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댓글보니까 더 깊게 들어가길 원하는 사람들 많더라


그래서 더 자세히 설명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대신 연재 빈도가 좀 느려질거야




용병 집단 안에도 계급이 있었어


보통 왕이나 대영주와 직접 접선하고 계약을 끊는 용병 대장은 귀족들이 대부분이었어


중세도 엄연한 계급제 사회다보니 평민들은 왕과 고위 귀족이 모이는 작전회의에 참석하기 힘들었고 협상에서 밀릴 위험도 있었어


또 장원이나 도시에서 반발을 억누르고 모병을 하려면 '빽'도 좀 필요했거든


(중세 유럽은 높은 신분이 낮은 신분과 직접 접촉하는걸 꺼리는 경향이 있었고


공작이나 백작 정도 되면 시동과 하녀들도 평민이 아니라 하급 귀족의 자제를 데려다 썼어)



하급 귀족이나 떠돌이 기사들은 용병이 되서도 기병을 전담했는데


이런 기사 용병들은 전쟁의 빈도에 비해 기사들이 많이 부족했던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서 많이 활동했어



평민 용병들은 일반 보병으로 참여했고 능력을 인정 받으면 부사관까지 진급할 수 있었어


물론 보병대의 명목상 지휘관은 귀족인게 당연시되었지만


상부와 병사들 사이를 오가며 군 운용을 원할하게 만들어주는 부사관들은 평민들이 담당했고


이들은 명령전달, 훈련, 배분, 월급 전달까지 용병단 실무를 담당한 중요한 존재가 되었지


평민 출신으로 평생 용병일을 하다가 돈을 벌고 행복한 은퇴를 하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이런 부사관 출신이었어





용병 공작으로 유명한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도 시작은 평민이 아니라 하급 귀족이었어


이 사람이 유명한 이유는 하급 귀족은 꿈꾸기 힘든 공작작위를 받고 한 나라 국방력의 좌지우지할 정도로 거물이 되었기 때문이야





용병의 병종은 절대다수가 보병이었어



일단 기사들은 그 수가 제한되어있을뿐더러 봉건제 자체가 비싼 기병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땅을 매게로 계약을 맺는 관계인만큼


용병들이 대규모로 육성하고 운영하기에는 너무 자본이 많이 필요했어



궁수의 경우 활 자체가 훈련이 많이 필요한 어려운 무기이기에 전문적인 인원을 모병하기가 곤란하다는 문제점이 있었어


영국의 경우 일정 재산이 되는 평민들에게 일주일에 한두번은 의무적으로 활 훈련을 시켜서 궁수를 충원했지만


유럽 대륙의 경우에는 궁수의 질과 양 모두 부족했기에 그다지 발전하지 못했어


그래서 가격은 좀 비싸지만 육성이 편한 석궁이 빠르게 보급되었고 기사나 영주를 따르는 직업 군인인 '맨앳암즈'나 일부 용병단은 석궁을 운용했어






유럽을 대표하는 명궁은 스위스의 윌리엄 텔과 영국의 로빈훗인데


이제 왜 대룩의 윌리엄 텔은 석궁을 사용했고


영국의 로민훗은 활을 다뤘는지 이해할 수 있겄지?





석궁 + 용병하면 빼놓을 수 없는게 제노바 쇠뇌병이야


제노바 쇠뇌병은 1차 십자군 때 십자군을 따라 종군한 제노바 무장 상인대에 의해 처음 고안되었는데


"상인을 호위할때 보병을 굴리면 장사하는 이윤이 남질 않고, 기사나 궁수 같이 전문적인 병종은 모을 시간과 여유가 없으니까


일단 제노바 특산물인 명품 석궁으로 병사들을 무장하고, 대형 방패를 줘서 장전할 시간을 벌자"는 간단하면서도 충격적인 도전이었어



기병 위주로 돌아가던 유럽과는 달리 아랍인들은 대량의 보병과 궁병을 운용했고


서로 방진을 짜고 대치할때 궁병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적 궁병이었어


제노바 석궁병이 장비한 대형 방패 '파비스'는 궁병끼리 서로 맞사격할때 일방적으로 딜을 넣게 해주는 일등 공신이었고 궁병 싸움에서 이기고 적 보병을 끌어내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었지


원딜 싸움에서 지니까 불리한 상황임에도 어쩔 수 없이 이니시를 걸어야하는 근딜의 고뇌처럼


급하게 밀려나온 아랍 보병들을 반겨준건 아랍인들이 악마로 여긴 떡장근육 기사들과 스크럼 짜고 하하호호낄낄거리며 기다린 십자군 보병들이었으니까 이하생략.



이를 본 십자군 지휘부는 제노바 상단에게 무장 호위병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고


물건을 파는것보다 제노바 석궁병을 빌려주는게 더 돈이 된다고 생각해서 아예 용병업을 개업했어


제노바 쇠뇌병은 예약이 밀릴 정도로 꽤 오랫동안 잘 돌아갔는데


쇠뇌보다도 운용과 훈련이 편한 주제에 화력까지 뛰어난 화약무기가 대량 보급되자 더 이상 운용상의 이득을 보기 힘들어졌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어




보병은 용병의 숫적 주력이었고 무기와 운용도 다른 병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었어


중세 초까지만해도 장창 대신 도끼에 가까운 형태인 할버드, 농기구에서 변형된 빌 같이 다루기 쉬운 폴암류를 많이 사용했어





장창은 개인이 다루기에 어려운 무기까지는 아니었지만 진형 교육, 적의 돌진을 받아내는 뚝심 등등 전력적으로 사용하기 힘든 무기였어


특히 스크럼을 짠 상태에서는 방향 전환이 힘들어서 측면과 후방의 공격에 쉽게 무너졌기에 크게 의존하기 힘들었어


즉,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용병단과 어제 처음 인사 나눈 사령관이 대량으로 다루기 힘든 무기였지


스위스 장창병이 이름을 날린데에는 충성심과 뚝심말고도 장창진을 펼진상태에서 360도 회전이 가능하게 하는 엄청난 훈련과 전문성이 있었기 때문이야



장창은 이렇게 뒷전에 밀리다가 기사의 장갑이 너무 두꺼져 기존의 폴암류로 이빨이 먹히지 않는 중세 후기에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제대로 스크럼을 짠 상태에서 돌진할 경우 보병을 상대로도 엄청난 돌파력이 나온다는 사실이 입증되자 여려 용병단이 장창을 채용하기 시작했는데


때부터 보병 싸움은 엄청난 사상자가 나오는 '장창밀기'... 원어로 '푸시 오브 파이크'가 등장하게 되었어





이런 개난장 싸움에서 적합한 장비를 찾던 사람들은 장창을 파훼할 여러 무기를 고안했는데


스페인의 로데렐로처럼 짧은 검을 들고 경무장한 병사가 파이크 사이를 파고 들어가거나 밑을 굴러서 장창벽을 파고 드는 곳도 있었고





용감한 병사들에게 두배의 봉급을 약속하고 최전방에 배치한다음


장창의 벽을 무거운 양손대검으로 잘라서 무력화 시키는 웨폰브레이커인 '도플솔드너'라는 베테랑 용병들도 등장하게 되었어


거대양손검이 전략적으로 빛을 본 시기가 있었다고... 판타지 아니라고...



첨언하면 한국에서도 이렇게 적의 창을 무력화 시키는 선봉부대를 만들었는데


이 병사들이 지급 받은 무기가 바로 당파야




당파는 삼지창 사이 넓은 공간에 적의 창머리 여러개를 끼워서 무력화시키면 바로 뒤의 병사가 공격하는 무기야


사극에서는 거의 조선군 기본 무기처럼 등장시키는데


사실 용감한 병사들한테만 준 정예병용 무기였음



조선은 중앙집권이 잘 되어있고 전쟁도 잦아서 필요한 무기나 전술을 빠르게 흡수하고 보급하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었어


고려 말에 들여온 화약무기를 빠르게 전군에 배포해서 임진왜란 때 불맛을 보여줬고, 임진왜란 때 소개된 조총도 국가 주도하에 빠른 속도로 배급해서 영정조 때에는 전군에 필요한만큼 보급 완료한 국가였어


청을 도와 러시아에 파병한 조선군 장교가 노획한 러시아 신식 총을 조선에 몰래 가지고 가려다가 청나라 장교한테 걸려서 외교적 문제가 된 사건도 있었고.


이런 좋은 능력은 조선 후기로 가면서 점점 맛이 가고 퇴색되었어


강력했던 조선군 이야기도 더 다루고 싶지만 마블갤이니까 참는다...



#3 끝


다음에는 용병에 따라붙었던 상인들의 이야기를 더 자세히 해보자


킹모장에 3분에 2쯤 쓰던게 살아있어서 금방 복구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