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군대의 절반이 보급이라는걸 알고
보급을 끊어버리는 것만으로도 군대 하나를 날로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
중세 사람들이 멍청이도 아니고 수천 단위 병사들을 굴리는 전문가들인데 보급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있었지
설마 인간 범주 안에 드는 존재 중에 풀뜯어먹으면 행군하면 된다고 우기고 정글 사이로 행군하면서 병사 7만 5000명을 조공한 돌아이가 있겠어?
용병들의 보급은 전속계약을 맺은 상인들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이 상인들은 용병단과 독립적으로 움직이면서 용병단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공급했어
일단 가장 중요한 식량과 무기,
술 같은 기호품,
무기 수리를 위한 대장장이,
치료를 위한 의사,
매춘부 등등
상인단은 거의 모든 서비스를 용병에게 제공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상인단의 행렬이 용병단과 같거나 더 긴 경우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고 해
전투가 한창 진행 중일때 각종 물자를 보급해준 것도 상인단이었는데
이 경우엔 최소 50배나 되는 마진을 붙여서 팔았어
한창 전투 중인데 다른 상단이랑 접촉할 수도 없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사서 쓸 수 밖에 없었어
전시가 아니더라도 반쯤 격리되어 자기들만의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용병들을 상대로 독점을 하다보니
상인들은 몇배로 가격을 높혀 팔았고 용병들은 그걸 사서 써야만했어
돈을 더 짜내기 위해 상인들은 작은 축제를 열거나 쇼를 준비하기도 했어
워낙 좋은 돈벌이다보니 용병단과 계약하려는 상인들이 줄을 섰는데
이때 대장이나 부관, 부사관들에게 뇌물을 바치고 경우도 허다했어
만약 용병단이 큰 피해를 입고 망하거나 해산될때면 상인단은 용병을 떠나 다른 용병단과 접촉하려고 했어
서로 밀접하게 의존했지만 계약 관계일뿐 운명공동체는 아니었다는거야
용병들의 수익은 당연히 전투를 통해 얻은 보수였어
이 돈은 먼저 대장에게 갔고 계약한 금액대로 분배했는데
무기나 피복 값은 자동으로 이체된 다음 지급해서 계약금보다 모자라게 받는게 거의 일상이었어
돈을 저축하거나 고향으로 송금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용병은 전투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그리고 용병단 내부의 비싼 물가를 감당하느냐고 가진 돈을 다 써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항상 쪼들린 경우가 많았어
전투가 끝나 계약이 없는 상태면 용병단에 위기가 찾아왔는데
처음에는 대장이 따로 때어놓은 비상금으로 봉급을 지급하거나 식량을 분배해줬지만
그마저도 떨어질때면 용병단은 언제 터질줄 모르는 폭탄으로 변했어
그러다가 통제를 잃으면 최악의 경우 근처 마을로 몰려가 약탈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해
원래 적의 마을이 아니면 약탈을 삼가거나 아예 약탈을 원하지 않는 대장들도 많았는데
그런식으로 왕이나 대영주들에게 밉보이면 훗날 다른 계약을 맺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어
물론 하급 병사들은 대장의 그런 고민 따위 접어두고 약탈로 한탕 크게 땡기는걸 선호했고.
이런 경우 지나치게 억누를시 사기가 크게 저하되거나 부대가 와해되거나 통제를 벗어나는 등의 위험이 있었기에 지휘관들이 반쯤 자포자기한 상태로 약탈을 허용하는 경우도 있었어
재미있게도 용병단 자체가 상품이 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대장이 은퇴를 하거나 죽거나 했을때 다른 귀족에게 용병단 조직 전체를 팔아 넘기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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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후기로 갈수록 기사와 영주들이 점점 봉건 의무를 회피하고 보병의 힘이 강해지면서
전장의 흐름은 보병으로 넘어왔는데 봉건제 하에서 동원 가능한 보병의 수는 한계가 크니 결국 용병을 주력으로 굴리는 시대가 왔고
중앙집권화된 나라들은 용병들은 대규모로 사서 쓰기 시작했고 이 수요를 제공해줄 용병 전문 업자들도 생겨났어
보통 땅이 척박해서 농사로는 먹고 살 수 없거나, 농지를 받지 못하는 아들들이 주된 용병 지원자들이었는데
이때 그 유명한 스위스가 장창병대를 만들어서 용병 시장을 선도해나가게 되었어
(프랑스에서 끝까지 의무를 다하다 죽은 스위스 용병들을 기리기위해 만든 빈사의 사자상)
주정부가 직접 훈련하고, 계약을 맺으며, 보증하는 스위스 장창병은 부유했던 프랑스에서 많이 구입했어
동족상잔을 피하기위해 스위스 주정부는 한 곳에 용병을 팔면 반대편에는 용병을 팔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는데
시간이 흐르며 이 원칙이 무뎌지더니 결국 스위스 장창병끼리 싸우는 일도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해
어느 순간부터 중세 유럽은 용병 없는 전쟁은 상상하지 못하는 단계가 되었어
#4 끝
송금은 어떤식으로 했대 말로보내나 - dc App
따라다니는 상인단 중에 금융업자도 있었던거 같고 중세에도 은행이 보증하는 차용증 만들어 쓰기 시작했어
오 의외로 현금으로 하는게 아니었구나 - dc App
근데 이런건 어디서 공부함? 신기하네 - dc App
대학생때 역사 공부했던것도 조금 있고 책도 이거저거 있어
꺼무위끼나 역갤 까페 블로그 미검증 떨거지 자료 대강 짜집기
이번 화에서 많이 참고한 책은 "근대전쟁의 탄생"(크리스터외르겐젠)이랑 "용병 2000년의 역사"(기쿠치 요시오), 토크멘터리전쟁사 용병편(국방TV)였음. 자료 찾다가 놀란게 나무위키 용병부분이 토크멘터리 전쟁사 부분 거의 그대로 따왔더라
다음부턴 전글 링크도 좀 달아주셈
일단 개추줌
링크는 용병 연재 끝내고 한번에 정리해서 올리면 안되려나.. 용병 연재 곧 끝남
스위스 장창병 개멋있노
혹시 여러 용병들 긁어모았는데, 이 용병들 지휘하는 상급지휘관은 누굴 임명했는지 알 수 있는 사례같은 거 있음?
상급지휘자는 고용주인 왕이랑 대영주이거나 그들이 임명한 대리인이었어
키야.... 근데 그러면 스위스장창병, 제노바석궁병같이 양산된 느낌의 용병들 말고, 가공매체에서 자주 보이는 베르세르크의 매의단이나, 뭔가 좀더 산적느낌나는 용병단들도 현실에 있어? - dc App
중세 초기에는 그런 프리랜서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장창이 주무기가 되면서 스위스 장창이나 란츠크네히트 같은 규격화된 용병들로 대체되기 시작했어 지난화에서 설명했던거처럼 장창을 제대로 쓰려면 통일된 훈련이 필수불가결이어서...
산적느낌 나는 애들은 싸울때 시간 ㅈㄴ 끌고 애미 뒤진 약탈 근성 때문에 잘 안쓰지
산적느낌나는 애들도 많긴 했는데 삼류 취급이라고 봐야지 얘네들은 일감 없으면 진짜 산적으로 돌변하기도 하고
네번째 문단 누군가의 뼈를 때리네 ㅋㅋㅋ
헤센도 땅이 척박해서 농사로는 먹고 살 기 힘들어 용병을 국가 사업으로 삼았지
참고로 빈사의 사자상의 배경인 사건은 중세가 아니라 루이16세때 이야기임 즉 장창병이 아니라 나폴레옹시대 전열보병으로 보면됨
근데 저쯤되면 중세라기엔 좀 애매한 시간대 아님?
르네상스 복식이니 그냥 근세지 뭐, 초기 머스킷이나 아퀘부스로 파이크 앤 슛도 나올 시기.
용병의 몰락까지 서술하려면 이 시기를 안 다룰수가 없더라 ㅠ
동족상간 ㄷㄷㄷㄷㄷ - dc App
고걸 못봤네 ㅋㅋㅋㅋㅋ
강한 이유가 여기 있었누 - dc App
상인단이 따라다닐정도면 백단위 넘어가고 그런거?? 정착민들이 기겁할만하네 ㅋㅋㅋㅋ
그러고보니 용병애들 규모는 어떻게됨? 열명정도 되는 소규모도 있고 백단위 넘어가는 대규모도 있나?
수십단위도 있고 스위스 용병처럼 수만단위도 있었어 후기로 가면서 규모가 점점 커졌음 작은 용병단 여럿보다는 큰 용병단 하나가 관리가 편하니까 좋은 점도 있었는데 단점도 있었고 이건 나중에 이야기해볼게
ㄳㄳ
이탈리아 콘도티에리 같은 애들도 궁금하다
4번째 문단 누구임?
대한민국 독립운동가 무다구치 렌야 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