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타워] ‘문학의 위기’ 문단민주화로 극복하자

기사입력 2012.11.20 오후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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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올해 한국 영화계는 대풍년이다. 마의 고지라는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한 영화가 두 편이나 나왔다.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최고의 상을 받는 작품도 탄생했다. 모두 사상 최초이다. 가요계도 마찬가지다. K-팝이라는 어쭙잖은 조어가 지구촌을 들끓게 하더니, 서울 강남에서 좀 놀던 가수 싸이가 말춤 하나로 세계를 순식간에 마구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여행업계는 외국인 관광객 1000만 명 돌파로 신이 났다.

조정진 문화부장그런데 지식·정보·창의 산업의 원천인 출판계와 문학계는 초상집이다. 중소형 서점과 서적도매상, 출판사들이 잇따라 도산하고 있고, 책들은 창고마다 재고로 가득하다. 문학 작품은 더더욱 외면받는다. 해마다 기대를 거는 노벨문학상 소식도 빗겨갔다. 올해는 특히 사상 처음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이웃나라 중국을 부러워하며 침만 흘려야 했다.

왜 그럴까. 원인을 하나하나 찾아가다 보면 높다란 울타리와 맞부딪힌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고립시키기 위해 가자지구 경계에 세운 6m 높이의 콘크리트 장벽보다 무서운 벽이다. 바로 문단권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이다.

일찍이 소설가 조정래 선생은 “군사정권 30년보다 문단권력 40년이 더 나빴다”고 힐난했다. 기자 출신인 김훈 작가도 “문학의 위기는 책이 팔리지 않고 사회 전체에 대한 문학의 위력이 전보다 약해진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이 지나치게 문단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문학은 문단이라는 울타리를 깨고 대중 속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원로 국문학자 조동일 교수도 이미 “문단권력 집단의 횡포가 지금처럼 심한 때는 없었다”고 진단하며 “그 폐해를 줄여 문학을 살리려면 새로 등장하는 진정한 작가들의 비장한 결단과 시비를 제대로 가릴 수 있는 비평가들의 용기 있는 투쟁이 요망된다”고 처방전을 내놨다.

그럼 문단권력은 무엇인가. 조동일 교수는 출판사·잡지·일군의 비평가라고 꼬집었다. 이들 문단권력은 상업주의와 결탁되어 있고, 작가들이 작품을 팔아 생존하는 데 영향을 끼쳐 우려할 만한 사태를 빚어낸다고 지적했다. 1990년대 중반 다양하게 분화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문단권력 하면 잡지 창작과비평사(창비)와 문학과지성사, 그리고 그 동인들이었다. 그들은 작가·평론가 등용문인 신춘문예와 문예지의 신인상 심사, 각종 문학상 심사위원, 문예지의 필자 선정, 원고료 책정, 그리고 작품집 출판 여부까지 모든 권한을 틀어쥐고 문단을 좌지우지했다.

요즘엔 여기에 일부 대학 문예창작학과와 유명 작가들이 문단권력으로 추앙받고 있다. 심지어 버젓한 4년제 대학을 나온 문학청년들도 그 권력에 편입하기 위해 2년제 문창과에 재입학하는 웃지 못할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회원만 1만명이 넘는다는 한국문인협회와 국제펜클럽한국본부도 문단권력의 한 축을 차지했다.

정종명 문인협회 이사장은 2년 전 출마의 변을 통해 “이렇다 할 작품도 없으면서 이력서가 넘치도록 수많은 문학상을 독차지한 사람, 길목마다 문학비나 시비를 세워 놓고 올곧은 문인들의 눈길을 어지럽히는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기자’인 필자는 여기에 일부 언론사와 오래된 문학담당기자도 문단권력에 포함하고 싶다. 일부 기자는 십 년 이십 년을 문학만 담당하며 스스로 시인·소설가·평론가 등 문단의 일원이 되어 문단권력의 벽을 더욱 높고 더욱 견고화하는 데 일조했다. 이들은 문단 권력을 공유하는 가까운 문우들에겐 지면을 아낌없이 내주고, 단행본 데뷔 작가 등 등단 형식을 거치지 않은 작가에겐 한없이 냉정했다.

다시 신춘문예의 계절이다. 이맘때만 되면 문청들의 마음은 설렌다. 하지만 기라성 같은 작가를 배출하던 예전의 신춘문예와 달리 요즘엔 데뷔작이 은퇴작이 되는 짝퉁작가·1회용 작가 등용문이라는 비아냥을 받고 있다. 문단권력 내 끼리끼리 문화의 한계와 밑천이 드러난 셈이다. 패기와 열정이 넘치는 신예 작가를 발굴하겠다는 신춘문예 공고문처럼 올해는 문단의 외연을 넓히는 도전자들이 당선되길 학수고대한다. 정치민주화, 경제민주화에 이어 이젠 ‘문단민주화’다. 

조정진 문화부장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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