했다

 

당신을 잃지 않기 위해 오후를 기억해야 했으므로

햇빛이 수평으로 눕는 두 번의 오후마다 커피를 마셨고

남은 커피가루를 창틀에 놓아 말렸다

커피는 때때로 말라갔으나, 대체로 눅눅했다

 

대체로 내 오후는 당신의 오후를 따라잡지 못했으므로

오후 뒤에는 노을이 뒤따르기 일쑤였다

어떤 밤에는 별이 없었으므로 서러웠고

어떤 새벽에는 수평의 해가 하도 길어 외로웠다

 

새벽 다음에 새벽이 오고 또다시 새벽이 올 때에는

기다림의 장력에 벽에 걸린 기타의 줄이 끊어지곤 했다

그럴 때에는 창문을 떼어다가 절반으로 접고 한 번 더 접었다

때로 더 접어질 수 없을 때까지 접었으나, 사라지지는 않았다

 

당신으로 산 시간의 겹이 정갈하게 나눠지지 못했으므로

커피 속에서는 버짐처럼 하얀 아몬드 꽃이 피곤 했고

당신의 오정吾正과 자정子正 사이 어딘가에서는

때때로의 내가 당신의 네 시를 관통한다고 착각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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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의 반대

 

- 최백규

 

 

 

나는 횡단보도를 보면 자꾸만 연주하고 싶어진다

#1이 신호등을 기다리면 반대의 횡단보도는 피아니시모

누구 하나 다 건넌 길의 뒤를 돌아보지 않아

솟아오르는 표지판의 뒷면이 항상 궁금했다

하얀 건반만 밟아나갈 때

초록 머리의 소녀가 뒷모습만 남기고 사라질 때

뒷면이 흘리고 간 무지개를 먹고

그녀의 얼룩무늬 원피스를 연주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지금, 태양의 14시는 발기된 혓바닥으로 중앙선을 핥고 간다

얼마나 많은 것들이 벌겋게 달아오른 돌기에 닿았을까

새의 심장을 관통하는 무수한 2차원들

나의 등뼈 위로 질질 흘리는 은근한 체크무늬

처음으로 알게 된 폐부의 간지러운 감각

새의 목을 잡아 비틀면

쏟아지는 내핵

 

자기장을 잃은 지구는 참 울퉁불퉁하구나

네가 마모되는 동안 나는 멀리 떨어져 앉아 구경을 했지

너 참 재미있는 아이구나

푸른색을 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지

10층에서 1층으로 가기 위해서는 뛰어내려야 해

푸른색도없다니쓸모없는새끼죽어버려!죽어버려!죽어버려!

 

손목이 비틀어지고 새의 등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해바라기의 고개가 꺾이는 장면을

어느 영화에선가 본 적 있지

무언가 시작되기도 전에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

 

아무도 없나 봐, 저기 새가 날고 있잖아

어디? 스크린 뒷면 오른쪽 위에 보이잖아! 눈을 감아야지 이 바보……

 

너의 눈알이 해체되는 사이- 그 속에서 태양계 너머의 영화를 볼 텐데

멋지지 않니?

횡단보도 밑 아스팔트가 카펫처럼 일어나 둘둘 말리기 시작하고

늘 바닥의 반대편이 궁금했었는데 얼룩말*의 등껍질이다

* 얼룩말의 가족단위는 1마리의 수컷과 여러 마리의 암컷, 새끼들로 구성된다.

 

 

 

 

 

** <심사평>

 

열네 분의 작품 140편이 본심에 올라왔다. ....

<중국 사원> 외 9편, <당신의 나날> 외 9편, <자연사박물관> 외 9편, <사보타주 신발> 외 9편,

<얼룩의 반대> 외 9편, <4월> 외 9편, <물의 식자공> 외 9편, 나는 지워지고 나는 남고> 외 9편,

<작은 단편의 나무서랍> 외 9편, <비폭력 대화 중> 외 9편, <열 세살의 장갑> 외 9편, <초경> 외 9편,

<누군가의 단검> 외 9편, <양우가 있던 자리> 외 9편

...

    당선작 <당신의 나날>외 9편에서 심사위원들이 높이 평가했던 것은 유려한 호흡과 언어감각,

시를 구축해 가는 시의 조형성과 분방함이었다. 산문화된 어법과 서술성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으나

그 산문성을 시적 리듬과 서사로 구축해 내는 시적 재능이 미더웠다. '당신(너)'으로 표상회된 세계를 향한

좀 더 내밀한 천착에 대한 요구도 덧붙인다.

    또 다른 당선작 <얼룩의 반대> 외 9편은 다분히 징후적인 시편들이었다. 그것은 단점인 동시에 장점이기도 했다.

지나친 죽음의식에로의 경도나 외래어 남용이 지적되기도 했으나 시인이 바라보고 있는 지점이 개성적이고

그 내면이 깊다는 점, 현실을 다르게 혹은 새롭게 명명해 내려는 시적 시도가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끝까지 심사위원들이 쉽게 놓지 못한 작품이 <중국 사원> 외 9편이었다. 시적 완성도가 높았으며

시적 진정성이 큰 장점이었다. 그러나 너무 다듬어져 있었고 너무 조심스러웠다. 좀 더 거칠게 내지르며

파탈擺脫의 지점들을 천착해 본다면 시적 열도와 넓이를 얻을 것이라 확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