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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일 오후에 문갤에 글을 올릴 수 있다니, 드문 기회입니다.

 

 오늘은 뻘글스러운 위로, 혹은 위로스러운 뻘글을 써보도록 합시다.

 

 위로니까,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문갤 전체에게”에게 따위의 광범위한 위로를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예수가 아닌지라 그런 전지구적인 사랑을 실천하기엔 도량이 좁습니다. 고로 대상을 좀 더 좁혀봅시다. 단도직입적으로,

 

 TT50에게 씁니다.

 

 어제 문학동네 작가상이 발표가 났고, 문갤에서는 TT50이 멘탈이 붕괴됐습니다. 저는 문갤에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TT50가 뭐하는 사람인 줄은 쥐뿔도 모르겠는데, 그래도 막연히 소설가지망생인가보다— 하는 느낌입니다. 2015-04-27 19:48:05자 게시물인 <멘탈 붕괴>(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literature&no=82220&page=2)에서 나온 내용들로만 추리해보건대, TT50 이 분은 이 분 나름대로 비전도 가지고 있고 노력도 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나름대로 공모전에도 자꾸 글을 내고, 또 남는 시간에는 조아라? 같은 웹상의 문학커뮤니티에도 글을 연재하는 모양이군요. 근데, 댓글을 보니 순수문학이랑 웹소설을 둘 다 하는 것에 대해서 아니꼬운 시선을 보내는 사람이 있더군요.

 

 이를테면 ㅇㅇ(192.42.)이 그런 애죠.

 

“이 새끼가 공모에 떨어졌었단 얘긴 전에도 있었다. 그건 과거고 그 과거에 더 묻힌 공모니 내 더 알 바 아니다만, 단지 꼭 하고 싶은 말은, 이 새끼가 듣거나 말거나,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는 거다. 난 이 새끼가 웹소설에 올리기는 관 둔 줄 알았다. 근데 그거 아직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신 나간 새끼다. 매우 아주 굉장히 등의 수식을 붙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타고 나지 않은 인간은 결코 웹소설을 쓰면 기존 문단적 소설을 병행할 수 없다. 웹소설류에서 최소한의 만족이라도 얻으려면 거기에 졸라 쏟아부어야만 한다. 그게 별 특별한 능력을 타고 나지 못한 대부분의 인간들의 비애다. 흔한 예로 김경주가 야설을 썼고, 카피라이터 일을 했고, 그 가운데 어디 쯤 그의 첫 시집이 있었을 것이다. 두번째 시집”

 

 제 생각에 “정신 나간 새끼”는 이 사람인 것 같습니다. 소설가로 직업으로 하고자 한다면 기본적으로 영감에 의존해 글을 적는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적고 싶어서 적는 게 아니라, 적어야 하기 때문에 적는 것이며, 이 부분이 바로 프로와 아마추어를 가르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죠. 그래서 어떤 글이든 정해진 시간동안 부단하게 매일 적는 게 중요합니다. 이건 피아니스트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으로, 하루라도 연습을 쉬면 음에 대한 감이 떨어지거나 연주함에 있어서의 어색함이 발생할 수 있지요. 그러니까 지속적인 연습을 통해서 기본적인 감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일기장이든 웹소설이든 어떤 식으로든 문장연습을 연마하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며, 순수문학과 이를 병행하는 것 역시 큰문제가 없습니다. 이 병행은 두 마리 토끼를 쫒다가 두 마리를 다 놓치게 된다는 격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며, 그보다는 약간은 서로 다른 방향일지 모르나 큰 틀에서는 문학이라고 하는 공동의 목표를 지향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아, 물론 쓰는 소설이 중학교 2학년이 쓸 법한 미숙한 문장과 소재에 의존하는 글이라면 문제가 있겠습니다만, 그렇지 않고 나름대로의 문장수준을 유지하면서 적는 글이라면 저는 큰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게다가 웹소설의 주된 부류인 장르문학의 소재를 순수문학에서 활용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배명훈씨도 이쪽 계열이고, 잘 생각해보면 초기 박민규씨의 소재들도 장르문학의 것을—만화적 상상력이라고도 하죠—적극적으로 활용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ㅇㅇ(192.42.)같은 말에 TT50가 귀 기울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아, 물론 제가 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그렇게 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됩니다만:)

 

 근데, 너무 비판한만 하면 글이 재미없죠? 이렇게 글을 쓰는 건 익명성의 혜택들을 무시하는 꼴이니— 좋습니다, 이제부터 ㅇㅇ(192.42.)을 까보도록 합시다. 뭐, 그렇다고 원색적인 욕설을 하거나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원래 문필(文筆)이란 게 나긋나긋한 문장으로 상대방을 열 받게 하는 데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매력을 지닌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 생각에 ㅇㅇ(192.42.)은 일종의, 희생자입니다. 저런 부류의 저열하지만, 한편으로는 동정심의 여지가 있는 안타까운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좌절과 무지가 저런 인간상을 만들어내지요. 저 불쌍한 사람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저 사람의 인생이 보입니다. 우선 그는 훌륭한 글을 쓰는 사람이 “매우 아주 굉장히 등의 수식을 붙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타고 나지 않은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합니다. 노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그러니까 노력의 땀방울이라고는 눈에 보이지 않는 완전무결한 천재를 상정하고자 한다는 말이지요. 이런 식의 결정을 내린 사람이 보이는 일반적인 특징은,

 

 우선 본인이 노력했던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아, 물론 본인은 일절 노력도하지 않고 단순히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질 떨어지는 인간도 다수이긴 합니다만, ㅇㅇ(192.42.)에게 아량을 베풀어서 그런 최악의 인간까지는 내려가지 않도록 합시다.

 

 ㅇㅇ(192.42.)은 나름대로 문학 쪽으로 노력을 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좌절했죠. 문학상에 공모했다가 떨어졌을 수도 있고요, 혹은 기대와는 달리 웹소설에서 쥐뿔 인기몰이를 하지도 못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상처가 컸겠죠. 본인이 한 일에 대해서 의미부여를 워낙 크게 했기 때문에 본인의 노력이 부족했을 거란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본인은 천부적인 재능도, 또한 근성도 가지지 못한 그저 그런 인간이 되어버리거든요. 자의식이 강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식의 평가절하를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한 능력을 타고 나지 못한 대부분의 인간들의 비애” 운운하면서 노력하다가 실수한 사람들에게 저런 혹평을 쏘아붙이는 겁니다. 이건 마치 학창시절에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50점을 받는 애가 자기 옆에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불구하고 50점을 받은 친구를 보면서 비열한 만족감을 느끼는 것과도 같은 맥락이죠. 루소를 좀 인용하자면, “시민들(Citoyens)은 자유를 지키지를 원하는 반면, 신민들(sujets)은 그들 자신이 더 이상 향유하지 못하는 행복을 타인들이 향유하는 것을 참지 못하며, 이웃에게서 자유를 빼앗을 생각만 했다.”

 

 결국 자의식의 상처를 타자에게 저열한 방식으로 투사함으로써, 나름의 안위를 찾으려는 짓거리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는 인생에 있어서 아무런 발전도 없을 자들의 마인드이며, 그렇기 때문에 TT50는 ㅇㅇ(192.42.)의 안타까운 삶을 동정해야 합니다. 이 친구는 여기까지인 친구에요.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이때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의 인생도 열등감 속에서 살아갈 것이며, 노력하는 사람들을 비웃는 것으로 자위하는 걸 유일한 낙으로 삼을 것입니다. 또한 그러면서도 열렬한 천재숭상을 더욱 깊어질 겁니다. 이건 인간의 의지로 어찌 되는 문제가 아니라 하늘이 내리는 타고난 문재(文才)가 되느냐 마느냐, 무슨 우생학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문학유전자를 타고난 존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야만이,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자신의 처지가 조금이라도 납득이 될 거거든요. 자의식을 보호하기 위한 낯 뜨거운 타협이자, 노예계약과도 같은, 민중의 아편과 같은 우매함이지만, 그럼에도 ㅇㅇ(192.42.)의 행동엔 동정의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아, 용서하고 저 치를 위해 기도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