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대학 다니고 있는 병아리입니다. (여긴 아직도 종강을 안했어요 흑흑)
뭐 요즘 일본이 정치적으로 이상한 짓 한다고 말이 많은데, 순수학문 쪽은 관계가 없죠.
여기 교양 논리학 수업 때 배운 내용은 제가 운영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긔호논리학'에서도 짧은 글솜씨로 피력하고 있지만,
한국 대학 재학중인 친구나 구글링, 서적 등을 통해 들은 한국 대학의 논리학 수업과 비교하면 기초다지기가 너무 잘 돼 있고,
때때로는 어설픈 영문 입문서도 능가하는 것 같은데, 요즘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 이유가 이거 같습니다.
초반에, 진리표를 사용한 증명을 일체 취급하지 않고 자연연역부터 시작.
자연연역을 사용해서 얻는 이점이 몇 가지가 있는데
(0) 우선 외우기가 굉장히 편합니다. 진리표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9가지 추론규칙을 다 외우라지 않나.
자연연역을 사용하면 논리기호 ∧∨→⊥(¬↔)∀∃에 관해서 도입 한 종류, 제거 한 종류씩 있다는 것만 외우면 되니까
굉장히 체계적으로 머릿속에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양상논리에선 안 통하지만 그건 양상논리 자체가 복잡한 걸 테고.
(1) 직관주의논리 입문이 굉장히 편합니다. 그냥 고전논리 규칙을 나열해 놓고 이중부정제거 안 쓴다는 제약만 걸면 끝.
보통의 사실추론에서는 잘 쓰지 않지만 type theory에 사용되는 논리체계이니 하나 더 배워 두는 것도 이득인 셈이죠.
물론 의미론을 따지려면 또 한참 이론이 전개가 됩니다만,
적어도 추론규칙을 다시 정해야 하는 수고는 없으니까요.
애초에 진리표부터 강의를 시작했으면 직관주의논리를 다루더라도 양상논리니 크립키 의미론이니 삽질하고 있었겠으나
의미론을 뒤로 넘겨 버리니까 입문 시 오버헤드도 크게 줄어들고 흥미유발도 가능한 것 같습니다.
(2) 형식논리의 '문장의 생성'(⊢)과 '문장의 의미론'(⊨)을 철저히 구분합니다.
형식적 증명이란 그저 무미건조한 퍼즐 게임이고,
직관주의논리와 합쳐서 문장의 참 거짓도 문장 그 자체가 아니라 평가값일 뿐임을 각인시킵니다.
증명도(proof tree)에 등장하는 정식들은 전부 다 '(적어도 증명 과정 중 일부에서는) 참인' 논리식인데다가,
애초에 수업 전반적으로 직관주의논리로 언제든 전환 가능하도록 설명하기 때문에
(굳이 ¬Ψ를 부정해서 ¬¬Ψ로 만든 다음에 명시적으로 이중부정제거 사용)
'거짓'이라는 말이 수업시간에 좀처럼 등장하지 않습니다. '부정이 참'이라고는 해도.
거짓(偽)이라는 말은 배중률 할때 한 번, 문장을 T와 F로 평가하는 이른바 명제논리의 모델론을 할 때 한 번 정도 썼네요.
(3) 증명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지 확립
모델론 수업할 때, 각 원자명제에 진릿값을 대입해서 불 계산을 하는 것도 결국 추론규칙으로 똑같이 할 수 있음
(이를테면 P:T, Q:F일 때 Ψ:T ↔ P,¬Q ⊢ Ψ)을 메타증명합니다.
따라서 고전논리에서 진리표나 벤 다이어그램(그림 진리표) 같이 증명방식이 난립하는 일 없이 자연연역으로 귀결됩니다.
여기서 다시 증명 = 계산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집니다.
(4) 힐베르트 연역으로의 확장
솔직히 힐베르트 연역 공리가 딱 주어진 것만으로는,
공리들이 토톨로지인 거 정도는 알겠지만 왜 얘네들만을 써서 증명해야 하는지 감이 오질 않습니다.
자연연역을 알고서 각각의 공리를 다시 보면, 얘네가 외부에서 증명된 명제를 전제 내부로 끌어들이기(P→(A→P))랑
전제 내부에서 MP하기( (P→(A→B))→((P→A)→(P→B)) )임을 알 수 있는데, 자연연역 없다면 모르지 않았을까..? 싶네요.
이게 전부 대학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한 학기 분량입니다.
비형식적 패러독스 같은 건 전부 치우고 형식논리학에 초점을 맞춰서 명제논리와 1차 술어논리, 그리고 여기까지 다 끝냅니다.
시간이 남아돌아서 PA랑 간단한 ZFC 및 서수 이론, 명제논리 모델론까지 했습니다.
2학기 땐 1학기 때 다진 기초를 바탕으로 괴델의 제1,제2 불완전성 정리의 증명을 강의합니다.
괴델 β함수, 비표준 자연수 얘기까지 현대적 증명에서 다루는 부분은 전부 다룹니다.
(다만 recursive fn ↔ Σ1 표현가능 같은 지엽적인 증명은 시간이 빠듯해서 생략했습니다)
물론 모든 학생이 저걸 다 공부하지는 않을 것이고, 일부는 강의에서가 아니라 참고자료 위에서만 존재하고,
학점만 따고 가려는 사람들은 대충 증명법 정도만 연습하고 넘어가겠지만,
자연연역을 일관적으로 깔고 들어가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수업의 밀도가 높고 방향성도 확실하다고 느꼈습니다.
아무튼 자연연역만 어떻게 제대로 한국어로 가져오더라도 형식논리학에 관해선 지식 수준이 올라가지 않을까 싶네요.
사실 그래서 페북 페이지를 하고 있는 거지만, 글쓰기가 영 꽝이라서 적당한 책 한 권 찾아 레퍼런싱하고 싶은데
저런 방향성의 영어 서적이 잘 안찾아지는 것도 있어서(나중에 자연연역을 쓰더라도 전부 처음엔 진리표더군요) 힘듭니다...
학부생 비전공자 꼬맹이가 알기야 얼마나 알겠습니까마는, 초심자 입장에서 아 한국에서도 이렇게 가르쳐주면 효율도 좋고 흥미로운 강의가 될텐데 하는 교육방법론적 평가라고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 줌 논리학 갤에 감사한 글이죠 ㅎㅎ 논리 교육에 대한 좋은 글이라 생각합니다. 페북 페이지도 이번 주에 꼭 다 읽어볼께요.
평소에 읽을 때 자연연역 교재가 좋긴 하더군요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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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가 더디네요. 페아노 공리, 특히 표현성에 집중해서 다뤘습니다. 아마 게시글 자체는 계정이 없어도 볼 수 있을 거에요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491286001615040&id=448151612595146
혹시 프린트할 수 있게, pdf로 공개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하긴 입문 단계에서부터 일본 고유의 스타일이 보일 정도면 어지간하게 연구가 다져져 있지 않고선 어렵겠죠.
페이스북 접으셨나요 ㅠㅠ
한국에 이미 있고 하고 있어요
혹시 어느 대학 어느 교수님인지 알 수 있을까요? 연대 쪽에 하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적어도 저 내용을 전부다 다루는 학부 교양 "논리학" 수업은 없을 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