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서 내려 대구 마을을 약탈중인 일본군들을 포착한 정문부는 주변을 지나던 관찰사 극함과 권율을 설득하여 이들을 요격하게 되었다.


그들의 총대장은 죽었다고 알려졌던 아케치였고 그 뒤를 다케다가 따랐다.



뒷산으로 고을의 백성들도 가세해 어느정도 수적우위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뒷산으로 도망쳐온 백성들의 보고를 듣고 

아케치군와 다케다군의 취약지점을 향해 진격한 권율, 극함, 문부 3군 연합군은 

마을 내부에 자리잡은 아케치군을 요격할 최적의 위치인 고을 뒤편 언덕에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되자 일본군이 마을 뒷산과 언덕을 공격하고 뚫고나갈 경로는 사실상 좁아터진 마을중앙의 길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노련한 다케다군은 좌측면을 순식간에 뚫어내 

안전할 것으로 예상하고 거의 무장조차 못한 백성들이 배치되어 있던 좌측면에 

무시할 수 없는 피해를 입히기 시작했으나 


언덕 위에서 숙련된 조선군 사수들이 쏟아내는 대량의 화살들은 

좁은 길을 줄선채 돌파할수밖에 없었던 중앙에 배치된 일본군 정예 무사들을 고슴도치로 만들어버리기 시작했다.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근접전에 돌입한 양군은 잠시동안 조선군이 밀리는 듯 했지만 

수없이 쏟아지는 화살과 총통 세례에 다케다군은 전멸적인 피해를 입으며 일본군은 점점 마을 안쪽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전세가 우세하게 흘러가던 도중

전세의 우세를 더욱 끌어올리기 위해 전진한 정문부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날아온 조총 탄환에 갈비뼈를 맞고 

전투지속이 불가능한 치명적인 부상을 입어 후송되었다.


그 와중에 권율마저 갑자기 마을 초가지붕 사이에서 튀어나온 상대 사무라이의 창날에 자상을 입었는데

이로써 조선 3군연합의 지도부 3인중 2인은 유리함을 몰아붙여야 할 전투 막바지에 갑자기 전선에서 이탈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전열을 유지할 야리들과 하마 무사들이 죄다 쓰러지고 후방의 궁수와 조총수들만 남게 된 아케치의 일본군은 전세를 역전하기 어려워 보였다. 





쏟아지는 화살비는 그칠 줄을 몰랐고 결국은 후방의 일본군들마저 몰살당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남은 사무라이 부관들은 최후까지 저항하였으나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이었다.



조선군은 아케치와 다케다군에게 심대한 피해를 입혀 거의 전멸시켰고


얼마 되지 않는 조선군 사상자에 비해


아케치와 다케다의 일본군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의 손실을 입었다.


하지만 염병할 두 일본군 장수들은 귀신같이 탈출하는 데 성공했고

조선군은 당장의 기적과 같은 교환비에 만족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 다행인 소식 하나는 문부와 권율이 다시 전장에 설 수 있을 정도로 차도가 나았단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대구 마을의 풍요와 백성들을 조선이 큰 손실없이 여전히 유지될 수 있게 되었단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