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에게 걸음마를 떼는 시기가 오는 것 처럼, 사람에게는 철학자가 되는 시기가 오기도 한다. 이유는 뭐, 제각각이다. 어느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거나,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문득 서늘하게 느껴진다거나, 간밤에 나쁜 꿈을 꾸었다거나, 애인과 헤어졌다거나. 혹은.

 혹은 밤의 지방도로에서 시속 135km의 속도로 트럭에 정면충돌하는 오토바이를 보게 되었을 때 그렇다.


 그해 겨울에 나는 철학자가 되었다. 예정에 없었던 사람의 죽음을 목격한 뒤에는 꽤나 긴 고민이 계속 되었다.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유치한 고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해의 겨울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무용해 보았다. 나는 결국 직장을 그만뒀다. 생각하고, 종일 잠을 자고, 가끔 깨어나고, 약을 챙겨 먹고, 다시 꿈을 꾸는 생활이 시작 되었다. 단조롭고 허무한 시간들. 예상이 가는 시간들.

 그래도 한사람을 바꾸기에는 충분한 생활이.


1.

 나는 좀 바뀌었다. 약간 더 우울해졌다. 꿈은 계속 되었다. 52번 지방국도. 오토바이가 속도를 높인다. 끝없이 높인다. 트럭이 달려온다. 밝은 빛. 서로 충돌한다. 꽈가가가각- 끼이이이익! 쿵. 쿠쿵. 오토바이가 찢어진다. 피가 좀 튄다. 팔은 이쪽에, 다리는 저쪽. 헬멧은 내 앞을 데굴데굴. 

 프로작을 몇 번 씹어보긴 했지만, 그것으로 해결이 되길 바랬지만, 우울증을 앓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건 별 도움이 안된다. 정말이다. 

 

2.

 우울한 사람들은 이따금 의외의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의외의 결정’ 말이다. 편견은 버리길 바란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라 하더라도 항상 음독자살을 하거나 청테이프로 화장실 창문을 막는 것은 아니니까.


 어쨌거나, 만약에 당신이 아무생각없이 거리를 걸을 때에, 낮선 여자애가 당신에게 말을 걸어온다면, 아니면 뒤에서 누군가가 당신의 팔을 잡아당긴다면, 나는 당신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던 걸음을 계속 옮기라고 권하고 싶다. 만약에 당신이 뒤를 돌아보았다면, 당신의 팔을 잡아 당긴 사람이 단발머리에, 예쁜 미소를 가지고 있는 여자애였다 하더라도 도망치길 바란다. 그녀가 귀여워 보인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미소가 아무리 매력적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말을 받아줘서는 안된다. 도망치는 것이 낫다. 


3.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4.

 그녀가 팔을 잡아 당긴 그날 하필이면 나는 조금 더 우울해 있었고, 하필이면 내 팔을 잡아끈 ‘여자애’는 꽤 예뻣던 데다, 하필이면 국내에 여섯뿐인 태정도의 신도였으며, 하필이면 나는 달리 할것도 없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할 것도 없이, 어느샌가 나는 그녀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제기랄. 하필이면 나는 엉겁결에 상제신에게 제사를 올리고 일곱 번째의 새천년영생교의 신도가 되고 말았다. 하필이면...


 

5.

  땡중은 새천년영생교의 교주였다. 국내에 조그만 메시아들 중의 하나였는데, 어째서 중이 ‘메시아’가 되었냐고 질문을 해도 속시원한 대답을 해주지는 않았다. 박박 깍은머리에 적삼가사를 입고 자신이야 말로 메시아이며 단군의 참 후예라 칭하는 교주가 마음에 들었던것은 아니지만 나는 출석 도장이라도 찍는 것 처럼 매일매일 그의 설법을 듣었다. 

 땡중은 꽤나 많을 말들을 했다. 어째서 바람은 이쪽에서 부는가? 어째서 사람은 사랑을 하게 되는가? 어째서 사람은 오욕칠정에 매달리는가? 어째서 상제님은 우리의 구원자인가? 어째서... 

 그래도 나는 묵묵히 땡중의 말씀을 들었다. 교리에 입문한 초보자답게 가끔은 눈치없는 질문을 하기도 했지만 대게는 입을 다물고 땡중의 말을 이해하는 척했다. 그러면서 종종 그녀의 옆모습을 훔쳐보기도 했다. 열중하고 있는, 반짝이는 눈이 내눈엔 퍽이나 예뻐보였다. 


- 나는 오욕칠정을 모두 버렸다.


 어느날인가, 땡중이 말했다. ‘어떻게 버릴 수 있습니까?’ 누군가가 물었다. 땡중은 입고있던 가사적삼을 훌훌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 이것이 내가 스스로 오욕칠정을 버린 방법이다.


 ‘아’ 우리는 숨을 죽이기도, 탄성을 터뜨리기도 하면서 땡중의 벌거벗은 그곳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아’ 나는 땡중의 그곳을 바라보고, 그녀의 붉어진 옆얼굴을 훔쳐보고, 다시 땡중의 그곳을 바라보고 했다. 

 확실히 땡중의 그 방법이라면 오욕칠정을 벗어던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땡중의 거기는 반쯤 잘려있었다. 원래도 그리 크지는 않았을 물건이었을 텐데. 절반쯤 잘린 땡중의 물건은 확실히 볼품이 없었다. 


- 저렇게 해야 오욕칠정을 버릴 수 있습니까?


 우리 중 누군가가 물었다. 땡중은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6.

 그녀와 잠을 자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날의 설법 이후로 우리 일곱 신도들은 어쩐지 열성이 식어버렸고, 차츰차츰 땡중의 설법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성별이 없는 존재는 매력이 없다. 종교의 교주라 해도 그렇다. 우리는 빠른 속도로 흩어졌다.

 '술한잔 할래?‘ 용기를 내어 문자를 보낸날 그녀가 내 자취방으로 왔다. 우리는 삼겹살을 굽고, 소주를 몇 잔 마셨다. 그녀는 한병도 다 마시기 전에 취해버리고 말았다.  

 ‘오줌을 싸고 올게.’ 나는 화장실로 가서 약통의 프로작들을 변기통에 흘려 버렸다. 그리고 그녀와 잠을 잤다. 그녀의 안쪽이 너무 비좁고 빡빡해서, 조금은 불편 했지만 그래도 따뜻했다. 최소한 프로작보다는 나았다. 그건 확실하다.


- 나 너에게 궁금한게 있어.


 그때. 나는 묻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길잃은 고양이처럼 깊숙히 잠들어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녀의 짧고 숱많은 까만 머리카락을 끌어안고, 가슴팍에 불어오는 약한 숨결을 느끼며 모처럼 수면제 없는 잠에 빠져들었다. 꿈속에서 다시 그 남자가 나왔다. 팔은 이쪽, 다리는 저쪽. 바뀐건 없었다. 꿈에서 깨어난 뒤에 나는 약간 쓸쓸해졌다


7.

 생각해보면, 그해의 겨울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리는 땡중의 설법을 들었다. 우리는 많은 밤을 함께하기도 했다. 이불 아래서 밀어들을 속삭이기도 했고, TV를 보며 키들거리기도 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했고, 한 사람은 나쁜 꿈을 계속 꾸었다. 러시아에서 동계 올림픽이 열렸고, 아프리카에서 기아들이 죽어가기도 했다. 우리는 헤어지기도 했다. 프로작에 잠깐 다시 손을 댔다. 해가 뜨고 다시 지고 지구가 몇 번인가 돌았다. 나는 조금 더 쓸쓸해졌다. 나는 밥을 먹었다. 수염이 많이 자라서 면도를 했다.


8.

그래서 삶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무엇이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