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직후, 오스트리아가 아주 나쁜 길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오스트리아의 한 농부가 나뭇가지에 목을 매달았다. 이웃이 그를 발견하고 숨이 끊어지기 전에 내려주었다. 농부는 그 이웃이 자신에게 삶을 더 부과했다는 이유로 그를 고소했다. 그 당시의 오스트리아에서 사는 것은 죄악이라고 본다면 그 이웃의 행동은 불법이었다. 법정도 약간의 전문적 절차를 활용하여 그 이웃을 풀어주기는 했으나, 농부의 생각에 동의했던 것 같다.
자살기도와 관련해 영국과 미국의 대부분 지역에서 채택되고 있는 관점은 좀 다르다. 자살은 살인이며, 따라서 자살기도는 살인 기도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삶을 너무나 고통스럽다고 생각하여 자기를 죽이고자 하면, 삶이 보다 즐겁다는 것을 깨닫도록 가르치기 위해 감금형이 주어진다. 내가 볼 때 이것은 이중적으로 불합리하다. 첫째로, 자살기도가 범죄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둘째로, 이 경우에는 감금이 억제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없다.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은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만큼이나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볼 때 어처구니없는 얘기다. 내가 만약, 다른 사람의 시계를 빼앗아 바다에 던져버린다면 나는 범죄자이겠지만, 내 시계를 바다에 던진다면 나는 아무리 나쁘게 봐도 어리석은 사람 정도에 불과하다. 게다가 그 세계가 아무 쓸모가 없을 경우 나는 지극히 분별력 있는 사람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내 시계에 적용되는 것이 내 생명에도 적용된다. 내가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다면 내 소유물이 아닌 것을 취한다는 뜻이지만, 나 자신의 생명을 없애는 문제는 다른 누구보다도 내가 더 많이 관계된 문제임에 분명하다.
내 생명을 버리는 행위가 타인들에게 이용될 수도 있으니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대체로 안전한 도덕적 논거이기는 하지만, 개인 윤리를 법률만큼 엄격하게 만드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소유물에 대해서도 똑같은 얘기를 할지 모르겠다. ‘비록 무가치한 시계라고 해도 그렇게 내버리는 것은 부도덕하다. 어느 꼬마에게 주었으면 얼마나 좋아했겠는가?’
그러나 이 얘기를, 어떤 사람이 멈춰버린 자기 시계를 내버렸다고 해서 그를 감옥에 집어넣을 수 있는 적절한 근거로 보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이런 주장도 있을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남은 여생을 좋은 용도에 쓸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방법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뿐 아니라, 죽어도 공동체에 큰 손실이 되지 않을 사람도 적지 않다. 어떤 경우에든, 사람의 목숨도 자신의 소유물처럼 법적으로 자신의 것이 되어야 마땅하며, 따라서 그가 목숨을 버리기로 마음먹는다면 그렇게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억제력의 관점에서도, 자살기도를 처벌하는 것은 아무짝에 소용이 없다.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은 성공을 기대하고 그렇게 해서 처벌을 면하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실패하여 처벌받게 된 사람이 일정기간 갇혀 있다 나온 후에, 인생을 더 흡족한 것으로 보게 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자살이란 주제를 다룰 때 그 장단점을 따지기보다는, 이른바 인간생명의 신성함과 연결시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어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불법이라고 본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전쟁에 대해서도 비난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당시 전쟁을 비난하는 것은 불법으로 간주되었음] 너무나 비참한 나머지 자살을 시도하게 되는 저 불행한 사람들 앞에서 인명의 신성함을 호소하는 것은, 전쟁이 인류의 제도의 일부로 존재하는 한 철저하게 위선이다.
<!--[if !mso]> <style> v\:* {behavior:url(#default#VML);} o\:* {behavior:url(#default#VML);} w\:* {behavior:url(#default#VML);} .shape {behavior:url(#default#VML);} </style> <![endif] -->
"너무나 비참한 나머지 자살을 시도하게 되는 저 불행한 사람들 앞에서 인명의 신성함을 호소하는 것은, 전쟁이 인류의 제도의 일부로 존재하는 한 철저하게 위선이다. " 여기가 주장이지않나?
'자살감금형은 불합리하다' 는 주장은 보조논증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