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편의 단편소설, 몇 편의 시로 작가로써의 자질을 판단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런 방식으로 골라낸 사람들을 등단자라는 이름 하에 소설가, 시인이라는 칭호를 주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이후에 그들이 써낸, 써낼 작품의 완성도및 작품성은 분명한 것들일까? 믿을 수 있을까? 어떤 예술분야에서도 이런 일은 없다. 영화감독 시험을 치르고 합격된 자들만 영화를 찍는다? 오디션에서 통과한 싱어송라이터만이 음악을 한다? 그러나 문학 부분에서는 이상할만큼 순문학과 장르문학을 구분하고 있고 '당선자'라는 명칭 아래에서 놀라울 만큼의 권한과 명예를 부여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많은 등단자들이 소리 소문없이 사라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의 다음 작품이 보여주는 지루함과 치기어린 세계관에서 독자들은 실망을 금치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등단, 신춘문예라는 문화 자체가 문학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근본적으로는 문학의 가능성을 늦추고 있다고 본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문단의 문제는 문단의 스타를 만드는 출판사의 경향에서도 찾을 수 있다. 어떤 공모전으로 당선이 된 사람에게는 작가로써 행복한 지원이 가해진다. 영리한 이라면 신춘문예보다는 출판사로 등단하는 것이 문단의 스타로가 되기 위한 든든한 스폰서를 갖는 일이라는 것쯤은 알고있을 것이다. 이미 노리고 있을 것이기도 하고. 그러나 그들의 소설이 정말 문학의 본질에 가까운 휴머니즘을 가진 이야기라고 느껴진 적은 거의 없다. 평론가들의 언론플레이? 요즘 많이 읽는 작가 정도로 트렌디 할 뿐이고 솔직히 말해서 그런 작가들을 좋아한다고 하면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다. 수퍼스타K, 케이팝스타 같은 스타만들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다음은 신춘문예다. 신춘문예 심사위원들은 창작자로써 그 작품들을 심사할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한 사람들이다. 시는 시인이, 소설은 소설가가 평론은 평론가가 심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창작자가 아니라 편집자가 그 글을 심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창작자로써의 시각이 아니라 편집자로써의 시각으로 작품을 바라보고 평가해야한다고 본다. 천 편에 달하는 작품을 단 몇 명 작가의 손에 의해 쥐락펴락 할수있게 둔다는 것도 이미 신춘문예의 위상이 땅에 떨어졌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이미 모든 예술장르에서 창작물은 상품이 된지 오래다. 등단은 사라져야할 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