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장원을 받지 못한 기사들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다는 이야기를 했으니까


이번엔 장원을 받고 정착하는데 성공한 기사들 이야기부터 시작할게



영주의 눈에 든 기사는 증인과 성직자 앞에서 서약을 맺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어


기사는 영주에게 군역을 바치고 영주는 기사에게 영지와 거기에 딸린 노동력을 주고 받았어


이 관계는 매우 계산적이었기 때문에 영주가 어떤 사고를 때문에 영지를 지급하지 못한다면 (지진 등 자연재해) 기사는 군역의 의무에서 해방될 수 있었어


기사들은 영주처럼 성이 딸린 으리으리한 영지가 아니라 영주 직할지를 둘러싼 마을들을 받았어


이것도 케바케여서 기사들 중에서도 고위급 정도되면 성과 주변 마을이 몇개나 딸린 큰 영지를 가진 경우도 있었고.


그리고 마블에서 왕이 찍어주는거처럼 영지가 예쁘게 모여있지않고 여기저기 따로 노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고 해



기사는 1년에 정해진 날짜만 군역을 바치기로 계약했는데


관습적으로 '1년에 40일'만 자비로 군역을 수행했어


이 이상으로 군역에 동원될 경우 영주는 그 댓가를 지불했어


또 동원 거리에 제한을 두기도 했는데 '@@산과 ##강까지'라던가 '말로 하루 달리는 거리' 등등 동원 거리도 째째할 정도로 상세하게 정해놨어



봉건제의 왕은 영주 보호를 위해 엄청난 거리를 쏘다니며 지켜야했기에 국왕 직속 기사는 거리 제한이 널널하거나 없었는데


이런 기사들 중 유력 영주에게 왕이 준 토지의 일부(fief)를 바치고 전쟁에 끌려가는 대신 영주의 방어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끌려다니지 않게 해주는 경우도 있었어



귀족 출신 기사의 경우 가문의 정치나 명예 같은 문제로 혈연에 바탕을 둔 충성심이 존재하기도 했는데


가뭄에 콩나듯 가끔 나오는 (기사가 신분화되는 후기에는 거의 사라지는) 비귀족 출신 기사의 경우 여러 영주와 다중계약을 맺기도 했어


발견된 기록 중에 제일 많은건 동시에 44명과 계약을 맺었다는 거야


이 경우엔 계약을 할때 미리 이 사실을 알리고 계약한 영주들 사이에서 전쟁이 나면 먼저 계약한 영주한테 가는게 관습이었어







훗날 기독교에 의해 창작된 '모범적인' 기사와 달리 실제 기사들은 돈을 매우 밝혔어


기사도 문학 중에 하나인 '파르치팔'을 보면


"챔피언은 가여운 자들의 참혹한 일을 듣고 당장이라도 보수를 받고 봉사하겠다라고 말하였다"라는 구절이 나와


주인공은 매우 선한 사람이고 모범적인 기사이므로 돈을 받고 봉사하는겠다는거야


즉, 기사가 돈을 받고 일하는게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졌던 시기라는거지




기사만 되면 다 수전노가 되는건 사실 다 이유가 있어


앞서 말했듯 기사의 군역은 자비로 부담해야했는데 당연히 필수적인 무장과 군마, 자신을 보조해줄 보병을 본인부담해야했다는 뜻이거든


당장 갑옷 가격과 관리비만 따져도 빡쎈데 전쟁났다고 농노들 대충 뽑아갈수도 없고


튼튼하고 싹이 보이는 애들 미리 뽑아서 먹이고 재우고 훈련시켜야하고


말도 운명처럼 한마리만 필요한게 아니라 물건을 나를 짐마랑 갈아탈 예비말까지 몇마리를 가챠 돌려가며 뽑아놔야했고


기사도 사람인데 결혼자금, 축하금, 위로금, 교회 십일조 등등...


지출은 산더미인데 영지는 넉넉하지 않으니까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라도 수전노가 되야했지




원정 나가면 가서 먹을 식량이나 예비무기, 스페어 장비도 또 챙겨야하고 이동하는데 드는 시간과 돈도 장난 아닌데


기사가 출정한다 = 영지의 쓸만한 전투원들을 대부분 끌고 산다 = 빈집털이 당할 위험이 생긴다 였기에 기사들도 억척스럽게 군역을 줄이려고 했어




이런 부담은 영주들도 마찬가지여서 후기로 갈수록 군역 대신 그에 상응하는 돈을 영주나 왕에게 상납하는 형식으로 변해


이 돈을 가지고 복잡한 계약에 묶여있지않은 용병을 구입해서 뒷탈없이 싸우는걸 선호하게 변했어


영지없는 떠돌이 기사들이 이 돈에 낚여서 기마용병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해



#2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