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Look Back in Anger" - <룩 백> (2024)
연속성
<룩 백>의 포스터를 처음 보았을 땐, 단순히 여자아이 두 명이 나오는 청춘물일 것이라 예단하였다. 보통 학생이라는 키워드와 만화가 만난다면, 꿈을 향한 고민의 과정이나 파트너와의 불화가 제시될 것이고, 그걸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영화의 큰 주제일 것으로 추측했던 것이었다. 그러한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서, 나는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으로 생각의 발걸음을 향하게 되었다.
본격적인 글에 앞서, 작가의 창작 동기를 담은 글을 가져와 보았다. [1]
“17살에 저는 야마가타의 미술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직후였기 때문에, 다들 이대로 그림이나 그려도 괜찮은 것인지 의문을 품었을 거예요. 그림을 그려 봤자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뭔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픈 마음에 이시노마키로 피해 복구 자원봉사를 갔습니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는 저와 같은 생각일 미대생과 체육 대학 학생들이 잔뜩 있었어요. 이시노마키에 도착해서 주택 한 구역의 도랑을 가득 메운 흙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흙을 자루에 담아 트럭까지 운반하는 작업을 하루 내내 했지만, 도랑의 흙을 전부 퍼내지는 못했어요. 30명 정도가 온종일 달라붙어서 했는데도 해내지 못한 것에 무력감을 느꼈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도 다들 시무룩했죠. 함께 작업했던 체육 대학 학생이 "저희가 온 의미가 없었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자원봉사는 그 후에 딱 한 번 더 다녀왔지만, 그걸 끝으로 더는 가지 않게 됐어요. 유화를 그리느라 돈이 들어서, 비용 마련을 위해 만화를 그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17살 때부터 쭉 그 무력감 같은 것이 절 떠나질 않아요. 또한 몇 번인가 슬픈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제가 하는 일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감각이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최근에 슬슬 이 감정을 발산하고자 <룩 백>이라는 만화를 그렸습니다. 그려 봤더니 신기하게도 아주 약간은 마음의 정리가 된 것 같아요. 그 상태로 지금 이 단편집을 보니까 무력감 속에서 그린 것뿐만 아니라 배를 엄청 곯으면서 그렸던 일, 내 친구와 그림 연습을 했던 일 등등이 하나둘 떠올랐어요. 왜 암울한 일만 되새겼는지 궁금해질 만큼 즐거운 추억들이 떠올랐습니다.”
작 중에서 무력감은 쿄모토의 비극적인 죽음을 통해 발현된다. 마치 쿄애니 방화 사건을 연상하게 만드는 비극 속에서, 사라진 쿄모토에게 후지노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도리어 자신이 그린 네 컷 만화가 쿄모토를 방 밖으로 나오게 하여, 도리어 죽게 했다는 죄책감이 그녀를 더욱 괴롭게 할 뿐이었다. 내가 하는 일, 만화를 그리는 작업으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도움을 줄 수 없다. 이 안타까운 사실은 작가와 후지노 둘 모두를 괴롭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후지노의 잘못이 아니라는 듯, 울고 있던 후지노의 앞에 네 컷 만화가 놓이게 된다. 작가는 쿄모토, 제목은 <룩 백>. 괴한의 습격을 받은 쿄모토를 후지노가 구해준다는 내용이다. 자신의 운명을 예상이나 한 듯 그려진 이 만화를 보면서, 후지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분명한 건 이 네 컷 만화가 절망하고 있던 후지노를 잠깐이나마 위로해 주었다는 점이다.
자신이 그리고 있던 만화 또한, 분명 의미 없는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분명 만화를 그릴 때 즐겁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 후지노는 왜 만화를 그리는거야?" 라는 질문에 대하여, 늘 곁에서 같이 일하고 생활하며 함께 웃고 있던 쿄모토를 생각한다. 그랬다. 후지노는 쿄모토를 위해 만화를 그리고 있었다. 그녀들은 분명 만화를 그릴 때 행복했고, 즐거워했다. 만화를 그리지 않았다면, 오히려 쿄모토는 고독하게 살아가지 않았을까. 만화는 그녀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기도 하고, 누군가를 동경하게 하고, 누군가의 꿈이 되기도 하며, 서로를 성장시키기도 한다. 내 그림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히려 쿄모토를 죽였다는 죄책감을 가지기엔, 만화는 그들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서로를 이어주는 매개체였다.
특히 그러한 만화 중 네 컷 만화는 더욱 특별하다. 초등학교 시절 그녀들의 매개체이자 쿄모토를 밖으로 나오게 해준 소재이기도 하며, 절망하고 있던 후지노를 구원해 주기도 한다. 후지노는 쿄모토의 집을 들린 후 다시 <샤크 킥>을 연재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컷이 비어있는 네 컷 만화 종이를 작업실에 붙여둔다. 이것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처음에는 그 장면의 의미를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다음의 사실을 알게 된 후 나만의 결론을 낼 수 있었다.
원작의 만화 맨 첫 페이지에는 ‘Don't’가, 마지막 페이지에는 ‘In Anger’ 이 적혀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둘과 작품의 제목인 ‘Look Back’을 사이에 끼워 조합하면, 영국의 유명 밴드가 부른 노래 ‘Don’t Look Back in Anger’ 이라는 노래의 제목이 등장한다. 잠시 이 노래의 일부를 같이 보면 좋겠다. [2]
So, Sally can wait
그래, 샐리는 기다릴 수 있어
She knows it's too late as we're walking on by
그녀는 우리가 스쳐 지나갔을 때 너무 늦었음을 알겠지만
Her soul slides away
그녀의 영혼이 떠나 버린다 해도
But don't look back in anger
화내며 뒤 돌아보지 말라는
I heard you say
네 말을 들었어
"그녀의 영혼이 떠나 버린다 해도, 화내며 뒤돌아보지 말라는 네 말을 들었어.".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는가. 분명 후지노에게 이 상황은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을 것이다. 자신과 떨어진 곳에서, 쿄모토는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녀가 그간 했던 일들은 의미 없는 일이 아니었다. 자기 잘못도 아니었고, 오히려 만화는 쿄모토를 기쁘게 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가장 바람직한 일은 바로, 과거에 화내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후지노와 쿄모토의 연결점이었던 네 컷 만화가 비어있는 모습이, 이 세상에 더 이상 쿄모토가 없음을 받아들였다고 보는 건, 단순한 나의 착각일까. 어쩌면 후지노를 보고 갈 쿄모토를 위해 자리를 남겨 놓았을지도 모르겠다.
쿄애니 방화 사건, 묻지마 범죄, 총기 난사 사건.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피해자들이 저항하기 힘들고, 자기 몸도 간수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 남들에게 도움을 주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런 극단적인 예시가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슬픈 이별이 있을 수 있다. 내가 잘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무력감도 분명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작가는 그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듯하다. 그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네가 지금 하는 일들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과거를 보며 화내지 말고, 후회하지 말고, 힘들겠지만, 그저 받아들이며 일상으로 돌아가면 좋겠다고. "Don't Look Back in Anger".
[1], [2] 이후의 인용은 각각 나무위키의 <룩 백> 문서, <Don't Look Back in Anger> 문서에서 가져왔음을 밝힙니다.
이 외에도 줄거리 부분에서 나무위키의 서술을 다소 참고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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