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 세상의 중심에서 하빈을 외치다


보청기가 웅웅거리는 침묵 속에 갇힌 41세 박장춘.

62호 전투모도 튕겨낼 만큼 거대한 대가리를 가진 그는

고시원 방에서 며칠째 땀에 전 사타구니를 긁으며 주식 창을 본다. 전 재산 4만 5천 원.

장춘은 '포트폴리오'가 뭔지도 모르면서 주식 게시판에 미소녀 필터를 씌운 사진을 올린다.

이름은 하빈. 장춘은 이제 장춘이 아니라, 수만 명의 오빠를 거느린 가련한 주린이 '하빈'이다.


2. [승] 4만 5천 원의 미칠듯한 가려움


"하빈아, 포트폴리오 짜줄게. 만나자!" 한 재력가 유저의 메시지에 장춘은 흥분한다.

하지만 현실의 그는 며칠째 씻지 못해 사타구니가 타들어 가는 가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장춘은 4만 5천 원을 들고 하빈의 '인증샷'을 찍기 위해 화려한 애견카페로 향한다.

거구의 대두 남자가 구석에서 덜덜 떨며 예쁜 케이크 옆에 폰을 세팅하는 기괴한 풍경이 펼쳐진다.


3. [전] 대가리 깨져도 하빈


카페 안의 소음은 들리지 않지만, 장춘은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의 비웃음, 그리고 멈추지 않는 사타구니의 가려움.

필사적으로 참던 장춘은 결국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바지 속에 손을 넣어 벅벅 긁기 시작한다.

그 순간, 탁자 위의 스마트폰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빡-' 소리와 함께 액정이 거미줄처럼 갈라진다.


4. [결] 보이지 않는 하빈, 들리지 않는 장춘


박살 난 액정 사이로 하빈의 눈과 장춘의 충혈된 눈이 겹쳐진다.

폰 너머 오빠들은 "포트폴리오 보냈어!"라고 외치지만, 보청기가 고장 난 장춘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금 간 화면 속 하빈의 미소 위로 장춘의 눈물이 떨어진다. 장춘은 피 묻은 손으로 부서진 폰을 품에 안은 채,

전투모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자신의 거대한 머리를 벽에 찧으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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