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에는 왜 엉뚱한 작품이 뽑힐까?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차 한 잔 하면서 간략하게 요점만 말할 테니 들어봐라.


1. 신춘문예는 좋은 작품 뽑는 게 목표가 아니다.

- 신춘문예는 좋은 작품을 뽑는 게 목표가 아니고, 신문에 실리기에 그냥 무난한 작품을 뽑는 거다.

즉 일반적 기대와는 달리 '신춘문예'와 '문학성' 혹은 '문학적 성과'와는 하등이 관련이 없다.


- 신문은 신춘문예에 별로 신경 안쓴다. 회사를 좀 다녀보면 알겠지만, 직장인은 할일이 많다.

'신춘문예'라는 것도 그냥 연중 지나가는 업무의 하나일 뿐이고, 신문사나 기자나 그냥 무사히 지나가면 그게 끝이다.

신문이 '문학성' 생각하냐? 신문이 한 과학자의 인생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한 문학인의 생에도 별로 관심이 없다.


- 그저 아닌 것들을 걸러내다 보면, 그저 신문에 실을만한 어지간한 게 한 개는 남게 된다.

즉 'positive' 방식으로 선별하는 게 아니라, 'negative' 방식으로 아닌 것들을 걸러내는 거다.

왜냐하면, 신춘문예는 그저 재미삼아 하는 contest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심사위원들의 관심은 엉뚱한 데 있다.

- 난 제일 진짜 한심한 게, 심사위원이라는 사람들도 왜 그들이 심사위원인지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인물들이라는 거다.

게다가 심사위원이 기껏해야 2~3명이다. 니덜 이게 이해가 가냐?

아니, '신춘문예'고 뭐고를 떠나서, 이거는 무슨 애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공표된 무슨 "공개적 기준"이나 "공개적 과제"도 없다.


- 말 그대로 대중적인 글쓰기가 관심사항이라면 말 그대로 '대중'이 심사위원이 돼야 한다.

요즘 유행하는 '케이팝스타'처럼 대중이 참여해서 글의 가치와 흥행성을 평가하는 게 차라리 낫다는 거다.

그래서 그냥 출판하라는 것도 그 이유다.


- 그러면 심사위원들의 관심은 뭘까?

그게 가장 중요한데, "권력 현상", "권력에의 의지"라고 할 수 있다.


- 심사위원들은 자신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해서 자신의 '위신'을 세우고 싶은 거다.

그게 아니라면, 이런 '파쇼적'인 짓거리에, '문학'한다는 인간이 참여를 하겠냐?

정신 나간 짓거리지. 무슨 김일성, 전두환, 김정은이만 파쇼를 하는 게 아니다. 파쇼는 일상이다.

그걸 깨는 게 문학의 사명인데, 오히려 그짓거리 하고 있으니, 생각이 맛이 가 있는 애들이라는 거다.


- 그럼에도 요새 좀 이름이 알려진 젊은 작가들도 예심이나 본심에 참여하는 걸 볼 수 있을 거다.

왜 그러겠냐?

 아니 왜 그러겠냐... 그만큼 애덜이 요새 인간들이 작가라는 애덜도 생각이 없다는 거다.

그만큼 생각을 안하고, 가치 판단을 안 하면서, 뭐가 뭔지 그냥 휩쓸려서 그렇게 살아간다는 거다.

... 그러니 세상을 흔들만큼 좋은 글이 그네들 머리에서 나오겠냐, 안나오겠냐...? 

... 물론 좀 재미난 글은 가끔 쓰겠지, 그러나...그게 끝.


내가 작가라면, 신춘문예하는데, 나보고 심사보러 오라고 하면, ㅈ ㅗ ㄴ나게 신문사 까고, ㅈ ㅗ 나 욕해 줬을 거다.


- 특히, 나는 별 관심이 없지만, 요새 보면 '문창과'나 '국문과' 혹은 어문계열이 마치 글쓰기의 선두주자, 혹은 전유물인 것처럼 착각을 한다.


- 야.... 애덜아.... 이 세상에 가장 공평한 거는 그래도 그나마 "글쓰기"다. 초딩학교만 나오면 누구든 글을 쓸 수 있고, 쓸 줄 알아야 한다.

- 우리가 "언어"를 보존하고, "한글"을 아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사람의 입, 말할 권리를 막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 그런데, 요새 문학계의 권력 현상을 보면, 무슨 '문창과'나 '국문과', 어문계열이 글쓰기를 독점하는 전유물처럼, 그런 늬앙스가 있다.

이거는 말이에요... 김정은이나 니덜이나 똑같애 이눔둘아.


- 아니, 글쓰기가 무슨 수수께끼냐, 아니면, 독점해야 할 산물이냐. 아니...머리에 든 게 없는데, 혹은 세상을 전체적으로 조망하지 못하는데,

세상을 따지지 못하는데 좋은 글쓰기가 나오겠냐?


- 물론, 이게 작가의 특성이나, 어떤 기호, 성향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흥행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런 경향성은

궁극적으로는 문학의 본질적 지평, 문학이 생명력을 발휘하는 근원까지는 다가서지 못한다는 거다.


- 이런게 바로 "지대 추구 행위"(rent-seeking)이라는 거다. 이 시대가 혼돈스러운 이유는 바로 "지대" 추구 행위가 "과잉"이 됐기 때문이다.

- 이거 하나만으로 니덜 평생 글 써도 니덜 노벨문학상에 다가서 있을 거다. 이거는 당연하다.


- 마치 해괴하고 기교스러운 글을 뽑으면서, 사실상 "심사위원"이나 독점화하고 싶은 문학권력이나 사실상 "자위"하는 거다.

- 그럴수록, 문학은 점점 대중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출판시장은 위축돼 간다. 자기들 스스로에게 점점 독극물 타고, 자기 발등 찍는거다.


뭔 말인지 아냐.


그래서 다시 말하지만, 아닌 것에는 "No"라고 하고, 당당하게 부정하라는 거다. 세상이 죽은 이유는 글이 죽기 때문이다.

세상이 글을 대우해 주지 않는다. 오직 세상을 깨면서, 세상에 항의하고 저항할 때만 글은 살아난다.



*

그리고, 차라리 글 쓰고 싶으면 내가 생각해도 "문예지"가 낫다.

왜냐하면 신문은 그냥 이벤트다.

문예지는 문학하는 사람이 생존하려고 자기 밥그릇을 만드는 거다. 그래서 그들 틈에 끼는 게 낫다.

그런데, 굳이 거기에다가 무슨 평생 과제처럼 목숨걸 필요도 없다.


계속 얘기하지만, 니덜이 "창조"하면 된다. 지금 기성의 문예지들도 원래 있던 것은 이 세상에 단 하나도 없었다.


니덜끼리 뭉쳐서 새로운 문예지와 유통매체, 문예사조를 창조하고, 세상을 바꾸는 목소리를 내도 된다.

- 만약 이것도 아니라면,


나는 니덜에게 다시 한번 묻고 싶다.  도대체 뭘 하고 싶기에 글을 쓰고 싶다는 거냐?


- 게다가 나 같은 관점에서는 "창비"나 "문지"나 "문동"이나 다 마음에 안 든다. 애네들이 하나같이 뭔가 문제가 있다.

그래서 내가 문예지를 아예 창간하고 싶지만, 당분간은 침묵하겠지만, 아마 언젠가는 꼭 할 거다.


- 그래도 그냥 글쓰기라도 하고 싶으면, 차라리 "문예지"에 묻어가는 게 낫고, 그것보다 니덜이 그냥 창조하라는 거다.


- 그리고 항상 "대중", "시장"을 향해야 한다. 결국 판단자는 시장이지, 출판사나 심사위원이 아니다~

판을 키우는 건 스스로 해야할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