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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으로 글쓰기를 하면 절대 글쓰기가 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단편이 더 글쓰기가 어렵습니다.

단편은 아주 압축적이어야 하고, 글 전체에 위트가 넘쳐야 합니다.

독자들이 글을 다 읽었을 때, 그 감동이나 지적/정서적 충격도 명백해야 하고, 주제도 분명해야 합니다.

주제가 분명하지 않아도 다양한 문학적 해석은 결국 하나의 주제 군(群)으로 엮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쓰기가 어려운 게 단편소설이며, 작가의 입장에서는 아주 잘 설계하거나,


아니면 이야기는 단순해도 선명하거나 투명한 감동 혹은 여운을 남겨줘야 합니다. (예. 이번 경인일보 신춘문예 소설)


무슨 이번에 문제가 된 신춘문예 소설들처럼 아주 긴 세월의 시간을 아주 압축했다는 의미에서 압축이 아니고,

단편으로 처리할 수 있는 아주 생의 순간에서 놀라운 의미나, 남다른 의미, 혹은 새로운 생의 발견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요번에 '동아'나 '경향' 신문의 신춘 소설은 단편소설로서는 '졸작'입니다.

(읽은 게 이거 두 편이라 계속 예를 듭니다. 이거 두 편만 예로 들어도, 얘기하는 데 충분합니다.)


즉, 단편소설은 아주 쓰기가 어렵고, 단편소설 전문 작가를 지향하거나,

혹은 능숙한 작가가 된 이후에 도전해 볼 만한 장르라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단편소설이 글쓰기의 우선 순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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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은 금방 쓸 수가 있고, 자신의 단점을 가리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구상 이후에는 하루에 한 개의 단편소설을 쓸 수가 있습니다.

하루에 원고지 40장 정도는 워드로 칠 수 있는데, 넉넉하게 잡으면 3일 잡으면 퇴고까지 끝납니다.


왜냐하면, 단편소설은 작가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방식으로

밀어붙여서 분량을 채우면 되기 때문입니다.


분량에 큰 제약이 없으면, 그냥 자기 방식으로 얘기하다보면 분량이 차 있습니다.

물론 '완성도'는 논외로 하고, '쓰기' 자체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단편 쓰기는 자신의 단점을 가리기 쉬운 글쓰기 입니다.


왜냐하면, 분량만 어느 정도 채우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에,

자신의 글쓰기에 담긴 단점은 가리고, 장점으로 커버링하기가 십상이죠.

그 예가 바로, 이번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이죠.


그런데, 문제는 이런 식으로 해도 분량은 채워지지만,

결국은 전체 글을 놓고 보면, 문제가 발생한다는 거죠.

그 예가 바로, 이번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이죠.


좋은 글이 탄생하지 않습니다. 엉뚱한 글이 됩니다.

감동이 없고, 무의미한 글이 됩니다.


왜냐하면, 단편소설은 정말 쓰기 어렵습니다. 탁월한 재능과 감각이 있어야 하며,

초반부터 접근한다면, 오히려 경인일보 신춘문예 소설처럼 큰 욕심없이 평이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물론, 평이하게 접근한다면 쉽게 쓸 수는 있으나,

단편소설의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단편소설의 장점과 문제는 뭐냐 하면,

단편소설은 작가가 하고 싶은 얘기를 아주 짧게 집중해서 끝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깊은 얘기는 하지 못해요.

단편소설에다가 웅장한 얘기를 심으려고 하면 필히 실패합니다.

그 예가, 이번 동아일보 신춘문예 소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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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단편소설' 글쓰기부터 빠져 드는가?


단편소설이 쓰기 쉽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단편소설부터 연습시키는 타인에 의한 잘못된 압박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타인에 의한 글쓰기 - 예를 들면, 학교에서 과제로 습작한다거나, 혹은 신문이나 문예지에 응모를 한다거나- 로 인해,

잘 쓰지도 못하는 데 단편소설부터 연습하게 되는 거죠.


자기의 글쓰기를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선 중장편부터 시작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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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중장편부터 글쓰기를 시작해야 하는가?


중장편을 쓰다 보면, 글쓰기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더불어, 자신의 글쓰기에서 추가로 필요한 점이 무엇이고, 부족한 점이 뭔지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작가는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충분히 하고, 보여주고 싶은 세계를 잘 보여주고, 글의 설득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독자도 예를 들면 '소설'이나 '창작물'을 통해 접근하고 싶은 세상이 그런 작품입니다.


님들도 잘 알다싶이, 지난 몇십 년을 놓고봐도, 국내에 기념비적인 단편소설이 별로 없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단편소설은 정말로 쓰기 어려운 장르입니다.

처음부터 단편소설로 접근하면 안되며,

그렇지 않다면, 시를 쓰는 마음처럼, 아주 소소한 것에서 의미를 낚아채야 합니다.

단편소설을 이번 동아일보나 경향신문 신춘 소설처럼 30년을 넘나드는 거대 서사로 이끌어 가면 그건...소설이 아니게 됩니다.

그냥 줄거리가 되고 말죠. 그래서 이번 동아일보 신춘소설은 그냥 줄거리 같은 느낌이 들죠.


예를 들어,

이번 동아일보 신춘문예 소설이나,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내용을 중장편으로 써냈다면 어땠을까요?


- 동아일보 신춘문예 소설이라면,

주인공(호주 남자)가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떤 의식과 생활의 변화를 보였는지, 그의 세계관은 어떻게 바뀌었고,

주변 세상과 주변인물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는 왜 그런 시선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지 잘 드러났을 겁니다.

옥희나 그들의 자녀도 마찬가지죠.

한편, 호주에서 점령의 역사가 한국 현대사와 어떤 면에서 일치하는지,

남북대결이나 5.18의 역사는 어떤 의미로 작가가 해석하여 작품에 투영하는지, 그런 사회역사적 맥락도 분명히 드러났을 겁니다.

... 다른 것들도 많으나 생략.

그런데, 이런 것들을 단편으로 압축해 버리니까, 도저히 단편이 포섭할 수 없는 것들을 시도하니까,

글이 그냥 건조해지고, 줄거리처럼 변하고, 글이 결국 죽는 겁니다.

- 즉, 사건도 죽고, 인물은 전혀 드러나지 않고, 갈등은 드러나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더 복잡해져서 독자를 혼돈에 빠뜨리고,

결국, 글 전체의 주제가 모호해지는..... 단편소설이 극구 지양해야만 하는 모든 것들이 다 드러나 보린 겁니다.


-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도 마찬가지죠.

주인공(남)이 왜 아버지한테 그렇게 별 감정이 없고, 처음부터 금고나 찾아나서는지, 주변 인물도 왜 그러는지,

정신나간 딸이라는 여자는 왜 그렇게 캐릭터의 일관성이 없는지, 왜 정신이 나갔는지,

왜 사람들간에 그토록 오랜 세월의 역사가 일어났는데, 그들간의 갈등이나 배경은 설득력 있게 그려지지 않는지,

... 다른 것들도 많으나 너무 졸작이여서 대부분 생략.

즉, 인물, 사건, 갈등, 개연성,... 그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잡혀 있지가 않습니다.


만일,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도 중장편으로 여유있게 접근했다면, 이야기에 설득력을 높이고,

인물, 사건, 갈등 상황에 계속 의미를 부여하고, 그 갈등의 본질과 긴장의 확대 혹은 해소를 해명하고,

작가가 말하고 싶은 혹은 글 안에서 만들어 내는 주제를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은 "금고"라는 장치를 첫 문장부터 드러내면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치로,

그 모든 단점들을 가리면서, 독자들을 끝까지 따라오게 합니다.

그런데 막상 다 따라가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상 유례없는 졸작이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죠.


cf.) 참고로 이런 어이없는 글쓰기는 천명관의 '고래'와 비교해서 잠시 얘기해 볼만 합니다.

천명관의 '고래'는 어이없는 글쓰기처럼 보여도 분명한 주제, 작가의식을 가지고 쓴 글입니다.

저는 천명관의 고래를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줄거리나 소개글로 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고래'는 도저히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추녀'들의 이미지를 가지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 특히 모성, 어머니들에 관해

돌려서 얘기하고 싶은 겁니다. 어머니는 '미인'이 아닙니다. '미인'들만 어머니가 돼야 하는 게 아닙니다.

모성은 결국 생명이기도 하고, 가족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천명관의 '고래'는 본질적으로 이 시대 가족의 위기를 풍자적으로

상황을 돌려서 얘기하는 작품입니다.

이런 예상을 결국 맞다고 생각하는데, 천명관의 이후 작품들이 대게 '가족'을 주제로 얘기를 진행합니다.


그런데, 이번 경향신문의 신춘문예 소설은 도저히 그런 주제조차 없습니다.

그냥 중1, 중2가 습작한 것처럼 소재를 엮는 건 생각했겠지만, 주제는 없는 그냥 그런 글쓰기가 돼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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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편부터 써야 합니다.

분량에 제한을 두지 말고, 여유롭게 글쓰기를 해야,


글에서 어떻게 소재를 활용하고, 주제를 담고, 인물과 사건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갈등의 긴장은 어떻게 드러내서, 작가 의식을 보여줄 것인가...


그런 것을 느끼려면 중장편으로 습작해야 합니다.


작가로서 몰입의 정신도 중장편 쓰기에서 더욱 확실해 집니다.


어느 시인처럼, 중장편을 마치 시를 연속으로 쓰는 것처럼 도전하거나 어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편하게 말하듯 이어서 쓰면 됩니다.


독자들이 원하는 것은 의외로 분량이 아닙니다.

많은 분량이라도 오히려 쉽게 읽으면, 글읽기 자체에서는 독자들이 오히려 더 큰 성취감을 느낍니다.


작가 측면에서도 좋고요.


겨울에 한 번 도전해 보세요.

절대 지금처럼 단편소설로 글쓰기를 시작하고, 무슨 단편으로 장난 치는 게 소설로 치부하는

'신춘문예'나 관련 당사자의 잘못된 관행에서는 절대. 절대. 좋은 글, 좋은 작가는 나올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