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2여 년 전이다. 내가 갓 입문 지 얼마 안 돼서 베기어에서 기병 기르다 노르드 허스칼한테 썰리며 살 때다. 빡종 하고 가는 길에, 할인 정보를 보기 위해 찜 목록에서 일단 스크롤을 내려야 했다. 그리스 맞은편 터키에 앉아서 게임을 깎아 파는 개발사가 있었다. 후속작 한 벌 사 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게임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수다스럽지만 느린 개발사였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멀티 돌려 보고 싱글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능청스러운 개발 일기만 있다. 가야 할 시험 기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쓰레기 택스쳐를 던지더니
"돌릴 만큼 돌려야 케밥이 되지, 생고기 재촉한다고 케밥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텔테일, 외고집이시구먼. 시험기간 이라니까요."
개발사는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깎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시험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최적화가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게임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듀크 뉴켐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게임 스컴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지원금에 케잌을 퍼먹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게임을 들고 이리저리 E3에 돌려 보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게임이다.
시험을 놓치고 다음 모의고사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개발을 해 가지고 대기업이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수다스럽기만한 케밥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개발사는 태연히 디엘씨를 펴고 스팀 평가란을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버그를 바라보고 일하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전문가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모션과 멋진 공성전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케밥에 대한 멸시와 비아냥도 감쇄된 셈이다.
카페에 와서 후기를 내놨더니 마블러들은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전에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갤럼의 설명을 들어 보니, 고중이 너무 바르면 캐릭터를 다듬다가 망치기를 잘 하고 갖은 노력을 해도 영 시원찮으며, 고증이 너무 안 바르면 커뮤니티가 사지를 않고 욕만 들어 먹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개발사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총게임는 스토리 모드 분량이 다 떨어지면 멀티를 대고 모드로 겉을 깨끗이 씻고 곧 커뮤니티 서버로 들어가면 다시 재미가 붙어서 좀체로 질리지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총게임는 스토리 모드가 4시간 정도에다 다시 재미 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스토리에 캐릭터를 붙일 때, 질 좋은 실화를 잘 녹여서 흠뻑 칠한 뒤에 명작 시리즈에 쪼여 말린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만든다. 이것을 프라이스 대위처럼 만든다고 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슴가 달린 성희롱 여캐하고 진부하디 진부한 주인공을 써서 찍어 만든다. 금방 만든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현질하지도 않는 것을 몇년씩 걸려 가며 만들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블리자드만 해도 그러다. 옛날에는 전략겜을 사면 스타 것은 얼마, 워크은 얼마 개성있고 견고한 세계관으로 구별했고, 디아블로한 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디아블로란 전설적인 로그라이프 컴퓨터 게임 시리즈이다. 폰으로 보아서는 내가 10만원을 질렀는지 100만원을 질렀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구린 도박판이다. 단지 브랜드 가치만을 믿고 사는 흑우인 것이다. 신뢰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안 사지도 않는데 디테일 넘치는 게임 짤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AAA식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개발사들은 개발기간은 개발기간이요 매출은 매출이지만, 게임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종합 예술품을 만들어 냈다.
이 게임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개발사에 대해서 불법 다운로드를 한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개발사 가 아니라 넥슨같은 거에게 1000만원씩 꼬라 박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게임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개발사를 찾아가서 바이킹 컨퀘스트에 마블 오리지널이라도 사가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금요일에 방학하는 날에 그 개발사 찾았다. 그러나 그 개발사가 앉았던 앙카라에 개발사는 있지 아니하고 EA 지부만이 남겨져 있었다. 나는 그 개발사가 있었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스팀의 평가 란을 바라보았다. 푸른 따봉에 날아갈 듯한 상승 그래프 끝으로 리뷰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개발사가 저 란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게임을 깎다가 유연히 스팀 끝에 평가란을 바라보던 게발사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칼라디아의 전사들이여
안녕하십니까!(Greetings warriors of Calradia!)"라는 싯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친구랑 마블에 들어갔더니 친구가 나폴레오닉 워즈에서 백파이프를 불고 있었다. 전에 드럼, 피리, 백파이프로 무장한 군단을 대포로 퐁퐁 쏴서 두들겨서 점수먹던 생각이 난다. 핑 200이하 서버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해적이 "네놈의 골통을 들이마셔주마"하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라이트 앤 다크니스 챕터 2이니 L'Aigle이니 갬성를 자아내던 그 모드 소식도 끊어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22년 전 게임 깎던 개발사의 모습이 떠오른다.
예전에 캎에 심심풀이로 썼던건데 아직도 안나와서 여기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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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추
시밬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