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에 글을  쓰고 지웠어

글을 쓰고 지운 노트엔 글의 느낌만 묻어있지

글보다 글의 느낌이 더 좋은 날이 있다


백지는 참 희다 그 곳에 고여드는 어둠은 조금만 어두워도 멀리서 보이겠지

침묵의 바다라고는 하지만 그 곳은 이미 소란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일 뿐인걸

일기같은 것은 그런 사각지대에 쓰는 것이야 그렇지 달의 뒷면 같은 곳


계수나무가 뿌리를 숨기는 곳 토끼의 배설물이 흩어지는 곳 귀찮은 것들을

쓰윽 밀어놓는 곳


노트에 글을 쓰고 지우면 백지에는 거뭇한 바다들이 묻어난다

그 어두운 곳에는 말들의 징조가 심어져 있고


미루고 미루던 표현들을 달의 뒷면으로 가져가서 바싹 말렸지

바삭바삭하면서 희고 따뜻한 것들이 흩어지더라


누군가가 찾아왔으면 좋겠다 이곳은 너무나 심심하다

흰 강아지와 나


별을 보면 흰 강아지는 짖고 흰 강아지의 울음소리는 하얗다

흰 강아지의 글씨는 까맣고


나의 그림자는 흰 강아지의 일기를 읽으러

달의 뒷면으로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