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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윤태

-, 진짜 이놈만 잡았으면 펜타킬인데 말이야, 봤냐, 이 자식 집 안가고 부쉬에서 뭐하지? 궁 쏴봐.

옆 자리에서 친구가 허심탄회한 은어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난 그저 빈자리에서 다리를 올리고 의자에 기대어 앉아 물끄러미 그가 하는 게임 화면과 친구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친구는 그의 옆자리에 앉아있는 또 다른 친구와 투닥거리기도 하고, 박장대소도 하며 게임에 몰입해 있었다. 나는 그러한 위선적인 장면이 너무 싫었다. 또한 멍청하고 아둔하다고도 할 수 있는 그 장면이 너무 싫었다. 일시적인 소모일 뿐인 그 비생산적인 행동을 친구로서 가만히 보고 있자니 양심의 가책이 들었다. 그래서 몰래 옆으로 다가가 컴퓨터의 전원 버튼을 눌러버렸다.

-, 지금 뭐하는거야, 왜 꺼! 이 자식이 돌았나.

-게임하지 말고 밖에 나가서 볼링이나 치러 가자. 임마, 이게 뭐냐 두 시간째.

친구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어이없어하는 표정일 거라고 잠깐 생각했다. 하지만 왜 어이 없는거지? 나도 어이가 없어서 그 표정을 따라했다.

-미친놈이, 내가 내 돈내고 게임한다는데 니가 무슨 상관이야. 볼링은 니 여자친구랑 치러 가 이 자식아, 지금 한창 중요한 판이었단 말이야, 그렇지 않냐? 얘 왜이래?

그의 옆에 앉은 좀 뚱하게 생긴 다른 친구가 나를 영혼없이 바라보며 동의했다.

-윤태야, 그렇게 병신같이 서있지 말고 걍 꺼져. 이런 싸이코패스는 내 살다 살다 처음본다 야.

나는 순간 깊은 모멸감을 느꼈다. 그러고서는 과거의 스크린이 친구들의 조롱과 함께 뒤섞여 내 눈앞으로 지나갔다. 스크린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인 올리비아 뉴튼 존의 let me be there의 노래와 함께 모순된 상태로 나에게 전달되었다. 나는 그 속에서 영화같은 장면을 보았다. 나의 불우한 어린 시절과, 친구들의 희죽거림이 뭉크의 절규처럼 기이한 형상으로 휘어졌다. 나는 그 순간 본능적으로 맹한 놈에게 주먹을 갈겼다. 그는 내가 예전에 때려 죽인 강아지처럼 픽 쓰러져 머리를 감쌌다. 나는 주변에 있는 흉기라 할 수 있는 것들을 들어 내가 힘이 빠져 쓰러지기 직전까지 두 놈을 연신 패버렸다. 한 놈은 생사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맞아 움직이지 않았고, 다른 한 놈은 뺨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나지막이 신음소리를 냈다.

아마 눈물은 피에 가려져 있어 보이지 않았겠지만, 오열도 했을 것이다. 피시방 주인은 이미 경찰에 신고했는지 밖에 나가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고, 피시방에 있던 사람들 전부 나와 내 친구들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승리감과 후련함에 한참을 서 있다가, 밖으로 나갔다. 피시방 주인이 역시 나를 말렸다.

-잠깐 기다려 봐, 학생.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친구를 저렇게 때리고 그러면 쓰나? 피가 저리 나는데, 지금 가버리면 나중에 정말 큰일 나는 수가 있어. 여기서 해결하고 가.

나는 온 근육이 뻐근하게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오랜만에 힘을 썼더니, 주먹에 피를 묻혔더니 오래 묵혀두었던 폭력의 본능이 자라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것을 참아야 한다는 것을 느껴도, 그 느낌은 팝콘처럼 일순간에 분노로 터져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이 그 순간의 일부분일 뿐.

그로부터 3시간 뒤, 아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당장 내 걱정부터 했다.

-윤태야, 다친 데는 없냐? 전부터 그래왔지만, 자존심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도 곧 있으면 성인이야. 폭력을 함부로 쓰는 건 안 된다. 그것은 심심하다고 병아리를 해부하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이라는 걸 너도 잘 알잖냐.

아버지는 병아리라는 하찮은 미물을 말할 때 더 힘주어 강조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를 100원 주고 대량으로 사서, 몇 마리는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뜨리고 , 마구 웃었다. 나머지는 모조리 해부하면서, 생명의 신비를 두 손으로 느꼈다.

-아빠, 우리 가훈에 따라서 행동한 것뿐이잖아요. 지고는 못살아요. 모욕을 당하고 사느니 차라리 아빠 손으로 날 죽여요.

-.... 라는 침묵이 수화기 너머로 길게 전해져 왔다. 전자파의 웅웅거림과 함께 말이다. 아빠는 짤막한 한숨을 짓더니

-그래, 아빠가 다 알아서 해결할 테니, 집가서 밥 먹어. 바빠서 끊는다.

라고 하는 것이었다. 핸드폰에서 신호가 끊기고 내 마음의 무언가도 함께 끊긴 기분이 들었다. 이성을 잃은 뒤의 내 행동은 귀여운 병아리보다도 못한 것이 되지 않는가. 이번에도 아버지의 마음에 못질을 하고 스크래치를 남겼다. 기하학적으로 어지럽혀진 엘리베이터에서 거울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피가 선명하게 와이셔츠의 소매선을 따라 바지 윗단까지 이어져 있었다. 복부 부근은 더욱 심하게 묻어 있어서, 지나가는 누군가가 보면 오히려 내가 칼에 맞았다고 생각할 것만 같았다. 나는 마이로 그 복부를 살짝 가리고, 조금 긴박하게 뒤처리를 한 후, 등을 거울에 기대고는 세상 다 살아버린 노인이 푸념하듯이, 속에서 들끓는 핏죽을 뿜어내는 용처럼 고통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미쳤다, 미쳤어.

엄마는 현관문 앞에서 앞치마 차림으로 나와서 나를 반겼다. 얼굴엔 장례식장에서 누가 또 죽기라도 한 듯한 표정이 서려 있었다. 나는 조금은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이의 몸에 혈흔이 난자한데, 그 누가 태연하게 웃으며 반길 수 있으랴! 나는 들어가자마자 행복하게 다가오는 된장찌개의 구수함에 목욕해야 한다는 것을 잊고 주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빠는 경찰서에 간 건지 아직 오지 않아서, 식탁의 아빠 자리는 휑하니 비어 있었다. 밥은 방금 떴는지 김이 몽글몽글 올라오고 있었고, 된장찌개는 아예 활화산처럼 펑펑 쏟아냈다.

엄마는 내가 주방에서 밥을 뜨기 전까지 잔소리를 해대다, 내가 진짜 밥을 뜨니까 화를 냈다.

-목욕은 하고 먹어야지! 아직도 어린애야 넌.

엄마 말이 맞았다. 더러운 미물의 피를 씻어내고, 신성한 밥상머리에 앉아야지. 맞다. 땀 냄새와 피 냄새가 섞여 괴상한 냄새가 나는 와이셔츠를 벗었다. 거울을 보니 꽤나 각진 상체가 비추어졌다. , 이 정도면 어디 가서 꿇리지 않는 근육이야. 칠흑같이 막막하게 낀 수분들 사이로 내 상체를 보며 생각했다. 피가 끈적한 물엿처럼 내 가슴골 사이를 부드럽게 쓸고 내려갔다. 아빠, 미안해요. 취직할 때 까지만 부탁할게요. 이것이 내가 샤워하면서 한 마지막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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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학교에선 내가 벌인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내가 지나치는 복도의 구석구석 아이들이 없는 곳이 없었다. 마치 얼룩말이 복도를 걷는 것 마냥 나를 쳐다보며, 경멸과 분노와 공포와 환희가 섞인 표정을 모두 똑같이 지어댔다. 속삭이는 이는 없었다. 속삭이면 자신도 똑같이 당할까봐 그것만은 자제하는 것 같았다. 날 사이코패스로 여기는군. 그래, 그럴만도 하지.

그 새끼가 앉아있던 자리엔 관습적인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별로 아름답지도 않은 국화꽃이 두 세 송이 놓여 있고, 학생들은 잠시 침묵의 시간을 서로 공유한다. 선생도 동참하고, 그렇게 3분 정도를 묵념하며, 딴 생각을 하겠지. 나는 그 교실을 태풍이 일 정도로 세게 지나갔다. 학생들의 꼬꾸라진 고개가 우스워 보였다.

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업 시간에 엎어져 잤다. 선생과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내 안부가 뭐가 그렇게 궁금한지 가끔씩 흘끗 흘끗 쏘아보았다(나는 깨어 있어도 엎어져 있었는데, 그러한 분위기가 내 어깨 위를 짓누르는 것 같았기에, 보지 않고 알 수 있었다).

아마 쉬는 시간에 선생들 몇몇이 바쁜 걸로 봐서, 아버지가 이번에도 수습에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교장선생은 인감증명서와 자주색 도장을 양 손에 들고 바삐 복도를 움직였다. 담임선생의 멸치 같은 얼굴이 더욱 퀭해보였다. 나도 그 장면들을 놓치지 않고 담으려고 분주히 노력했다. mp3를 최대 음량으로 맞추고, 씨스타의 loving you를 재생시켜, 교장선생의 펑퍼짐한 궁둥이 흔들기를 감상했다. 복도 반대쪽에서 보는 궁둥이는 제철 오른 천도복숭아처럼 기세 좋게 이리 저리 씰룩댔다(교장은 고도비만이었기 때문에, 걸음걸이가 매우 우스웠다). loving you가 끝나고, westlifeseason in the sun이 흘러나오자 나는 흥미를 잃고 mp3를 껐다. 이런 중후하고 엄숙한 노래는 이 상황에 맞지가 않아. 이미 충분히 즐긴 나는 다른 친구들의 얼굴을 보려고 자리를 떴다. 상쾌한 늦가을 햇살이 대신 노래를 했다.

친구들은 내 무용담을 들으며 시도 때도 없이 웃어댔다. 한 놈은 얼마나 세게 웃었는지 화장실 문을 막 열고 들어온 선생의 안색을 파래지게 했다.

-진짜 대단한 새끼다 너도, 걔가 아무리 싸가지가 없어도, 죽을 때까지 때리다니 말야.

머리가 큰 한 놈이 창가에 기대 앉아 폼을 잡고 말했다.

-원래 얘가 얌전한 편이라 그렇지, 싸이코 기질이 있어. 그래도 너희 아버지가 빽이 좀 되니까 이렇게 쉽게 넘어갔지. 안 그랬으면 소년원 가서 짬밥 일찍 먹었을 거다. 큭큭.

훤칠하게 생긴 놈이 딴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아버지가 없었다면, 난 지금쯤 내 신변에 빨간 줄이 수도 없이 그어졌을 것이다. 그 빨간 줄은 스웨터를 짜도 될 정도로 촘촘했을 것이다.

-새끼가 새삼스럽게 왜 그래. 사람이란 말야, 눈 앞에 두려움이 있으면 아무 것도 못해. 두려움을 보지 않고 무엇인가 이루어내면, 두려움은 허무함으로 바뀌어 버리지. 너네도 느껴봤잖아. 저번에 가요제 때 밴드 꾸려서 나갔을 때, 너 이 새끼야, 긴장해서 대기실에서 토해가지고는 난리도 아니었었잖아. 근데 막상 노래 부르고 나서 관객들의 우렁찬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을 때 제일 먼저 신나서 앵콜 유도한 놈이 너였어.

애들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모두 선명하다는 듯이 그 자세를 곧이 곧대로 따라해 보았다.

-그렇듯, 나도 일단 저지르고 보는 거야. 두려움을 바라보지 않은 채로 말이지. 주먹이 먼저 나간다음에 생각해. 그럼 막힌 변기가 뚫린 것처럼 후련해지지. 그 두려움을 이겼단 생각과 함께 누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줄 아냐? 아빠가 제일 먼저 떠올라. 그러면 다시 두려움과 맞닥뜨렸단 생각에 내 자신이 한심하다고 느껴. 그 한심함을 이겨내기 위해 다시 일을 저지르는 거지. 내 패턴은 단순해.

애들은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 굉장한 권위의 상을 수상한 학자를 보는 관객들처럼, 일동 기립박수를 칠 모션을 하고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이었다. 수업을 알리는 단순한 실로폰 소리가 교내에 울렸지만, 우리는 수업에 갈 생각이 없었다. 맛있게 담배 한 모금을 빨며 저마다의 이야기꽃을 피워갔다. 나는 그 무리에 끼지 않고 다시 저번처럼 창틀에 몸을 기대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