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학 갤러리의 글을 쭉 읽어보다 느낀 점은 논리학을 기호와 규칙을 이용하는 게임으로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 문제의

완전한 해결책으로 사용하고 싶다는 글이 종종 보이는 것 같음. 간단한 논쟁의 승리부터 논리학의 절대적 위치 확립, 논리학을 통해 문제를

여럿 풀어보았으나 이걸로 뭘 하지? 처럼 현자타임을 느끼는 것 같음.


이건 논리학의 문제와 현실의 문제가 교묘하게 섞여있음. 이는 논리학을 바라보는 관점, 논리 철학의 분야라고 할 수 있는데 논리학의 정체를

규명하는 여러 관점이 있다는 사실을 보는게 좋음. 논리학 책의 맨 첫 부분에 일상언어로부터 시작해서 인공언어를 만드는 작업이 보통 시작되기

때문에 명제화에 대한 부분이 당연하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명제화는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오히려 새로운 의미가 들어가는

경우도 있음. 유일한 논리가 있는게 아니라 여러 개의 논리들이 있는 이유이기도 함. 논리학 교과서에 맨날 Formal Language가 나오긴 한데

Formal이 현실에 숨겨져 있는 마법적인 진리를 깨닫는게 아니라는 것부터 먼저 언급하고 가야됨. 아니면 적어도 그걸 절대적 진리로 확신하는 건

너의 마음이라는 것임.


그걸 알게되면 논리학 규칙 백날 외웠더니 이거 다 필요없는 것 아니냐하고 하면 논리학을 뭘로 보는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임. 돌멩이를 보고

어떤 사람은 사냥의 도구로 어떤 사람은 그냥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대상으로 보고, 어떤 사람은 먹는 것으로 본달까. 사람의 다양한 관점에 대해서

용인하지 않으면 절대주의로 흘러버리게 됨. 물론 그것도 나쁘지 않은데 절대적 이론들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혼란스럽고 애매모호한 현실에

압도당하는 경우가 많음. 적어도 그 확신이 오래가긴 힘들다 정도? 아마 논리학의 기계적인 아름다움에 심취하다가 현자타임 오는건 그 때문임.


예를 들어 논쟁에서 이기고 싶다는 논지면 실제로 논리학에서 도움을 못 받을 수 있음. 이미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에는 수많은 전제들이

이미 있는 상태에서 이야기하기 때문에 단순히 Formal Language로 변환한 몇 개의 전체들로 최종적 결론을 만들 수 없음. 맥락 상 그런 의미가

아니다라고 하는 걸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거. (현자타임) 그럼 어떻게 해야하냐? 포용력있게 상대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하는게 좋음.

아니면 돌멩이 들고 상대방에 던지든가. 사실 그런걸 원하는 것 같아서...


물론 논리학이 현실적으로 쓸모없다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님. 다만,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좋은 도구가 됨. 내가 말하고자 하는건

논리학에 과도한 이미지를 씌우는 것은 마치 덮어놓고 알파고가 다 해결해주실꺼야 와 같달까. 논리신앙은 뭐 논리학이라기보다는 믿음의 영역이 아닐까. ㅎㅎ


그래서 조금 그런 부분을 덜어내고 논리학을 배우면 뭘 할 수 있어요? 라는 부분에 대한 해명을 조금 하고 싶음. 그래도 현실적 쓸모와 맞닿는 부분을

궁금해할 있으니까. 그래서 논리학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프로그래밍을 추천하는게 논리학 외부의 사람들에게 그나마 논리학을 어필하는 현실적

방책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럼. 그리고 본인의 현자타임을 감소시킬 수도 있고.


누구 말대로 우리는 너무 급하게 살려고 하는 것 같음. 모든 문제의 일소! 는 어떤 학문에도 없음. 만약 그게 되면 우리는 그 학문만 했을테고,

이미 목표가 달성되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세계가 되었을테니까. 그래서 여유를 가지고 학문하기라는 뜻을 가지는게 좋음. 세기의 논리학 천재도

논리학은 아무 것도 모르는 부모 덕으로 먹고 살았고, 논리학에 관심없는 대학교의 펀드를 받고, 논갤러들이 글을 읽어주기 때문에 그런 대단한 체계를

가진 논리학을 만들 수 있는거니까. 고로 무쓸모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논리학에 스스로 지분이 있다는 건강한 생각을 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