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셈입니다. 귀납법 자체는 통계학 발달도 되기 전에 생긴 거라 표준편차니 95% 신뢰수준이니 하는 얘기는 하진 않겠지만 거칠게 말해서 통계학이 귀납법을 써도 되는 근거를 마련해 주죠.
PaulSohn(paulsohn)2019-06-30 21:10
답글
"주사위를 천 번 던져서 전부 3이 나왔다"라는 전제 하에, "다음에 주사위를 던져도 3이 나올 것이다"는 오류라면 오류겠지만 "(주사위의 확률분포가 시행마다 안 바뀐다면) 다음에 주사위를 던져도 3이 나올 확률이 99.xx%다"라는 옳은 결론에 충분히 가깝습니다. 그런 얘기를 하는 거에요.
PaulSohn(paulsohn)2019-06-30 21:14
답글
하지만 앞면 뒷면이 나올 확률이 같은 동전 100번 던져서 결과적으로 앞면이 90번이 나왔다고 다음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올 확률이 90퍼가 된다는 것은 분명 틀린 논리입니다. 아무리 10000번 던진다 한들 50퍼가 될 확률이 높다 뿐이지 결과가 50퍼가 나온다고 보장되진 않습니다. 결과가 앞면이 50.001퍼가 나온다고 그 확률이 맞다는건 비논리적입
익명(124.49)2019-06-30 21:15
답글
그리고 귀납법은 아마 아리스토텔레스가 틀렸다고 증명하면서 사용한게 연역법, 3단논법인걸로 압니다.
익명(124.49)2019-06-30 21:17
답글
연역법이 옳은 논리라면 귀납법은 그저 유추에 불과한 논리인것이지요..
익명(124.49)2019-06-30 21:18
답글
;;일단 "50%와 50.001%가 다르다" 는 논증은 없습니다. "95% 신뢰도로 확률이 50%±α다"라고 하지.
PaulSohn(paulsohn)2019-06-30 21:20
답글
자신이 지금 당장 동전 1000번 던져서 실험해 봤자 동전이 앞면이 나올 확률이 50퍼란 사실/논리는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즉, 동전이 앞면 나올 확률은 50퍼이므로 1000번 던져서 500번 정도가 나올거라고 유추하는 연역법이 옳은 논리입니다 자신이 실험한걸로 확률을 유추하는 귀납법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익명(124.49)2019-06-30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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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이 앞면이 나올 확률이 49.9%인지 50.1%인지, 아니면 사실 30%인데 운이 좋아서 앞뒤 반반으로 나오는 건지는 어떻게 아는데요? 그냥 경우가 두 개니까 공평하게 반반 나눠서 50%다? 신이 나타나서 이 동전의 확률분포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50%라고 계시해 주시면 정말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50%라고 '믿든가' 동전을 많이 던져봐서 결과를 가지고 동전의 앞면이 나올 확률이 50% 근방이라고 '추론'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PaulSohn(paulsohn)2019-06-30 21:28
답글
아리스토텔레스는 한편으로, 연역논증만으로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 낼 수 없다고, 반드시 어떤 전제가 있어야 하는데 그 전제의 참을 보장하기 위해 연역논증에만 의존한다면 무한퇴행이 일어나 버린다는 말도 했죠. (연역논증만으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 낼 수 없다는 것도 사실 후대에 와서는 부정되고 있지만.)
PaulSohn(paulsohn)2019-06-30 21:32
답글
그럼 앞뒷면 서로 정확히 50퍼가 나올 확률인 동전이 있다고 가정하면 되겠네요
익명(124.49)2019-06-30 21:34
답글
내가 유해하지 않은 물을 마셔서 죽지 않을 확률이 경험상으로, 귀납적으로 봤을때 100퍼라서 물을 마시면 죽지 않는게 아니라 연역법을 통해 논리적으로 보면 물이 100퍼 유해하지 않다는 전제가 있어서 죽지 않는것입니다.
익명(124.49)2019-06-30 21:41
답글
귀납법은 유추 수준에 지나지 않습니다. 논리를 알수 없을때나 귀납법으로 유추를 하는 것이지 논리를 안다면 귀납법은 오류만 야기하기에 논리적 사고방식을 하려면 사용하면 안됩니다
익명(124.49)2019-06-30 21:44
답글
사회적으로도 귀납법은 편견만 야기합니다. ex내가 그 나라 사람들을 만나봤는데 대부분 인성이 나쁘더라. 그 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인성이 나쁠거야 ㅡ 귀납법은 이런 일반화에 불과합니다.
익명(124.49)2019-06-30 21:46
답글
어디부터 잘못됐는지 지적하기도 아득한데, 혹시 이번에도 물을 1톤을 마셔도 끄떡없는 가상의 인간을 상정하셨나요? 물도 치사량 이상 마시면 사망합니다.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는 건 전제 포함해서 '"사람이 물 마셔서 사망하지 않는다면" 내가 물을 마셔도 사망 안한다' 까지입니다.
... 물이 중요한게 아니라 인간에게 완전 무해한 것이라는게 요점이였습니다. 그럼 물 대신에 숨쉬는것으로 바꾸겠습니다. 조건은 '평소와 다름없이'라는 것입니다. 또 물1리터처럼 이상한 설정 넣어서 인간은 독가스 들이 마시면 죽는다 같은 말은 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익명(124.49)2019-06-30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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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은 거기가 아닙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물을 마시면/숨을 쉬면 죽지 않는다"를 뭐 수긍가능한 전제로 받아들여도, 여기서 "평소와 다름없이 물을 마셨다" "따라서 죽지 않는다"라는 추론이 이어지지 않으면 무용지물 아닌가요. "평소와 다름없이 물을 마셨다" 라는 건 어떻게 아나요? 이미 몸은 그 '평소'보다 하루 늙었는데. "하루 가지고는 몸이 바뀌지 않는다"라면 납득이 가겠는데, 이것도 생각해 보니 경험칙이네요. 결국 어딘가엔 경험칙이 있어야 현상에 대한 주장을 할 수 있는 겁니다.
PaulSohn(paulsohn)2019-06-30 22:10
답글
설득은 포기했고, 그냥 가렵니다. 귀납논증이 엄밀하지 않다고 생각하시겠지만, 124.49님이 100% 연역논증이라고 믿고 있는 논증이야말로 엄밀하게 따져 보시길 바랍니다. 그 논증을 뒷받침해 주는 전제 중에는 경험적 사실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귀납논증을 연역논증하고 최대한 가깝게 만들기 위해, 또한 귀납논증을 잘못 적용/수용해서 나오는 폐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통계학자들과 자연/사회과학자들이 존재함을 알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PaulSohn(paulsohn)2019-06-30 22:19
답글
그래서 요점은 귀납법은 논리가 아닌 그저 추론에 불과하다고 계속 말씀드립니다. 경험을 통해 개념을 얻고 그걸로 논리를 펼치는것을 말씀하시는거 같은데 그건 귀납법과 연역법의 조화가 아니라 공리를 통한 연역법입니다. 이런말 드리기 죄송하지만 공리와 귀납법, 연역법에 대해 다시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공리란 말씀하신 개념이나 전제 정도로 생각하면 편합니다.
익명(124.49)2019-06-30 22:28
연역논증은 타당하거나 부당하다. 타당하다면, 건전하거나 건전하지 않다. 그에 비해 귀납 논증은 오로지 강하거나 약하다.
ㅇㅇㅇ(58.140)2019-07-02 02:45
그냥 넘어갈려 했는데, '아아, 그건 추론이 아니라 공리라는 거다'식의 유우머를 들고오시니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수리논리학에서 어줍잖게 공리 같은 얘기를 하니까 착각하고 계시는 건 본인이세요. 자연 논증에서 공리가 대체 왜 나오나요.
PaulSohn(paulsohn)2019-07-05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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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를 받아들인다는 건 "우리는 선험적으로 이러이러한 것을 생각할 수 있고, 이러이러한 게 맞다는 걸 알고 있다"에 모두 동의할 때나 가능한 겁니다. 이를테면 자연수를 하나라도 포함하는 집합 중에서는 가장 작은 자연수를 찾을 수 있다던가, 어떤 집합의 부분집합을 모아 새로 집합을 만들 수 있다든가 하는 거요. 이게 공리라는 겁니다.
PaulSohn(paulsohn)2019-07-05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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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 난 그 공리 동의 못함"이래도 논증은 멀쩡하게 성립합니다. 왜냐면 수학의 기술은 전반적인 문맥에서 베이스가 되는 공리계나 설명을 깔아놓고 진행하거든요. 특정 공리에 동의하지 못한다면 그걸 거부한 새로운 공리계를 만들어 놓고 새로운 이론을 전개하면 될 일이에요.
PaulSohn(paulsohn)2019-07-05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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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논증은 우리가 공통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참이라는 게 별로 없습니다. 특히나 귀납법을 배제한다면 아예 없는 거나 마찬가지죠. 님이 여태까지 한 건 "내가 이런 공리를 세웠고, 그럼 이런 결론이 논증된다. 따라서 이 결론은 참이다!"라는 비약이에요. 네, 님의 공리계에서는 그 논리가 타당하고 건전합니다. 그래서 누가 님의 공리계를 받아들이나요?
PaulSohn(paulsohn)2019-07-05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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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귀납법은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늘 존재하고 과학의 설명을 해줍니다. 하지만 논리학에 있어서 연역법과는 달리 사실적 지식늘 확장 할 뿐, 전제가 결론의 필연성을 논리적으로 인정되지는 못합니다. 또한 지금은 과학에서도 논리적 한계의 모순 때문에 귀납법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럼 경험에 대한 사실은 어떻게 취급하냐에 대해서는 후술 하겠습니다.
익명(124.49)2019-07-05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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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 '태양이 매일 아침마다 동쪽에서 뜬다'라는 과학적 가설을 추론했다고 할 경우에 이것은 증명을 요구하는데, 매일이란 하루도 빠짐없이 과거, 현재, 미래를 포괄하는 단어이다. 과거부터 태양이 수억 번을 동쪽에서 떴다고 해도 내일 아침도 똑같이 뜬다는 보장이 없고, 그러한 판단은 이전의 관측 자료를 근거로 하는 것이기에 귀납주의적 접근으로는 증명이 안된다
익명(124.49)2019-07-05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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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말은 데이비드 흄 이라는 철학가의 말을 인용한 것이고 이외에도 여러 철학자들이 논리학으로서도 과학으로서도 귀납법을 부정해 왔다. 버트런드 러셀의 칠면조 이야기같은 유명한 일화가 있으며 이런 귀납적 오류의 예시들은 당장 우리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익명(124.49)2019-07-05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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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논리학에서의 귀납법은 아예 틀린 취급을 받고 있고 과학에서의 귀납법 또한 논리적 한계에 의한 오류로 더 이상 귀납법을 사용하지 않고 '논리 실증주의'의 '가설 연역' 방법을 사용한다.
익명(124.49)2019-07-05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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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의 칠면조나 흄이나 귀납법을 잘못 쓰면 그렇게 된다는 경고일 뿐이지 논증에 쓰면 안 된다는 근거는 될 수 없습니다.(몇 번을 말하지만 논증은 명제의 추론뿐만 아니라 전제를 포함해야 합니다) 아니 애초에 안 쓰는게 불가능해서 흄 이래로 논리실증주의자들은 경험적 명제들도 같이 사실로 받아들인 건데요.
PaulSohn(paulsohn)2019-07-05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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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는 귀납법 더 잘 쓰자'는 게 통계학이 하는 일입니다. 통계학에서는 정규분포값 계산만 하는 게 아니고 원래부터 모은 데이터가 어떤 식으로든 바이어스를 가진 게 아닌지 온갖 방법으로 분석합니다. 러셀의 칠면조도 자신의 '경험'은 경험자가 자기 한명이라는 편향을 알아채는 시점에서 해소 가능한 문제입니다.
PaulSohn(paulsohn)2019-07-05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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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매일 뜨는 거요? 진지하게 내일은 지구가 태양에 충돌할 거라 생각하시나요? 시대가 바뀜에 따라 경험도 발전하고('경험'이 '관측'이나 '실험'이라는 형태로 바뀌고) 따라서 더 신빙성 있는 전제를 얻는 것이 가능해졌고, 현대인이라면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내일 지구가 태양에 들이박지 않는다는 설명을 할 수 있겠죠.
PaulSohn(paulsohn)2019-07-05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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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유인력의 법칙을 전제하면 굉장히(사실 '그런 대로') 정확한 논증이 가능합니다. 근데 이것도 잘 살펴보면 만유인력의 법칙이나 물리상수가 안 바뀐다는 것도 전제고, 그건 경험(+물리학 특유의 미학)에 의한 귀납추론인 겁니다.
PaulSohn(paulsohn)2019-07-05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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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학조차 적용하지 않은 어설픈 예시만을 귀납논증으로 간주한다면 귀납을 배격하고 연역만이 맞다는 판단을 하실 수밖에요.
PaulSohn(paulsohn)2019-07-05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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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란 근거에 맞게 다음 답이 바로바로 '정답'이 나오는것. 귀납적 추론은 그저 확률/통계적 추론일뿐 정답은 없음 논리학은 논리적 정답을찾는 학문.과학에선re: 이렇게 논리학에서의 귀납법은 아예 틀린 취급을 받고 있고 과학에서의 귀납법 또한 논리적 한계에 의한 오류로 더 이상 귀납법을 사용하지 않고 '논리 실증주의'의 '가설 연역' 방법을 사용한다.
익명(124.49)2019-07-06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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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납법이라는 걸 체험에 의한 중세 수준 귀납법으로 한정한다면 귀납법이 과학계에서 파기된 거는 맞아요. 근데 그로부터 설득력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해진 방법론을 쓸 뿐 과학은 넓은 의미로 귀납법 그 자체입니다. 논리실증주의도 막 공리가 고정돼 있는 게 아니라 실험으로 공리를 찾아야 된다니까?
PaulSohn(paulsohn)2019-07-06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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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법을 좀 바꿔볼까요. 논리학에서 하는 건 "A를 가정하면 B가 나온다"는 겁니다. 하지만 B라고 말하려면 A는 귀납적으로 어떻게든 정당화돼야 합니다. 고전 귀납법이 딱 그 정도였다면, 통계학은 "Z를 가정하면 논리적으로 A가 되는, 가장 보편적이고 설득력 높은 Z를 찾자"입니다.
PaulSohn(paulsohn)2019-07-06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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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Z→B는 님이 그렇게 원하시는 '논리적 추론'이 됩니다. 물론 Z도 귀납적으로 정당화되어야 하고, 편향된 가정 아니냐는 수많은 반박을 이겨내야 하지만, 원래 가정 A보다는 훨씬 강력하기에 연역만으로 얻어낼 수 있는 A→B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PaulSohn(paulsohn)2019-07-06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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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러셀의 칠면조는 님 같은 '연역주의자'가 빠질 만한 오류네요. A→B형태 가언명제만이 부동의 참이라는 사실에 안주하지만, 결국 실제 판단은 대개 정언명제로 해야 되고, 전제(공리) A가 맞는지 의심할 방법론이 없기에 맹신하는 수밖에 없겠군요.
PaulSohn(paulsohn)2019-07-06 00:39
답글
1.귀납적 추론을 통해 공리를 설정한다. 2.공리를 바탕으로한 연역법을 통해 정답을 찾는다. 이게 가설 연역 방법인데 여러가지로 생각해보니 확실히 과학이나 논리학은 연역을 통해 정답을 찾는것은 맞지만 귀납적추론을 통해 공리를 설정하고 그 기반으로 연역법을 사용 할 수 있으므로 귀납법은 무조건 틀렸다는 제 의견은 조금 경솔 했네요.
익명(124.49)2019-07-06 00:59
답글
'귀납과 연역의 조화'가 우리가 찾고 있는 논리적 정답일까요..
익명(124.49)2019-07-06 01:00
애초에 인간이 하는 모든 학문이 외부 데이터(세계)를 인간에 입력하고 출력되어 나온 결과 값이라 하면, 이 모든 것이 경험을 바탕으로 한 귀납적 추론이지. 수학의 숫자, 공리, 논리학의 추론 규칙 등 모든 것을 이렇게 볼 수 있는 거 같은데.
호호호히히히(nise1005)2019-07-06 11:31
답글
그리고, 그로 인해 공리, 논리학 등 인간의 모든 학문이 틀릴 확률이 ‘0’이 될 수는 없는 듯. 모든 것이 귀납적 추론이니. 이런 걸 느낀 서양 학자들이 동양 철학의 선불교의 사상(어떤 것을 인식하는 순간, 이분법이 생겨 진리를 알기 어렵다는 사상을 담고 있음.)에 혹하는 것인 듯.
호호호히히히(nise1005)2019-07-06 11:52
답글
그리고, 이걸 받아들이면 물리학에서의 양자역학(세상을 확률적으로 보는 시각)이 오히려 고전역학보다 자연스러운 거 같다는 생각이 듦.
물론 저 논증은 틀렸지만, 보통 한 번 던져본 거 가지고는 귀납논증이라고 안 할 텐데요..? 사례가 충분히 많이 반복되어야 합니다.
1000번 던지든 한 번 던지든 같은 맥락인거신데.. 한 번 던지고 추론하는게 불편하시다면 1000번 던지고 도출했다고 생각하셔요
주하위를 '천' 번 던져서 모두 3이 나왔다. ㅡ 주사위를 던지면 3이 나온다.ㅡ 그러므로 다음 나올 숫자는 3이다.
절대 같은 맥락이 아닙니다. 천 번 던져서 모두 3이 나왔다면 (적절한 통계학적 가정을 전제하에) 1001번째에 3이 안 나와서 논증이 틀릴 확률이 10^-n 스케일임을 수학적으로 보장할 수 있습니다.
두 번 던져서 하나는 3나오고 다른거는 아니라면 3이나올 확률은 50퍼 라는게 귀납법인 건가요?
그리고 10번 하든 1000번하든 차피 결과수에 따른 같은 맥락이라 생각합니다..
천 번 던져서 3이 500번 아닌게 500번이면 3이 나올 확률은 50퍼라고 할 수 있겠죠. 두 번 던져서 저걸 말하기엔 오차가 너무 큽니다.
그니까 횟수가 많을수록 오차범위가 작아지는거 말하시는거 같은데 그럼 결과 확인하면서 오차 줄여나가는게 귀납법인건가요?
그런 셈입니다. 귀납법 자체는 통계학 발달도 되기 전에 생긴 거라 표준편차니 95% 신뢰수준이니 하는 얘기는 하진 않겠지만 거칠게 말해서 통계학이 귀납법을 써도 되는 근거를 마련해 주죠.
"주사위를 천 번 던져서 전부 3이 나왔다"라는 전제 하에, "다음에 주사위를 던져도 3이 나올 것이다"는 오류라면 오류겠지만 "(주사위의 확률분포가 시행마다 안 바뀐다면) 다음에 주사위를 던져도 3이 나올 확률이 99.xx%다"라는 옳은 결론에 충분히 가깝습니다. 그런 얘기를 하는 거에요.
하지만 앞면 뒷면이 나올 확률이 같은 동전 100번 던져서 결과적으로 앞면이 90번이 나왔다고 다음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올 확률이 90퍼가 된다는 것은 분명 틀린 논리입니다. 아무리 10000번 던진다 한들 50퍼가 될 확률이 높다 뿐이지 결과가 50퍼가 나온다고 보장되진 않습니다. 결과가 앞면이 50.001퍼가 나온다고 그 확률이 맞다는건 비논리적입
그리고 귀납법은 아마 아리스토텔레스가 틀렸다고 증명하면서 사용한게 연역법, 3단논법인걸로 압니다.
연역법이 옳은 논리라면 귀납법은 그저 유추에 불과한 논리인것이지요..
;;일단 "50%와 50.001%가 다르다" 는 논증은 없습니다. "95% 신뢰도로 확률이 50%±α다"라고 하지.
자신이 지금 당장 동전 1000번 던져서 실험해 봤자 동전이 앞면이 나올 확률이 50퍼란 사실/논리는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즉, 동전이 앞면 나올 확률은 50퍼이므로 1000번 던져서 500번 정도가 나올거라고 유추하는 연역법이 옳은 논리입니다 자신이 실험한걸로 확률을 유추하는 귀납법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동전이 앞면이 나올 확률이 49.9%인지 50.1%인지, 아니면 사실 30%인데 운이 좋아서 앞뒤 반반으로 나오는 건지는 어떻게 아는데요? 그냥 경우가 두 개니까 공평하게 반반 나눠서 50%다? 신이 나타나서 이 동전의 확률분포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50%라고 계시해 주시면 정말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50%라고 '믿든가' 동전을 많이 던져봐서 결과를 가지고 동전의 앞면이 나올 확률이 50% 근방이라고 '추론'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한편으로, 연역논증만으로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 낼 수 없다고, 반드시 어떤 전제가 있어야 하는데 그 전제의 참을 보장하기 위해 연역논증에만 의존한다면 무한퇴행이 일어나 버린다는 말도 했죠. (연역논증만으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 낼 수 없다는 것도 사실 후대에 와서는 부정되고 있지만.)
그럼 앞뒷면 서로 정확히 50퍼가 나올 확률인 동전이 있다고 가정하면 되겠네요
내가 유해하지 않은 물을 마셔서 죽지 않을 확률이 경험상으로, 귀납적으로 봤을때 100퍼라서 물을 마시면 죽지 않는게 아니라 연역법을 통해 논리적으로 보면 물이 100퍼 유해하지 않다는 전제가 있어서 죽지 않는것입니다.
귀납법은 유추 수준에 지나지 않습니다. 논리를 알수 없을때나 귀납법으로 유추를 하는 것이지 논리를 안다면 귀납법은 오류만 야기하기에 논리적 사고방식을 하려면 사용하면 안됩니다
사회적으로도 귀납법은 편견만 야기합니다. ex내가 그 나라 사람들을 만나봤는데 대부분 인성이 나쁘더라. 그 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인성이 나쁠거야 ㅡ 귀납법은 이런 일반화에 불과합니다.
어디부터 잘못됐는지 지적하기도 아득한데, 혹시 이번에도 물을 1톤을 마셔도 끄떡없는 가상의 인간을 상정하셨나요? 물도 치사량 이상 마시면 사망합니다.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는 건 전제 포함해서 '"사람이 물 마셔서 사망하지 않는다면" 내가 물을 마셔도 사망 안한다' 까지입니다.
https://www.asiae.co.kr/article/2018111216135317655
참조.
... 물이 중요한게 아니라 인간에게 완전 무해한 것이라는게 요점이였습니다. 그럼 물 대신에 숨쉬는것으로 바꾸겠습니다. 조건은 '평소와 다름없이'라는 것입니다. 또 물1리터처럼 이상한 설정 넣어서 인간은 독가스 들이 마시면 죽는다 같은 말은 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초점은 거기가 아닙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물을 마시면/숨을 쉬면 죽지 않는다"를 뭐 수긍가능한 전제로 받아들여도, 여기서 "평소와 다름없이 물을 마셨다" "따라서 죽지 않는다"라는 추론이 이어지지 않으면 무용지물 아닌가요. "평소와 다름없이 물을 마셨다" 라는 건 어떻게 아나요? 이미 몸은 그 '평소'보다 하루 늙었는데. "하루 가지고는 몸이 바뀌지 않는다"라면 납득이 가겠는데, 이것도 생각해 보니 경험칙이네요. 결국 어딘가엔 경험칙이 있어야 현상에 대한 주장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설득은 포기했고, 그냥 가렵니다. 귀납논증이 엄밀하지 않다고 생각하시겠지만, 124.49님이 100% 연역논증이라고 믿고 있는 논증이야말로 엄밀하게 따져 보시길 바랍니다. 그 논증을 뒷받침해 주는 전제 중에는 경험적 사실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귀납논증을 연역논증하고 최대한 가깝게 만들기 위해, 또한 귀납논증을 잘못 적용/수용해서 나오는 폐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통계학자들과 자연/사회과학자들이 존재함을 알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요점은 귀납법은 논리가 아닌 그저 추론에 불과하다고 계속 말씀드립니다. 경험을 통해 개념을 얻고 그걸로 논리를 펼치는것을 말씀하시는거 같은데 그건 귀납법과 연역법의 조화가 아니라 공리를 통한 연역법입니다. 이런말 드리기 죄송하지만 공리와 귀납법, 연역법에 대해 다시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공리란 말씀하신 개념이나 전제 정도로 생각하면 편합니다.
연역논증은 타당하거나 부당하다. 타당하다면, 건전하거나 건전하지 않다. 그에 비해 귀납 논증은 오로지 강하거나 약하다.
그냥 넘어갈려 했는데, '아아, 그건 추론이 아니라 공리라는 거다'식의 유우머를 들고오시니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수리논리학에서 어줍잖게 공리 같은 얘기를 하니까 착각하고 계시는 건 본인이세요. 자연 논증에서 공리가 대체 왜 나오나요.
공리를 받아들인다는 건 "우리는 선험적으로 이러이러한 것을 생각할 수 있고, 이러이러한 게 맞다는 걸 알고 있다"에 모두 동의할 때나 가능한 겁니다. 이를테면 자연수를 하나라도 포함하는 집합 중에서는 가장 작은 자연수를 찾을 수 있다던가, 어떤 집합의 부분집합을 모아 새로 집합을 만들 수 있다든가 하는 거요. 이게 공리라는 겁니다.
혹시나 "?? 난 그 공리 동의 못함"이래도 논증은 멀쩡하게 성립합니다. 왜냐면 수학의 기술은 전반적인 문맥에서 베이스가 되는 공리계나 설명을 깔아놓고 진행하거든요. 특정 공리에 동의하지 못한다면 그걸 거부한 새로운 공리계를 만들어 놓고 새로운 이론을 전개하면 될 일이에요.
현실의 논증은 우리가 공통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참이라는 게 별로 없습니다. 특히나 귀납법을 배제한다면 아예 없는 거나 마찬가지죠. 님이 여태까지 한 건 "내가 이런 공리를 세웠고, 그럼 이런 결론이 논증된다. 따라서 이 결론은 참이다!"라는 비약이에요. 네, 님의 공리계에서는 그 논리가 타당하고 건전합니다. 그래서 누가 님의 공리계를 받아들이나요?
확실히 귀납법은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늘 존재하고 과학의 설명을 해줍니다. 하지만 논리학에 있어서 연역법과는 달리 사실적 지식늘 확장 할 뿐, 전제가 결론의 필연성을 논리적으로 인정되지는 못합니다. 또한 지금은 과학에서도 논리적 한계의 모순 때문에 귀납법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럼 경험에 대한 사실은 어떻게 취급하냐에 대해서는 후술 하겠습니다.
예로 '태양이 매일 아침마다 동쪽에서 뜬다'라는 과학적 가설을 추론했다고 할 경우에 이것은 증명을 요구하는데, 매일이란 하루도 빠짐없이 과거, 현재, 미래를 포괄하는 단어이다. 과거부터 태양이 수억 번을 동쪽에서 떴다고 해도 내일 아침도 똑같이 뜬다는 보장이 없고, 그러한 판단은 이전의 관측 자료를 근거로 하는 것이기에 귀납주의적 접근으로는 증명이 안된다
위의 말은 데이비드 흄 이라는 철학가의 말을 인용한 것이고 이외에도 여러 철학자들이 논리학으로서도 과학으로서도 귀납법을 부정해 왔다. 버트런드 러셀의 칠면조 이야기같은 유명한 일화가 있으며 이런 귀납적 오류의 예시들은 당장 우리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렇게 논리학에서의 귀납법은 아예 틀린 취급을 받고 있고 과학에서의 귀납법 또한 논리적 한계에 의한 오류로 더 이상 귀납법을 사용하지 않고 '논리 실증주의'의 '가설 연역' 방법을 사용한다.
러셀의 칠면조나 흄이나 귀납법을 잘못 쓰면 그렇게 된다는 경고일 뿐이지 논증에 쓰면 안 된다는 근거는 될 수 없습니다.(몇 번을 말하지만 논증은 명제의 추론뿐만 아니라 전제를 포함해야 합니다) 아니 애초에 안 쓰는게 불가능해서 흄 이래로 논리실증주의자들은 경험적 명제들도 같이 사실로 받아들인 건데요.
'피할 수 없는 귀납법 더 잘 쓰자'는 게 통계학이 하는 일입니다. 통계학에서는 정규분포값 계산만 하는 게 아니고 원래부터 모은 데이터가 어떤 식으로든 바이어스를 가진 게 아닌지 온갖 방법으로 분석합니다. 러셀의 칠면조도 자신의 '경험'은 경험자가 자기 한명이라는 편향을 알아채는 시점에서 해소 가능한 문제입니다.
태양이 매일 뜨는 거요? 진지하게 내일은 지구가 태양에 충돌할 거라 생각하시나요? 시대가 바뀜에 따라 경험도 발전하고('경험'이 '관측'이나 '실험'이라는 형태로 바뀌고) 따라서 더 신빙성 있는 전제를 얻는 것이 가능해졌고, 현대인이라면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내일 지구가 태양에 들이박지 않는다는 설명을 할 수 있겠죠.
만유인력의 법칙을 전제하면 굉장히(사실 '그런 대로') 정확한 논증이 가능합니다. 근데 이것도 잘 살펴보면 만유인력의 법칙이나 물리상수가 안 바뀐다는 것도 전제고, 그건 경험(+물리학 특유의 미학)에 의한 귀납추론인 겁니다.
통계학조차 적용하지 않은 어설픈 예시만을 귀납논증으로 간주한다면 귀납을 배격하고 연역만이 맞다는 판단을 하실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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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란 근거에 맞게 다음 답이 바로바로 '정답'이 나오는것. 귀납적 추론은 그저 확률/통계적 추론일뿐 정답은 없음 논리학은 논리적 정답을찾는 학문.과학에선re: 이렇게 논리학에서의 귀납법은 아예 틀린 취급을 받고 있고 과학에서의 귀납법 또한 논리적 한계에 의한 오류로 더 이상 귀납법을 사용하지 않고 '논리 실증주의'의 '가설 연역' 방법을 사용한다.
귀납법이라는 걸 체험에 의한 중세 수준 귀납법으로 한정한다면 귀납법이 과학계에서 파기된 거는 맞아요. 근데 그로부터 설득력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해진 방법론을 쓸 뿐 과학은 넓은 의미로 귀납법 그 자체입니다. 논리실증주의도 막 공리가 고정돼 있는 게 아니라 실험으로 공리를 찾아야 된다니까?
생각하는 법을 좀 바꿔볼까요. 논리학에서 하는 건 "A를 가정하면 B가 나온다"는 겁니다. 하지만 B라고 말하려면 A는 귀납적으로 어떻게든 정당화돼야 합니다. 고전 귀납법이 딱 그 정도였다면, 통계학은 "Z를 가정하면 논리적으로 A가 되는, 가장 보편적이고 설득력 높은 Z를 찾자"입니다.
그러면 Z→B는 님이 그렇게 원하시는 '논리적 추론'이 됩니다. 물론 Z도 귀납적으로 정당화되어야 하고, 편향된 가정 아니냐는 수많은 반박을 이겨내야 하지만, 원래 가정 A보다는 훨씬 강력하기에 연역만으로 얻어낼 수 있는 A→B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오히려 러셀의 칠면조는 님 같은 '연역주의자'가 빠질 만한 오류네요. A→B형태 가언명제만이 부동의 참이라는 사실에 안주하지만, 결국 실제 판단은 대개 정언명제로 해야 되고, 전제(공리) A가 맞는지 의심할 방법론이 없기에 맹신하는 수밖에 없겠군요.
1.귀납적 추론을 통해 공리를 설정한다. 2.공리를 바탕으로한 연역법을 통해 정답을 찾는다. 이게 가설 연역 방법인데 여러가지로 생각해보니 확실히 과학이나 논리학은 연역을 통해 정답을 찾는것은 맞지만 귀납적추론을 통해 공리를 설정하고 그 기반으로 연역법을 사용 할 수 있으므로 귀납법은 무조건 틀렸다는 제 의견은 조금 경솔 했네요.
'귀납과 연역의 조화'가 우리가 찾고 있는 논리적 정답일까요..
애초에 인간이 하는 모든 학문이 외부 데이터(세계)를 인간에 입력하고 출력되어 나온 결과 값이라 하면, 이 모든 것이 경험을 바탕으로 한 귀납적 추론이지. 수학의 숫자, 공리, 논리학의 추론 규칙 등 모든 것을 이렇게 볼 수 있는 거 같은데.
그리고, 그로 인해 공리, 논리학 등 인간의 모든 학문이 틀릴 확률이 ‘0’이 될 수는 없는 듯. 모든 것이 귀납적 추론이니. 이런 걸 느낀 서양 학자들이 동양 철학의 선불교의 사상(어떤 것을 인식하는 순간, 이분법이 생겨 진리를 알기 어렵다는 사상을 담고 있음.)에 혹하는 것인 듯.
그리고, 이걸 받아들이면 물리학에서의 양자역학(세상을 확률적으로 보는 시각)이 오히려 고전역학보다 자연스러운 거 같다는 생각이 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