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시가 접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충분히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 나도 처음에는 그랬으니까 완전 이해 가고...


  근데 좀 읽다 보니 나는 이제 시 읽고서 어렵다는 생각을 해본지가 벌써 꽤 오래됐는데...



  그때랑 비교해서 뭐가 달라졌을까? 생각해보면


  시를 더 잘 읽게 됐다, 흔히 말하는 더 잘 해석하게 됐다, 이런 것도 당연히 있긴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시를 보는 태도 자체가 변한 게 제일 큰 것 같다.



  한 마디로 시를 해석의 대상으로, 어떤 일관된 진술로 환원될 수 있는 텍스트 덩어리로 보면 시는 한없이 어렵다


  왜냐면 그건 불가능하니까... 도저히 성취할 수 없는 목표에 도전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는 까닭은


  당연히 시라는 장르에 익숙하지 못한게 첫번째고


  즉 어떤 다른 산문들을 읽는 방식으로, 하나의 메시지로 환원하고자 하는 습관이 들어 있는 게 첫번째 문제고


  두 번째 문제는, 이건 비약일 수 있지만 나는 좀 심층적으로 분명히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텍스트건 간에 자기의 앎의 범위 내에 확실히 편입시키려고 하는 일종의 폭력성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인 거 같음


  시 앞에서 겸손해진다는 건, 그리고 가난해진다는 건 그런 폭력성-욕심을 포기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 거 같아



  우리가 아무리 말도 안 되는 그림이나 심지어는 추상화를 보더라도 그게 '어렵다'고 생각하지는 않지


  오히려 요즘에는 굉장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테면 새의 머리에 몸통은 시계로 이루어져 있고 날개는 신문 뭐 이런 새를 포함해 여러 기괴한 사물들을 그려논 그림을 보더라도


  우리는 우선 전체적인 이미지를 조망한 후 오 느낌 있네, 혹은 흠 별론데, 이 정도에서 그치지


  왜 머리는 하필 새로 그린걸까 시계는 어떤 의미일까 왜 날개가 시계가 아니라 몸통이 시계인걸까 이 그림을 통해 결과적으로 어떤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걸까, 아 이 그림에서 표현된 대상들이 도무지 하나의 줄로 엮이지 않는다 존나 어렵다


  이렇게 생각하진 않는다는 거지. 반대로 말하면 시를 읽을 때는 그렇게 한다는 거고



  다시 말해서 그런 그림들을 보는 방식으로 시를 보면 어려울 게 하나도 없음


  시인이 뭐라고 말하면 우선 그렇다는 것임. 기형도의 포도밭 묘지2라는 시 앞부분을 잠깐만 보면서 예로 들면




  아아, 그때의 빛이여. 빛 주위로 뭉치는 어둠이여. 서편 하늘 가득 실신한 청동의 구름떼여. 목책 안으로 툭툭 떨어져 내리던 무엄한 새들이여. 쓴 물 밖으로 소스라치며 튀어나오던 미친 꽃들이여. (후략) / 기형도, <포도밭 묘지2>



  이걸 읽어보자.


  아아, 그때의 빛이여 -> 화자가 언제 빛을 봤나보구나


  빛 주위로 뭉치는 어둠이여. -> 아, 빛 주위로 어둠이 뭉쳤구나. 그건 무슨 이미지일까. 상상해보기만 하면 됨. 그림처럼. 나는 그냥 빛이 있고 가운데가 어두운 그림을 상상함. 그리고 빛이 우리의 시각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면 오히려 어둡게 느껴지는 그런 경험을 떠올려 봤고


  서편 하늘 가득 실신한 청동의 구름떼여. -> 아, 서편 하늘에 구름이 있구나. 그 구름이 화자가 보기에는 실신한 것처럼 보였고 청동처럼 보였구나. 구름이 실신하다니, 재미있는 표현이네. 구름을 보고 실신했다고 생각하는 걸 보니 화자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가 보구나.


  목책 안으로 툭툭 떨어져 내리던 무엄한 새들이여. -> 새들이 목책 안으로 내려앉았구나.


  쓴 물 밖으로 소스라치며 튀어나오던 미친 꽃들이여. -> 꽃들이 쓴 물 밖으로 소스라치며 튀어 나왔구나. (추상화를 생각하면 됨! 모든 언어적 결합이 그냥 가능함. '그냥' 회화에서 모든 이미지가 결합가능한 거랑 마찬가지로)




  그러니까 한마디로 그냥 써진대로 읽으면 됨.


  그리고 명심할 것은 거의 반드시 우리는 모든 시의 한 구절 한 구절을 다 이해할 수 없다는 거야.


  내 글에서도 보면 마지막에 꽃들에 대해서는 그냥 '언어의 결합'이라는 관점에서만 접근하고 그 낯선 결합에서 나오는 긴장을 느낄 뿐 어떤 확실한 이미지를 그려내고 있지는 않지. 여기서부터는 그냥 상상의 영역이야.


  상상의 영역이란 게 몹시 중요한데, 시는 어떤 문제를 내놓고 정답을 감추고 있는게 아니라, 그냥 출발점을 제시할 뿐이라는 거야.


  그리고 거기서 더 뻗어나가지 못하겠다면? 그냥 그건 넘기면 돼. 다시 말하지만 모든 구절을 다 이해할 수는 없어. 그냥 그렇게 불투명한 부분이 있는 거야. 원래. 그림에서 백지가 있는 것처럼. 그리고 백지가 그 자체로 어떤 미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강박증자처럼 시를 읽고 머릿속에서 그리는 이해의 그림에서 어떠한 백지도 용납할 수 없고 모두 채워야겠다, 이런 생각만 버리면, 그건 그 백지 그 자체로 그림의 일부가 되는 거지.



  그러니까 시는 별로 어렵지가 않아. 그냥 감흥이 별로 없을 수는 있겠지.


  내가 시를 어렵다고 생각해본지 오래된 건, 그런 카테고리 자체가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야.


  그냥 "좋은 시 / 안 읽히는 시" 이렇게만 놔두지.


  안 읽히는 시는 그냥 별로 감흥이 없고 굳이 시를 머릿속에서 이미지로 세세하게 그려보고 싶지 않거나, 혹은 딱 봐도 도저히 그릴 수 없겠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시야.


  그게 무슨 답을 감추고 있고, 나는 그것을 찾는데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지. 그러니까 자존심이 상할 일도 전혀 없는거. 그냥 우리는 서로 무관심한 사람들의 관계와 비슷한 것 뿐, 내 취향이 아닌 것이고, 굳이 말하자면 나라는 독자를 매혹시키지 못한 그 시가 실패한 거겠지




  자, 그렇다면 공부는 왜 하는 걸까?


  그건 시를 더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지.


  시를 꼭 재미있게 읽어야 하나? 아니 우리가 시에서 재미를 느끼기 위해 공부를 해야할 이유라도 있나? 라고 물어보면


  그런 이유는 전혀 없지.


  근데 그냥 농구를 하고 싶고, 재미있게 하고 싶으면 연습을 하는 것처럼


  시를 읽고 싶고, 재미있게 읽고 싶으면 연습을 하는 거지. 규칙을 익히고, 관습을 익히고, 그래야 그 장르적 틀 속에서 어떤 표현이 뛰어나고 어떤 표현이 관습을 깨면서 긴장을 성취하고 있는지에 대한 감이 생기지.


  머릿속에 틀이 없으면 그걸 깬 걸 봐도 무덤덤할 거 아냐?




  시에 있는 장르적 규칙을 익히는 방법은 당연히 평론집을 읽는 게 좋지.


  나는 개인적으로 시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 시라는 장르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출발은 오규원의 현대시작법 이란 책을 읽는거라 생각함


  그리고는 황현산, 신형철 등 쉽고 재밌게 글을 쓰는 비평가들의 평론집을 읽어가면 좋음



  그 사람들이 하는 것, 비평이란 결국 더 재밌게 읽는 것이고


  시를 '풀어내고', '해석하는' 게 아니라


  시가 제시한 출발점으로부터, 그 시가 허용하는 한계지점까지, 상상의 도약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게 좋음


  그러니까 보통 사람이 답으로부터 -가 되어 있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로 멀리 나아가 있다는 거지. '지나치게'멀리 나아가지 않으면서 그 시가 허용하는 영역을 가장 먼 지평까지 구체적으로 탐색해 보는 게, 좋은 비평이라고 말해볼 수도 있겠고...




  다시 아까 인용한 시를 잠깐 보면



  서편 하늘 가득 실신한 청동의 구름떼여. -> 여기서 아까의 독해에 보태서 '청동의 구름떼'라는 표현이 왜 좋게 느껴지는 지를 생각해볼 수 있겠지. 즉 시를 해석하는 게 아니라 내 느낌을 글로 풀어보는 거. "왜 나는 그렇게 느꼈을까?" 이런 질문. 아주 기본적인 거지만(완전 초심자를 대상으로 글을 쓰고 있으니) 청동은 딱딱한 거고 무거운 건데, 그런 대상을 부드럽고(실제로는 아예 촉감이 없지) 가벼운(이건 실제로는 무겁다고 하지만...) 대상과 결합시켰기 때문이겠지. 그런 낯선 결합에서 미감을 느끼는 게 시의 기본적인 감상 방법 중 하나인 거고. 그리고 우리의 통상적 이미지와 달리 구름이 정말 무겁다면 청동과 예기치 않았던 지점에서 마주치는 걸 발견할 수도 있고. 오, 그럴 수도 있겠네. 하면 되는 거지


  목책 안으로 툭툭 떨어져 내리던 무엄한 새들이여. -> 이것도 그냥. 기본적으로는 목책으로 내려 앉은 새를 표현한 거지만. 왜 무엄하다고 한 걸까? 그건 목책이 어떤 경계인데, 새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는 넘어가지 못하는 그 경계를 넘어가기 때문이구나. 여기까지 오면 속된말로 야부리를 털어 보는거야. 목책이 경계인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것이 아니지. 넘어가려면 얼마든지 넘어갈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은 그게 사유지라는 표시이기 때문, 결국 우리는 목책이 아니라 인간들 사이의 관계, 계약에 묶여있는 것이고, 새들은 그런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것들을 무시하기 때문에 '무엄한' 것이며, 결국 자유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겠구나. 그렇지만 그 자유로운 새들이 죽은듯이 '툭툭 떨어져 내리'는 걸 보니까, 화자가 그런 자유를 바라보는 시선은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구나. 죽음의 이미지가 겹쳐져 있네 뭔가.... 이런 식으로.


  쓴 물 밖으로 소스라치며 튀어나오던 미친 꽃들이여. -> 이것도 그냥...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일테면 비가 오고 나서 꽃이 피는 광경을 저렇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어느날 파랗던 초원에 가봤는데 꽃이 만개해 있다면 화자의 관점에선 "소스라치며 튀어나오"는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 어쨌든 이 꽃들은 굉장히 불안하고, 결국 화자의 심리가 불안하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






  시 전체와 유기성을 고려하면 수정될 부분이 있겠고, 이 자체로도 정합성이 완전히 있는 거 같지는 않아. 빨리 느낀 대로 써 본거라.


  그런데 그 자체가 하나의 놀이인거지. 과제가 아니라. 시의, 시적 논리의 연결고리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정교하게 느끼고, 그것을 글로 풀어내보는 놀이.


  갑자기 시가 어렵다는 말에 대해 써보고 싶어서 길게 써봤음. 누군가에겐 도움이 됐길... 글구 스압 ㅈ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