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새벽에 글 날라가서 아예 처음부터 다시 썼네요 ㅡ.ㅡ

논리학 입문자들 중에, 실질함축이 자연어 용법에 비추어봤을 때 직관적이지 않으니까 실질함축은 잘못됐다! 수리논리학은 뿌리부터 틀렸다! 논리학계는 대중을 기만하고 있다! 하고 주화입마하는 분들이 종종 보이는데요... 뭐 이걸 좀 건설적인 방향으로 살려서 엄밀함축이나 반사실적 조건문을 공부하겠다, 하면 그나마 낫고, 대부분 빌런이 되는데 문제는 논리학 입문서에서도 이거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을 하는 경우가 없다는 겁니다.
실질함축이 진리함수적이어야 한다는 건 굉장히 작위적인 설정이고요.

뭐 선례가 있는진 모르겠지만, 일단 제가 고안한 설명은 이렇습니다. 프레게는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명제가 구문과 의미로 나눠져 있고 의미는 내포된 게 아니라 평가되는 거라는 걸 숙지한다면 이건 역설도 아닙니다.

(0) 후건이 거짓인 것과 조건문이 거짓인 것은 다릅니다. 즉 달이 치즈가 아니라는 게 "허경영이 대통령이면 달이 치즈이다"를 바로 거짓으로 만들어주지는 않습니다.
(1) 구문론, 특히 자연연역에서는 실질함축은
→도입규칙 Γ, AㅏB ⇒ ΓㅏA→B
→제거규칙 ΓㅏA & ΓㅏA→B ⇒ ΓㅏB
이라는 어딜 봐도 함축의 특성에 부합하는 규칙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실질함축의 역설은 진리표 없이 ¬AㅏA→B로 표현되며, 폭발원리 ¬A,AㅏB와 →도입에 의해 증명됩니다.


이걸 곱씹어보면 이런 얘깁니다. "허경영이 대통령이면 달은 치즈다"가 성립한라는 말은 "(허경영이 대통령이 아니지만, 만약 다른 세계선에서) 허경영이 대통령이면 달은 치즈다"가 아니라, "(허경영이 대통령이 아니라는 현실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동시에)허경영이 대통령이면 달은 치즈다"가 성립한다는 말입니다.
이는 폭발원리에 의해 정당화됩니다. 폭발원리도 그렇게 직관적인 건 아니지만, 직관적인 두 추론(선언 도입과 선언삼단논법)이 있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렇게 "일어날 리 없는 일이 일어남으로서 폭발원리에 의해 모든 일이 일어나는 상태"를 논리적 카오스 상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물론 이 논리적 카오스 상태란 건 구문론적으로만 있을 뿐 현실에선 일어나지 않겠지만요.

(2) 아예 분석철학을 가르친다고 하면 모를까, 논리학이라고 하면서 비형식논리학에 붙어서 프레게나 러셀의 이론 같은 걸 끌고오는 건 아직도 납득을 못하겠습니다.
처음엔 오히려 형식논리학 한바탕 가르친 다음에 분석철학은 나중에 이 형식체계의 근간이 되는 전제들을 비판하는 식으로 소개되어야 합니다.

형식논리학이라고 해도, 이럴 거면 형식체계를 왜 쓰는지 다소 의문이 드는 서적이 몇몇 있습니다. 자연어에서 잘 구분되지 않는 구문과 의미를 쉽게 구분 가능하고, 원하는 의미론을 부여할 수 있으며, 여차하면 '의미론 없이' 구문론만으로만 논지를 전개할 수 있다는 게 구문이 모호하지 않다 만큼이나 형식체계의 큰 이점인데, 처음부터 진리표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진리표를 무시하고 구문론적으로만 증명이란 걸 꺼내자.. 이러니 그 이점이 안 살아날 수밖에요.

실질함축의 역설의 해결에는 구문론과 의미론이 구별된다는 사실, 의미론이 내재된 게 아니라 평가되는 거라는 것이 크게 작용하고, 이건 형식논리의 패러다임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형식논리 태동기에 프레게야 "명제는 문장의 뜻이다"라고 코멘트했지만 이는 상황을 더욱 꼬아 버리므로 오히려 무시하는 게 낫습니다.

"허경영은 대통령이다"는 당연히 거짓으로 평가됩니다. 문제는, 우리는 "허경영이 대통령이면 달은 치즈다"에서의 전건 "허경영이 대통령이다"만큼은 참으로 평가한 뒤에 후건을 평가하려고 하는 자연어적 습관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습관에 판단을 맡겨 버리면, "허경영이 대통령이다"를 참으로 평가하는 건 더 이상 현실세계의 평가와 다르게 됩니다. 크립키의 개념을 빌리자면 가능세계인 것이죠. 가능세계의 형이상학적 지위니 어쩌니 하는 얘기가 있는데 논리학적 개념으로서 가능세계는 평가=진릿값배정과 동일한 것으로 충분히 확립된 내용입니다.
이 가능세계에서는, 허경영은 대통령을 하고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달은 치즈가 아닌 것 같으니 "허경영이 대통령이면 달은 치즈다"는 거짓으로 평가하겠네요.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건 전건 "허경영이 대통령이다"가 거짓인 현실세계에서의 조건문의 평가지, 전건이 참이 돼 버린 가능세계에서의 조건문의 평가가 아닙니다. 그 가능세계에서 암만 "허경영이 대통령이면 달은 치즈다"가 거짓이라 한들 그게 현실세계의 조건문의 평가와 관련이 있다는 보장은 없는 겁니다.

물론 자연어적 습관을 반영해서, 조건문이란 원래 이런 가능세계를 같이 봐야 되는 거다, 아니면 가능세계의 평가 역시 현실의 조건문의 평가에 반영되는 것이 마땅하다, 이런 반론을 할 수도 있겠죠. 그제서야 엄밀함축이니, 양상조건문이니, 반사실적 조건문이니 하는 걸 얘기하는 의미가 있는 겁니다.
실질함축은 자연어적 습관이 밴 조건문과 다르게 그런 반영을 하지 않지만, 어쨌든 함축으로 볼 여지는 충분하다는 것 정도 코멘트해 두면 되겠죠.
마치 자연어의 "모든"은 관습적으로 존재성을 함의하는 방향으로 쓰이지만 ∀가 vacuous true가 생긴다고 "모든"이란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정도의 논증도 하지 않은 채 프레게와 러셀에 관한 훈고학을 하려 드는 국내 논리학 교재들이 아쉬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