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덕 교수의 책인 <비판적 추론과 증명>을 텍스트로 공부하고 있는 1(일)인입니다.
해당 서적에서는 문장 논리의 11개 파생 규칙 중 하나로써 '약화'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떤 문장 'Y'가 전제로 주어진 경우에 'X→Y'를 결론으로 추론하는 것이 허용된다. 왜냐하면 결론은 전제보다 약한 주장이기 때문이다."
라고 교재에서는 서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질문 드립니다.
1.
위 문장에서 결론은 전제보다 약한 주장, 이라는 문장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약한 주장이기 때문에 이것을 하나의 테크닉으로 사용 가능한 걸까요.
사실 개념 자체가 추상적인 탓인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일상적인 언어로 일례를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1
1번의 연장선상에서, 자연연역을 공부하던 중 생긴 하나의 의문입니다.
약화와 같은 제한 없는, 그러니까 막 갖다 붙여도 말이 되는, 테크닉이 허용된다면
자연연역의 논증 자체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 아닐까요.
다소 무례하게 들릴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인지하지만, 저처럼 이제 막 논리학에 입문한 초심자에게는
자연연역에서 타당성을 논증하는 것이 부당을 밝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교재에서는 전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결론을 논증할 수 있는 테크닉을 보여주는데,
이 과정에서 '전제가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면 논증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라는 회의적인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떤 자세로 논리학을 공부해야 하는 걸까요.
공부하던 중 이해되지 않는 점들을 누군가에게 묻고 싶은데 마땅한 곳이 없어 논리학 갤러리에 질문합니다.
답변 부탁드립니다.
약화인 이유는 이미 Y가 참이라는 것을 받아들였음에도 어떤 조건이 성립하면 Y가 성립한다는 문장을 받아들이기 때문이죠. 조건문 문장이 약화된 문장인 이유는 Y로 부터는 X->Y가 도출되지만 X->Y로 부터는 Y가 도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약화는 선언 도입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Y가 참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XvY는 선언도입으로 참인데 -XvY는 X->Y와 동치입니다. 이경우 약화의 의미가 더 명확해집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인이다."를 참으로 주장하는 사람이 "나폴레옹은 프랑스 인이다. 혹은 나폴레옹은 독일인이다."를 주장한다면 이는 주장을 약화시키기 때문이죠.
약화는 증명테크닉상 필요하고 또 건전한 규칙입니다. 다만 기존 주장을 약화하기 때문에 일상적 토론이나 대화에서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전제를 사용하지 않았다함은 그 결론이 체계의 정리라는 뜻입니다. 전제가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해석 혹은 모든 진리할당에서 참이라는 말도 되지요. 규칙에 의해서만 참을 전통적으로는 선험적 혹은 개념에 의해서만 참인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정도 이런 문장들을 받아들입니다.
가령 모든 총각은 남자다를 우리는 받아들이는데, 이문장은 총각의 정의를 결혼하지 않은 남자로 고려하면 전제 없는 참인 문장입니다. 형식적 도출은 이것이 전제 없이 도출됨을 보여줄 수 있지요.
결국 해당 logic에서 '⊢' 이 무엇을 상징하는가? Γ ⊢ φ 가 성립할 때 Γ와 φ의 관계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의 질문에서 시작하는 것이 가장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예를 들어 Γ ⊢ φ 의 의미가 'Γ를 모두 사용 가능하다면 φ를 증명 가능' 인 구조 논리라면, Γ ⊢ φ 로부터 Γ, ψ ⊢ φ 를 (그리고 다음 스텝에서 Γ ⊢ ψ → φ 를) 추론하는 약화는 매우 자연스럽고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Γ, ψ 를 모두 사용 가능하다면 당연히 Γ도 전부 사용 가능하니까요.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이런 vacuous한 추론에 거부감이 느껴진다면 Γ ⊢ φ 를 'Γ를 모두 최소 한 번씩 사용해서 φ를 증명 가능'으로 정의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임의적 약화는 허용되지 않고 모든 전제가 결론에 기여하는 체계가 얻어지는데, 이를 적합성 논리(relevance logic)라 하지요.
더 나아가서 Γ ⊢ φ 를 'Γ를 모두 딱 한 번씩 사용해서 φ를 증명 가능' 으로 본다면 선형 논리(linear logic)가 됩니다. 이 경우 Γ를 프로그램이 작동 과정에서 소모하는 자원으로, φ를 그 결과 제공되는 서비스로 보는 프로그램적 의미론과 자연스럽게 맞아 떨어지지요.
잡설이 길지만 요점을 말하자면, 현대 논리에서 단 하나의 참된 증명가능성 관계(⊢)란 존재하지 않으며, 각각의 logic은 현상을 편리하게 기술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한 논리가 전제하는 의미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의미론에 기반한 논리를 쓰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이 본질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두 분 모두 정성스런 댓글 감사합니다. 사실 시험 공부를 위해 논리학을 접하긴 했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이렇게 멋있는 걸 본 적이 있었던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논리학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비록 구구단 수준의 얕음이지만. 어찌 됐건 더 많은 지식과 체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다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자세로 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