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재밌게 읽힌다면 충분히 놀라운 거 아닌가. 호밀밭의 파수꾼이 출판되던 당시 이 소설이 일으킨 파장의 동심원엔 소위 사춘기 질풍노도의 시기 소년이 가질 수 있는 어설픈 tough가 날 것 그대로 담겨 있었음에도, 그 날 것 그대로의 거침이 당시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기 때문인데. 그로부터 몇 십 년이 지났고, 이제 홀든 콜필드가 지닌 날 선 젊음은 너무도 어설픈, 중2병이라는 단어로 정의되곤 할 만큼 조롱의 대상이 되는 성격의 것. 즉, 과거의 충격파는 사라지고 순수하게 캐릭터와 이야기만 남은 것인데도 여전히 재밌게 읽힌다면 좋은 소설이라고 나는 생각.
v(222.106)2014-11-05 02:02:00
저는 이 소설을 5년 전쯤 사서 읽다가...서너 번을 못 참고 접었다가..그래도 유명하다니까 끝은 내보려고 도전했으나 인내심의 한계를 못 이겨 포기했습니다..첫 장부터 70 몇 페이지였던가까지..조금의 재미도..유익함도 느끼질 못했습니다..
진돗개~(strangelove)2014-11-05 02:32:00
아이러니한 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진돗개의 반응을 보면, 그 반응을 포함하는 선 상에서 외려 좋은 소설의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는 거 아닐까 싶음. 도무지 읽어내려갈 수 없는 소설을 서너 번씩이나 도전하도록 만들고도, 그 마저 조금의 재미도 유익함도 주지 못 해 칠십 여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게끔 만드는 확연한 가름. 소설이 이 정도는 돼야지. ww.
v(222.106)2014-11-05 02:45:00
맞는 말이다.
A(220.70)2014-11-05 03:09:00
호밀밭
피츠제럴드
스밀라
밀란 쿤데라
장편들 다 재밌더만
감각적
니들 한심하다
?(112.72)2014-11-05 04:58:00
그건 저. 그 소설은 저 단지. 글 재주로써 이야기를 끌고가는 힘일 뿐. 그 `숫자 과장' 빼면 전혀. 없다 싶슴.
ㅀ(183.99)2014-11-05 08:29:00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반응이라고 생각 해. 애초에 우리나라 문학도 아닌, 외국 고전 문학이 그렇게 공감될 리도 없고. 홀든이 고등학교에서 퇴학 맞은 이후의 방황을 그리고 있는 그 소설 자체는 2차세계대전 이후의 미국의 위선적이고, 속물적인 사회를 꼬집고 있음과 동시에 사춘기 시절의 반항에 가득찬 소년의 모습을 소름끼치도록 잘 묘사했다는 평을 받은 작품이거든. 일명 '미국판 수레바퀴 아래서'라고나 할까.
북극기린(rlfls0222)2014-11-05 17:11:00
거기다가 사회에서 느끼는 환멸과 부조리함에 대한 분노가 어린 아이의 동심을 지켜주고 싶다는 순수성으로 변화하는 부분에서 작가만의 고유한 교육의식도 볼 수 있는 거고. '호밀밭의 파수꾼'이 현재의 미국을 만들었다는 평이 나왔을 정도니까, 광적으로 집착하는 주인공을 통해 대변되는 '아이들의 순수성을 오염시키지 않는 교육.'이란 작가의 슬로건이 많은 미국의 지식인들에게 귀감을 줬을 거라 생각 해.
북극기린(rlfls0222)2014-11-05 17:17:00
미국 문학을 볼 때는 대부분, 미국의 역사와 그 당시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철학 같은 걸 같이 참고해주는 게 좋아. 예를 들자면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게츠비> 정도가 있겠네. 호밀밭의 파수꾼은 2차세계대전 이후의 문제점을 가장 잘 강조하는 작품이라면 '위대한 게츠비'는 1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의 허영심과 비도덕적인 사회상을 고발하는 작품이거든. 그보다 조금 더 오래 된 사회의 인종 차별을 주제로 다루는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역시 마찬가지야. 요즘 같은 사회에서 살다보면 '흑인 인종차별'이 굉장히 오래 전에 사라진 역사처럼 느껴지기에 <앵무새 죽이기>는 좀 공감이 안 되는 부분이 많을 수 있거든.
지금도 재밌게 읽힌다면 충분히 놀라운 거 아닌가. 호밀밭의 파수꾼이 출판되던 당시 이 소설이 일으킨 파장의 동심원엔 소위 사춘기 질풍노도의 시기 소년이 가질 수 있는 어설픈 tough가 날 것 그대로 담겨 있었음에도, 그 날 것 그대로의 거침이 당시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기 때문인데. 그로부터 몇 십 년이 지났고, 이제 홀든 콜필드가 지닌 날 선 젊음은 너무도 어설픈, 중2병이라는 단어로 정의되곤 할 만큼 조롱의 대상이 되는 성격의 것. 즉, 과거의 충격파는 사라지고 순수하게 캐릭터와 이야기만 남은 것인데도 여전히 재밌게 읽힌다면 좋은 소설이라고 나는 생각.
저는 이 소설을 5년 전쯤 사서 읽다가...서너 번을 못 참고 접었다가..그래도 유명하다니까 끝은 내보려고 도전했으나 인내심의 한계를 못 이겨 포기했습니다..첫 장부터 70 몇 페이지였던가까지..조금의 재미도..유익함도 느끼질 못했습니다..
아이러니한 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진돗개의 반응을 보면, 그 반응을 포함하는 선 상에서 외려 좋은 소설의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는 거 아닐까 싶음. 도무지 읽어내려갈 수 없는 소설을 서너 번씩이나 도전하도록 만들고도, 그 마저 조금의 재미도 유익함도 주지 못 해 칠십 여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게끔 만드는 확연한 가름. 소설이 이 정도는 돼야지. ww.
맞는 말이다.
호밀밭 피츠제럴드 스밀라 밀란 쿤데라 장편들 다 재밌더만 감각적 니들 한심하다
그건 저. 그 소설은 저 단지. 글 재주로써 이야기를 끌고가는 힘일 뿐. 그 `숫자 과장' 빼면 전혀. 없다 싶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반응이라고 생각 해. 애초에 우리나라 문학도 아닌, 외국 고전 문학이 그렇게 공감될 리도 없고. 홀든이 고등학교에서 퇴학 맞은 이후의 방황을 그리고 있는 그 소설 자체는 2차세계대전 이후의 미국의 위선적이고, 속물적인 사회를 꼬집고 있음과 동시에 사춘기 시절의 반항에 가득찬 소년의 모습을 소름끼치도록 잘 묘사했다는 평을 받은 작품이거든. 일명 '미국판 수레바퀴 아래서'라고나 할까.
거기다가 사회에서 느끼는 환멸과 부조리함에 대한 분노가 어린 아이의 동심을 지켜주고 싶다는 순수성으로 변화하는 부분에서 작가만의 고유한 교육의식도 볼 수 있는 거고. '호밀밭의 파수꾼'이 현재의 미국을 만들었다는 평이 나왔을 정도니까, 광적으로 집착하는 주인공을 통해 대변되는 '아이들의 순수성을 오염시키지 않는 교육.'이란 작가의 슬로건이 많은 미국의 지식인들에게 귀감을 줬을 거라 생각 해.
미국 문학을 볼 때는 대부분, 미국의 역사와 그 당시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철학 같은 걸 같이 참고해주는 게 좋아. 예를 들자면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게츠비> 정도가 있겠네. 호밀밭의 파수꾼은 2차세계대전 이후의 문제점을 가장 잘 강조하는 작품이라면 '위대한 게츠비'는 1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의 허영심과 비도덕적인 사회상을 고발하는 작품이거든. 그보다 조금 더 오래 된 사회의 인종 차별을 주제로 다루는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역시 마찬가지야. 요즘 같은 사회에서 살다보면 '흑인 인종차별'이 굉장히 오래 전에 사라진 역사처럼 느껴지기에 <앵무새 죽이기>는 좀 공감이 안 되는 부분이 많을 수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