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 궁병 최종 트리 팔라티나이.
팔라티누스는 우리가 아는 인간 성기사 '팔라딘'의 원형이야
팔라티나이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직속 호위 기병대에게 로마가 만들어진 '팔라티누스'의 이름을 따서 팔라티나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면서 생겼어
이때부터 팔라티나이는 '황제 직속 호위대'라는 뜻이 되었지
프랑크 왕국이 새로운 서로마가 되자 프랑크 국왕 호위대도 팔라티나이, 불어로 팔라딘이라는 이름을 붙였어
그들이 호위하는 대상이 바로 로마 황제라는 뜻이었지
'무력으로 사람들을 수호하는 존재'의 이상향은 세대별로 변해놨어
중세 시대의 이상적인 수호자는 '기독교를 수호하고 정당한 왕에 충성을 다하며 외적으로부터 약자를 보호하는 기사'였는데
이런 이상적인 기사의 모습은 프랑스의 대문학 '롤랑의 노래'에 나오는 샤를마뉴를 수호하는 12 기사로 나타나게 되었어
샤를마뉴를 가까이서 지키는 열두 기사는 국왕을 가까이서 지키기에 '팔라딘'이었고
이때 팔라딘의 의미가 '기독교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수호자'로 변하게 되었어
이 뜻은 의미가 조금씩 변하긴하지만 지금까지도 내려오고 있고.
이후 팔라딘의 의미는 종교적인 의미로 넘어가게 되는데 '성직자가 아니지만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기사'에게 팔리딘이라는 호칭을 붙여줬어
성당을 경비하는 기사, 고위사제나 이단심문관을 따라다니며 보필하는 기사처럼
영지를 받지 못했지만 교회에 들어가 일하는 교회 소속의 기사들이 팔라딘이 된거야
교회는 물론 여러 국가들도 팔라딘이라는 호칭을 명예의 상징으로 수여하곤 했어
나치 독일은 자기네들이야말로 기독교의 수호자라는 ㅈㄹ개ㅅㄹ를 지껄이고 다녔는데
히틀러가 괴링을 비롯한 나치고위부에게 팔라딘의 호칭을 주기도 했어
그냥 이 정도로 팔라딘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명예성이 컸다는것만 알아두자고.
기사를 중심으로 하는 중세 사회가 막을 내리자 교회 기사인 팔라딘도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었지만
교황청은 교황 직속령을 지키는 평신도 군대에게 팔라딘이라는 이름을 주었고 그 명맥이 이어지게 되었어
교황령이 급속도로 작아지면서 그 규모와 역할도 점점 축소되었지만...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가 권력을 잡자 이탈리아 안의 작은 국가인 교황령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어했어
이 당시 교황령은 명확한 법적인 근거도, 그 지위를 보장하는 조약도 없던 상태였거든
무솔리니는 무력시위 차원에서 병력을 바티칸 근처로 전진배치했어
교황청에서는 비상이 떨어졌어
세속적인 욕심과는 거리가 멀었던게 교황거주지가 독립된 지역이 아닌 특정 국가에 편입되게 되면
해당 국가 지도자에 의해 종교가 꼭두각시가 되는 상황을 우려했거든
(실제로 아비뇽유수 이후 프랑스로 끌려간 교황이 프랑스 왕 뜻대로 놀아난 흑역사도 있고)
교황청은 스위스 근위대와 팔라딘들에게 총과 실탄을 지급하면서 강경하게 대응했어
예상 밖으로 교황청이 쎄게 나오는 상황에서 자국과 유럽 전역의 가톨릭 교도들이 이에 항의하기 시작하고
심지어 군대 내부에서도 이건 아니다라는 불만이 나오기 시작하자
무솔리니도 감히 종교를 건드린건 큰 실수였다는걸 인정했어
1929년, 군대를 물린 무솔리니는 교황청과 라테라노 조약을 맺으면서 상황을 종결시켰어
라테라노 조약으로 바티칸의 경계와 법적인 지위, 바티칸 인들의 법적 지위가 공인되었고 지금까지도 이 조약은 준수되고 있어
이때가 팔라딘들의 마지막 움직임이었지
2차대전 이후 바티칸의 법적 지위가 보장되고, 예산 문제로 군대를 따로 보유하기도 빠듯해지면서 굳이 종교가 군대를 보유해야하는가라는 고민이 생겼는데
무솔리니 때문에 신경쇠약에 걸린 주교들의 지지로 팔라딘들은 작게나마 존속했어
그러나 1963년 제위한 바오로 6세는 팔라딘을 해산할 것을 결의하면서 중세부터 이어내려온 '기독교의 수호자' 팔라딘은 맥이 끊기게 되었어
하지만 '종교를 수호하며, 충성을 다하고, 약자를 수호하는 팔라딘의 의미는 지금도 살아남아있어
남자라면 선 팔라딘이지.
남자라면 갓세라이지
남자면 선팔라지
팔라딘은 해산하고 스위스 용병들이 지킨다고 들었는데 맞나?
ㅇㅇㅇ 스위스 근위대는 경비고 팔라딘은 군대였으니까 지금 바티칸은 군대가 없고 경비대만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