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원래 '신춘문예'를 안 읽는다. 신문을 보는 대다수 사람들도 그렇다. 니덜 생각과 달리 사람들은 '신춘문예'를 안 읽는다.
왜 안 읽는가? 그 이유는 니덜이 생각하는 바로 그 이유와 같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사람들은 '신춘문예'에서 전혀 감동받지 않으며, 이미 오래 전에 그 기능이 변질되어 있다고 벌써 생각하고 있다.
간혹 심심풀이로 누군가 읽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심심풀이로 읽었다가 더 열받을 것이다. 그래서 점점 사람들도 안 읽는다.
2.
그래서 나도 안 읽는데, 그나마 몇 편은 대강 훑어봤다. 읽은 건 아니고 훑어본 것인데, 단지 2편은 괜찮은 거 같다.
동시) 동그라미 사랑 - 이 글은 아주 잘 썼는데, 사물에 쉽게 기호성을 부여해서 그 의미를 확장했다. 읽은 이후에도 계속 기억에 남고, 여운을 남기고, 긍정적 혹은 진취적 생각을 하게 한다. 이런 시가 좋은 시다. 다만 이 동시의 작가가 20대 중반이라는 점에서는, 글 자체는 깨끗하지만 결국은 동시에서도 작가의 인위적 의도가 작용했다는 점은 아쉽다.
소설 ) 이은희 - 이 사람은 두 군데서 됐다고 하던데, 나는 이 사람이 얘기하려는 것보다, 이 사람의 "문체"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다.
그냥 눈으로 훑어봐도, 이 사람의 문체는 할 얘기를 이끌어 가면서, 그냥 쉽게 얘기하고 있다. 이런 문체는 황석영 씨의 문체와 비슷하다.
계속 얘기하지만, 글쓰기는 잘난 체하거나, 쉬운 것을 어렵게 꼬거나, 자신들만의 주제를 잡아서, 벽을 쌓고 지대를 추구하는 도구로 돼서는 안 된다. 그건 벌써 글쓰기의 의도부터 왜곡된 거다. 최근에 신춘문예 소설에서 본 문체로는 이 사람의 문체가 가장 설득력이 있다. 평이하고, 뭔가 기교를 부리려고 한 흔적이 별로 없다. 사람의 소설은 굳이 안 읽겠지만, 문체는 이처럼 평이하게 가져가면 더욱 더 눈에 쉽게 들어온다.
주제도 마찬가지다. 소설이든 응모작이든 요새 "언어 상황"에 관해서 주목하는 글이 더러 있는 거 같다. 그걸 과장되게 표현하거나, 혹은 어떤 소수 언어에 주목해서, 문학계의 관심을 받고자 한다. 그런데 이건 그 의도가 이미 노골적으로 표출된 거다. 순수하지 못한 이미 왜곡된 의도다. 그런 글을 써서 심사자들의 주목을 받고 싶은 거다. 이런 거 하지 말라는 거다. 내면으로부터 정말로 쓰고 싶은 것을 써서, 글을 통해 작가의 의도나 진심이 드러날 만큼, 호소력이 있을 만큼 쓰라는 거다.
3.
다음, 지금까지 내가 주장한 것들을 추리겠다.
- 신춘문예를 거부하라 : 글쓰기는 세상을 사는 최후의 보루의 하나이고, 그 사명은 "소외된 세계", "소수자를 보호하고", "인위적 장막"이든 "상상력의 세계"든 아니면 "금기"든, 한계에 도전하고 불의를 고발하고, 세상이라는 그 도도함과 경직성을 조롱하는 것이다.
잘난 체하고, 오히려 장벽을 쌓고,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게 좋은 글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춘문예는 이미 수십 년 전에 그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적어도 나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생각한다.
신춘문예든 무엇이든 "지대 추구"하는 행위가 돼서는 안된다.
문인으로 행동하고 싶은 사람이 세상의 부정을 조롱하고 비판하지 못하고, 스스로 줄서기로 들러리를 서면서 글쓰기를 포기하고, 피라미드 사회에 만드는 데 희생자가 되면서 동조하는 건 진짜 아무 생각없이 세상을 사는 거다. 신춘문예의 효과가 있다면,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사는 사람들을 걸러내는 거냐?
물론 재미삼아 내볼 수 있고, 젊은 날에 글쓰기 연습하는 동기로 삼을 수는 있으나, 딱 거기까지다.
- 문예지를 활용하라 : 차라리 문예지가 낫다. 그렇다고 문예지가 완벽하지는 않다. 하지만 국내 문예지는 출판사가 출판을 목표로 하는 지원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활용하면 좋다.
- 스스로 창조하라 : 문예지든 무엇이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책 쓰고 싶고 출판하고 싶으면 니덜끼리 뭉쳐라. 기업이 될 수도 있고, 세상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글쓰기가 도전인 것처럼, 그 연장선도 다 도전이다. 이 세상에 원래부터 있던 건 없다. 인간사도 마찬가지다. 옷을 입고 살 수도 있고, 옷을 벗고 살 수도 있다.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 다른 글쓰기도 많다 : 예를 들어, 드라마 작가도 좋고, 시나리오도 있다. 요새는 예전과 달리 콘텐츠가 융합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각종 장르를 스스로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대중성을 노린다면 드라마 작가, 시나리오도 좋을 거다. 아무튼 문학도 대중이 읽어줘야 하고, 호응해줘야 한다. 결국 판단자는 시장이다.
- 무엇을 쓸 것인가? : 다시 말하지만, 잘 쓰기는 쉽다. 나이가 어릴 수록 더 그렇다. 왜 그런가? 글쓰는 건 그냥 쉽게 쓰면 돼기 때문이다. 문법이나 띄어쓰기 같은 것도 요새는 간단하게 교정해주는 프로그램도 있더라. 어렵게 쓰고, 추리소설도 아닌데(추리소설도 사건만 꼬아놓았을 뿐이다.), 문장과 단어를 어렵게 가져가면, 겉으로는 좋아보여도 건강한 글이 아니다.
그러면, 결국 "무엇을 쓸 것인가?", "왜 쓰는가?"만이 남는다. 젊은 시절이라면 책도 더 읽어야 하고, 문학 뿐만 아니라, 세상을 보는 학문에 관한 소양을 넓혀야 한다.
- 무엇을 쓸 것인가, 왜 쓰는가? : 결국 이게 본질이 된다. "작가 정신"이 있어야 하고, 그게 자기 색깔이 된다. 뮤지션이 음악하는 거랑 비슷하다.
- 어떻게 재미있게, 대중들이 호응하게 쓸 것인가? : 흥행하려면 이게 중요하다. 그래서 예를 들어, 계속 이은성의 "동의보감 1,2,3"을 예로 들어주는 거다. 확실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글을 하룻밤에 소설책 3권을 다 볼 만큼 감동이 있어야 한다.
특히, 나는 여기서 "창조"한다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다. 글쓰기만 창조하는 게 아니다. 글 쓰는 환경, 유통되는 환경, 시장을 창조하는 것 자체도 창조하는 거다. 콘텐츠 시장에서도 효과적인 협업체계를 구축해서 시장을 창조할 수도 있다. 그건 또 도전이 필요하다.
나도 이런 것들에 도전 중이고, 공유하면 물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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