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비의 존 네빌 경은 1375년 사우샘프턴에서 그의 부대의 숫자와 질의 심각한 결함을 알아차리지 못한 서기에게 검열을 받았다.
사기의 가능성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대장들은 소집 이후 죽거나 탈영한 부대원의 수에 비례하는 급료를 삭감하고 선금을 상환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잉글랜드 정부의 수많은 재정 관련 행정 서류에는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난 증거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프랑스군의 검열은 더 엄격했던 것 같다.
군사작전 도중, 보통은 매월 1일에, 병력 손실과 장비 손실을 점검하기 위한 정기적인 소집이 있었다.
이것은 잉글랜드에서는 15세기 이후에나 실시된 제도였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도 검열관들의 태만과 부패에 대한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검열관들은 비리를 눈감아준 대가로 뇌물을 받는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샤를 5세는 1373년 자신이 고용한 제노바 쇠뇌수 부대들이 임금대장에 적혀있는 것보다 훨씬 적은 인원이 복무하고 있으며, 그들 중 많은 병사들이 심지어 제노바인도 쇠뇌수도 아닌 '대장들에게 푼돈으로 매수된 무가치하고 질 낮은 종놈들'이라고 불평했다.
그의 자문관이었던 필리프 드 메지에르는 훗날, 실제로는 인원이 250명도 채 안 되는 부대의 대장들이 500명분의 급여를 받은 사례와 선금을 받자마자 종적을 감춘 사례들을 회고했다.
--------------------------------------
보통 전투에 들어가면 부대 장교가 선금을 받고 '알아서' 부하들한테 배분했음
고용주는 수시로 검열관을 보내서 무장상태나 사망, 탈영자를 파악했고 모든걸 종합해서 선금의 일부를 돌려받거나 후불금액을 깎았다
But 장교들은 서로의 장비나 부하를 빌려주면서 검열관을 속였고
원래 받으면 안되는 사망한 친구의 봉급까지 챙겼음
부대에 따라 다르지만 연고가 있다면 부대원들이 유가족들에게 약간의 위로금을 줬지만
종군은행으로 보낸 수표를 마지막으로 소식이 끊어지는 아빠들도 많았던거 같음....
현대복지는 ㄹㅇ 신의 선물
- dc official App
당시엔 횡령같은짓 안했겠지?
그때가 더 심했지
이 글 내용 자체가 '횡령이 만연했다'인데 글은좀 읽고 댓답시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