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재작년에 응모했으나 떨어짐. 올해는 포기. 내년엔...모르겠음. 


  돌이켜 보면 스무 살 스물한 살 무렵, 아마도 시에 가장 깊숙히 빠져들었던 때의 나는 단지 시인이 되고 싶었을 뿐 등단이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과정에 대해선 무지했다. 나이가 들수록 시인이란 것은 등단이란 벽 너머의 존재라는 상식에 길들여지게 됐다. 그러므로 나는 시인이 아니다. '문청'이라고 하기엔 나이가 좀 많다. 그럼 문학중년이라고 해야 하나. 


  굴러온 짬밥이 있으니 바둑으로 치면 아마추어 3단이나 4단쯤 될까. 그러나 일부 랭킹 낮은 프로기사를 이기기도 하는 아마 5단 이상의 고수 급에는 들지 못하는 모양새다. 아마 5단이면 신춘문예나 문예지 최종심을 오르내리는 수준에 비견될 게다. 아마추어 3단만 되어도 어느 집단에서나 '바둑 좀 둔다'고 어깨 힘 줄만한 위치에 설 수 있다. 어느 집단이든 바둑 두는 사람은 극소수이기 때문에 그런 측면이 크다. 아무리 그래도 '잡기'인 바둑을 조금 둘 줄 아는 수준일 뿐, 그것을 업으로 삼을 만큼의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다는 점에서 이 비유는 적절한 것 같다. 


  이것을 현실을 깨친 결정이라고 해야할지 패배자의 변명이라고 해야할지 분간이 안 가지만, 아무튼 최근 공모전을 아주 포기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우선은 내가 그럴 능력이나 자격이 현저하지는 않더라도 모자라는 것만은 분명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창작보다는 비평에 더 익숙해졌다. 즉 쓰는 능력보다는 분석하는 능력이 더 우수하다. 내 시와 등단작들 사이의 수준 차이가 꽤나 명확하게 보였다. 21세기에 들어서 내 돈으로 산 시집이 10권 정도. 그마저도 21세기에 발표한 시집은 두세 권에 불과하다. 문예지를 찾아 읽는 것도 아니고 매해 등단작들을 섭렵하는 편도 아니었다. 한 마디로 공부를 안 했다. 이러고도 등단에 성공했다면 나는 아마도 엄청난 재능의 소유자였겠지만 현실은 기적을 허락하지 않았다. 


  '문청'이라 불러도 좋았던 시절에는, 교내문학상을 제외하곤 한 번도 공모전에 출품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다 재작년에 첫 도전을 한 이유 중 큰 부분은 논술강사 이력에 보탬이 될 것 같아서였다. 상금이 우습게 보일 정도로 부유한 편은 아니지만, 적어도 상금을 받고 싶은 생각은 거의 없었다. 명예는 어떨까.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가장 경사스러운 일로 기록될 것임은 분명했다. 모교를 빛낸 인물로 상을 받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대학설립 이래 최초로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것이니까(부연하자면 '지잡대'라는...). 그러나 당선을 통해 문인의 삶을 살아가는 상상은 도저히 길게 이어지질 못했다. 만에 하나 당선된다고 해도, 거의 분명하게 등단이 경력의 전부인 문인으로 서둘러 화석화될 테니까. 


  결국 상금이나 명예도 조금은 탐이 났지만 그보다는 '강사이력을 화려하게 빛낼 타이틀 획득'의 측면이 더 컸다는 얘기다. 이렇게 불순한 의도가 또 있을까. 다행히 이 불순한 의도는 정의롭게 진압되었다. 모두가 순수한 시심만으로 도전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대개는 내가 스무 살 무렵에 가졌던 마음과 크게 다르지는 않은 마음으로 결심하고 응모하고 두근두근 기다리고 아쉬움에 탄식하고 할 게다. 내가 낄 자리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평생 시를 쓰면서 살게 될 것이다. '한 번 문학의 그늘에 와 쉬어본 사람은 그 서늘함을 결코 잊지 못한다'는 대학 선배의 말을 증명하면서 말이다. 그리 살면서 자연스럽게 어떤 수준에 도달하면, 그리 느껴지면 다시 도전할 생각이다. 스무 살의 마음에 더 가까워지고, 등단 이후로도 내놓을 게 풍부할 만큼의 적재량을 갖추게 될 언젠가에 이르면 말이다. 시에 온 정열을 쏟는 문학청년들의 순간 순간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그보다는 훨씬 희석된 채라도 30년이나 40년을 한결같이 유지할 수만 있다면 그런 기회가 오지 말란 법은 없을 거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드물게 성취의 벅찬 감동을 느끼는 이도 있겠으나 대개는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가운데 끝내는 좌절과 탄식으로 마무리될 문청들의 연말연시...갈무리 잘하길 기원하는 마음으로...앞에 바둑 얘기 나온 김에 프로기사 조치훈이 필생의 업인 바둑에 대해 남긴 말로 마무리해 본다. 


  그래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