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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글들을 보고 있는데, 초코우유님이 쓴 올린 글인 “스탠포드 토비아스 울프 교수가 말하는 글 쓰기의 재능”이라는 글을 보고 갑자기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물론 저는 스탠포드의 토비아스 울프란 사람을 잘 모르고요, 이 친구를 구글로 찾아볼 여력도 안 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또 본격 논쟁적인 글을 쓸 생각도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냥 거기 적힌 글에 대한 얘기들만 주저리주저리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관성 같은 건 딱히 고려하지 않고요, 그냥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들을 쭈—욱 적어볼게요.

 

우선 그 글에서 “재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가요? 정[怔]답부터 말하자면, 네— 그렇습니다. 재능은 필요해요. 재능이 없으면 아무것도 적을 수 없습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천천히 풀어보죠. 우선 시詩든, 소설이든 문학은 기본적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영역입니다. 그리고 이 언어는 지극히 반(反)자연적인 속성을 지니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자연은 근본적으로 개체 중심적으로 돌아가는 체계입니다. 굳이 여기서 다윈은 진화론을 운운하는 건 좀 웃긴 일인 듯하니, 적당히 모든 생물 중은 자신의 개체성에 집중한다는 말로써 표현해보도록 합시다. 좀 더 직설적으론 다 자기 잘 살자고 먹고 자고 싸고 한다고요. 내 유전자 뿌리는 게 제1순위 목표고요, 일단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아, 물론 군집동물 내에선 몇몇 예외가 발생하지만, 이 역시도 그 궁극적 귀결점은 군집을 곧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이기주의적 발상에 기초하고 있는 패턴들입니다. 어…… 여기서 혹시나 이런 걸 자의식이라고 할 수 있겠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는데, 그건 좀 더 다른 차원의 얘기이기도 하고, 또 하면 얘기가 굉장히 복잡해지니,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가도록 합시다.

 

문갤에 이정도 자비는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사실 언어가 말하는 ‘인간’이라든지 ‘동물’과 같은 어휘는 자연에서 성립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저도 인간이고 문갤러들도 같은 인간인가요? 웃기는 말이네요. 도대체 뭐가 같다는 거죠? 저희는 생긴 것도 다르고 살아온 배경도, 그리고 아마도 목표하는 바도 다 다를 것입니다. 저희들은 개체적으로 서로 다른 생명체입니다. 종(種) 단위 공통점을 찾아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저희가 완전히 같은 수는 없음을 무너뜨릴 순 없지요. 문제는 바로 언어가 이런 고유의 개체성을 위협한다는 것입니다. 언어를 보세요. 여러분이 사용하는 언어의 8할, 아니 99%는 일반명사입니다. 인간, 책, 온라인, 스마트폰, 독서 등등 모두 일반명사에요. 딱히 고유명사랄 건 없습니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개체성을 지워버리죠. 걔 뭐, 군인집단, 대학집단, 기타 등등 집단으로 공통의 정체성으로 사용하는데 언어가 가지는 탁월성이 있다고도 표현할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경우에도 이런 집단화가 개체성을 흐릿하게 만들어버린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지요.

 

더 큰 문제는, 그렇다고 모든 대상들을 고유명사로 부르기 시작하면, 사실 언어체계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딜레마죠.

 

이런 의미에서 단순히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 언어 체계에 편입됩니다. 뭐랄까, 언어의 신체성이라고 할까요? 몸에 각인되는 거죠. 그렇게 본디부터 갖고 태어난 개체성은 새롭게 부여된 언어라는 새로운 피부를 입고 하나의 문법체계, 하나의 명사로 일반화됩니다. 이런 질문 한번 던져보세요. 여러분이 뭔가요? 대학생, 남자, 여자, 문갤러, 백수, 소설가, 시인, 독서가, 문장가 기타 등등…… 이 중에 여러분 이름을 빼고 고유명사가 단 하나라도 있나요? 오, 여러분 안타깝게도 여러분이 자의식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고유명사는 잉크 한 줌도 안 되는 여러분의 이름뿐입니다. 언어 바깥의 우리 존재는, 적어도 인식론적으론 무(無)입니다. 그래서 섹스가 즐겁죠? 언어 바깥의 신체적 접촉으로 자신과 상대방의 고유성을 재창조하는 작업이니까요.

 

※뭐, 물고 빠는 섹스를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갈 때까지 간 문돌이라는 구슬픈 증거겠지만…… 그래도 관계가 끝난 뒤에 베개 밑에서 여자한테 이런 말을 멋들어지게 읊어주면 적당히 감동하니, 문갤러분들은 참고도록 합시다.

 

자, 다시 논의로 돌아와서, 언어 자체에서 고유성을 찾는 것은 굉장히 난센스 같은 일입니다. 바위를 자꾸 굴리는 시시포스 같은 짓거리랄까요? 사실 인류가 언어를 사용하면서부터 개체성이 상실되기 시작한 마당에, 개체성을 찾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게다가 개체성을 지워버린 언어를 가지고 다시 개체성을 쌓는 일을 하는 게 바로 문필가들의 작업이 아니었던가요? 여기 보니까 아류(亞流)들에 대해서 가차 없는 시선들을 보여주던데, 걔 뭐, 아마도 그래서 몇몇 문갤러들이 보이는 지나친 자의식 과잉이 방어기제처럼 샘솟아 있는 거겠지만, 뭐, 아무튼, 언어는 필연적으로 아류를 만들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아류에 대한 비판은 지나치게 가혹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럼 문학에서 재능은 무엇일까요?

 

정[怔]답은, 일반명사들을 가지고 고유명사를 잘 만드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 역시 잘 생각해보면 굉장히 난센스 같은 답변이지요. 근데 뭐, 어쩔 수가 있나요? 문학이라는 게 언어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가 없는 운명인데. 고로, 일반명사의 고유명사화라—. 좀 더 매끄럽게 표현하자면, 아마도 이것은 재배열과 재구축의 문제일 것입니다. [오, 여러분 이게 탈(脫)구축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탈(脫)?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가능하긴 한가요?] 다른 버전으로 말하자면 서사를 잘 꾸려내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이 지점에서 철학과 문학이 본질 적으로 달라지기도 한 답니다. 걔 뭐, 이건 다른 때에 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일단 접어둡시다.

 

그래서 뻔한 서사는, 재능이 없는 사람입니다. 대개 이런 사람들은 사회의 톱니바퀴로 돌아가는데 좀 더 어울리는 사람이지요. 아아, 물론 제가 이런 톱니바퀴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없으면 사회 자체가 안 돌아가거든요. 제가 봤을 때 이 부분은 기질적인 부분인 것 같은데…… 걔 뭐, 생각해보니 이것도 딴 얘기니까 일단 접죠.

 

다시 논의로 돌아와서,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서사입니다. 좀 더 정확히는 개체가 가지는 고유의 서사성이지요. 이걸 잘 못하면 문학이란 링에서 내려와야 하는 것이고요, 혹은 철학이나 문학평론 쪽으로 길을 트셔야 하는 것입니다. 저 글에서 이런 말이 나옵니다. “창의적 글쓰기의 예술적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저자는 자신의 수많은 허구 속의 문장을 종이 위에 적지 않으면 견딜 수 없습니다.” 문맥 따라 해석은 달라지겠지만, 제가 봤을 때 이 말은 지당합니다. 예술적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언어가 일반화시키는 천편일률적인 사람들에게서 그들도 모르는 고유성[개체성]을 발견해내는 시선을 가진 사람입니다. 과학적으로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고요? 어휴, 그건 잘 모르겠네요. ‘과학적’이란 어휘는 문갤러한텐 너무 가혹합니다. 그냥 넘어갑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문갤에 이정도 자비는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그냥 섬세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정도로 표현하자고요. 그리고 이 섬세한 시선은 각각의 개체를 구체화시키기 위해서 일반명사들을 해체해서 다시 고유의 순서로 재배열합니다. 혹은 다른 요소들을 첨가하거나, 심한 경우에는 아예 다른 언어들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맨 후자의 방법은 소설이 극도로 어려워지는 것은 기본이거니와, 이를 실천하는 예술가가 아예 정신분열로 미쳐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문갤러들의 정신건강을 걱정하는 저는, 이 부분은, 적당히 토스해서, 흔히들 인류의 천재들이라고 불리는 광인(狂人)들의 몫으로 남겨놓을 것을, 적극 권하는 바입니다. 그건 귀찮고, 피곤하고, 또한 인생을 슬프게 만드는 작업이에요.

 

어, 근데 무슨 말하고 있었죠? 아, 그래— “창의적 글쓰기의 예술적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저자는 자신의 수많은 허구 속의 문장을 종이 위에 적지 않으면 견딜 수 없습니다.” 당연한 말이죠. 이 사람의 눈에는 세상 모든 것들이 각기 고유명사를 가진 대상으로 다가옵니다. 일반명사로 이들이 환원되어버리는 것을 참지 못하는 섬세한 감수성의 소유자들입니다. 흔히들 세상 사람들은 경제적 합리성 따위로 측정될 수 있는 부분들을 제외한 모든 정신적 가치들을 허구의 것이라고 몰아붙이기 바쁩니다. [저열한 유물론, 그들은 스피노자를 배워야 해요. 유물론은 충분히 경건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개개인들이 가지는 개체성은 합리성의 시선에선 허구와 같은 것으로 측정되고요, 가격표가 안 붙는다는 점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됩니다. 그리고 예술가는 바로 이런 무가치한 것들에게서 가치를 끌어올리는 이상한 작업하는 친구들이지요. 이건 그냥 덧붙이는 말이지만, 그래서 바로 문단이 늘 배고픈 겁니다. 빵을 원하신다면 경영학과로 가셔야 합니다.

 

여기는 자본주의적 타이타닉입니다—.

 

여기 남초죠? 여러분이 구명보트에 탈 확률은 통계학적으로 제로에 수렴할 거예요:)

 

이상으로,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으면서도 전혀 모르겠네요. 필자도 모르는 글을 독자가 알 수 있을까? 네, 아마도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 문학의 참된 매력이 자리 잡고 있지요.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문학가들은 뻐꾸기 같은 애들이에요. 지 자식을 남의 둥지에서 키우게 하지요. 이런 무책임한…… 뭐, 아무튼 이상으로 문학에서 재능은 서사성을 잘 만지는 사람이라는, 지극히 교과서적인 모범답안을 주저리주저리 길게도 싸질러 봤습니다. 뜬금없는 말이지만, 여긴 문갤이잖아요? 문학적 뻘글이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끝으로 다시 반복하죠,

 

문갤에 이정도 자비는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