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창만들었을때부터고요 병시나
[일반] 야생동물이 좆밥된건
익명(211.186)
2020-04-07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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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은 사거리 짧아서 위험부담 컸는데 화살은 무적임 걍 사람 뒤질걱정 안해도될정도
투창은 장식아님
총이요 호환은 일제시대까지 큰 위협이었음
멧돼지나 호랑이같은 동물들은 조선에서도 포수들 이전엔 투창으로 잡고다님
투창 - 활 - 총 순임
활은 초식동물들 수렵에나 쓰였음 19세기 무렵까지 수렵하던 나라중 핀란드만 해도 총기나 투창만 씀
활은 동물들 잡고다니기에도 관리 자체가 존내 어려웠다는걸 모르나봄
호환 때 투입 되는 착호갑사들은 활 잘쏘는 사람들 선발로 뽑음
활 잘쏘는 사람들 위주로 뽑은게 아니라 수렵을 일삼던 사냥꾼들을 갑사로 무장시키거나 육진에서 끌어온거고. 그리고 호환마마해결할땐 팽배에 단창으로 찔러죽임
착호갑사가 무슨 수렵 사냥꾼들 데려와서 시키는 건 줄 아노 ㅋㅋㅋㅋㅋ 갑사라는 단어 자체가 서양 기사와 동급인데 너는 서양에서 기사들 뽑을때 쌈 좀 잘하는 동네 깡패들 데려와서 기사 서임하고 데려다 씀? 착호갑사도 선발로 뽑은 상위 몇퍼센트만 데려다가 호환 때만 파견에서 쓴 부대다 좀
ㅈㄹ병슨새끼 역알못새끼 또 겉핥기로 개지랄하네ㅋㅋㅋㅋㅋㅋㅋ
원래 착호갑사는 갑사라는 중앙의 직업 군인들 중에 한 종류였다. 갑사는 서양의 기사와 비슷한 존재였다. 착호갑사는 처음에 정원이 40명이고, 20명씩 교대로 근무를 했다. 그러다가 16세기에 만들어지는 「경국대전」에는 정원이 440명으로 늘어났다. 착호갑사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었다. 호랑이를 잡을 수 있는 무예 실력 이상으로 담력과 용기가 필요했다. 1425년(세종 7) 병조는 지금까지 착호갑사에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선발했던 것을 문제로 삼았다. 용감하지 않으면 무예가 호랑이 사냥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이거 던져주고 상대 안해준다. 좀 뭐라도 알고 지껄여라
갑사가 시발아 8품부터 시작하는 사관계급이어서 여진족 귀화자한테도 개뿌리고 도감군에서도 몸좀 날쌔면 바로 갑사시키고 살사포로 나눳는데ㅋㅋㅋㅋ
수박 겉핥기나 존나게 열심히 하고 모르면 그냥 그런갑다 하고 있어라 좀 ㅋㅋㅋ
병신새끼 검방활창 일신인 갑사한테 활로 착호질했다 할때부터 알아봤다 ㅂㅅㅋㅋㅋ
갑사(甲士) 박타내(朴他乃)가 창을 가지고 나아가서 잘못 찌른 까닭에 호랑이에게 물려 거의 죽게 되었다. 도승지 신면에게 명하여 극진히 약으로 구호하도록 해 궁궐로 돌아왔으나, 이튿날 박타내가 죽었다.” ―세조실록 38권
그래서 착호갑사에는 사냥을 하는 가운데 가장 먼저 활을 쏘거나 창을 던진 사람을 임명하도록 했다. 착호갑사가 되면, 임금님이 강무(講武 : 사냥을 통한 군사연습)하는 경우에 어가 행렬의 가운데와 바로 앞에 있을 수 있었다. 본인에게 큰 영광이고 뽑낼 수 있는 자리였다.
조선 왕실은 '착호갑사'라는 호랑이 전문 사냥꾼을 두기까지 했댜. 이들은 호랑이만 잡는 군인이다. 무사 가운데 무술이 뛰어나고 담력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졌다. 그들은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곧바로 출동해 발자국을 추적하며 사냥했다. 착호갑사는 세종 때 40명이었다가 성종 때는 440명으로 늘어났다. 호랑이로 인한 피해가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자
지방에서도 착호갑사를 뽑아 호랑이 사냥에 나섰다.지원자들을 호랑이 사냥에 내보낸 다음 가장 먼저 호랑이를 잡은 사람을 따져 성적순으로 뽑았다. 지방에서는 군 사령관인 절도사가 군인·향리·역리·노비 가운데 뽑았다. 지원자가 없으면 힘 좋고 덩치가 큰 사람을 착호갑사로 임명했다
싸운다 싸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