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다음 글을 바탕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다음 글의 작성자를 비판하기보다는 발생할 수 있는 오해를 바로잡고자 작성하였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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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박노식 교수가 경희대 말고 서울대 가서 지리학과를 이과대학교에 세웠다면 지금처럼 지리가 사회 아류 학문 취급받고, 문과 고착화 된 현실도 없었을 거라는 내용의 가설을 담은 글로서, 굉장히 흥미롭게 읽어보았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번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기면 흥미로운 대체역사 가설이지만, 지리학사적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조금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1. 사실관계부터가 오류


위 글에서는 육지수(사회대) VS 박노식(이과대) 구도로 설명하고 있는데, 연혁부터가 잘못되었습니다.


서울대는 1958년 설립 당시 "물리과대학 문학부" 소속으로 들어갔고, 사회과학대학으로 옮긴 건 1975년 내외입니다. 

경희대? 여기도 1958년 설립 당시 "문리과 대학" 소속이었습니다. 이과대학으로 적을 옮긴 건 학과 창립 45주년이 되는 2003년입니다.


애초에 두 대학 모두 인문/자연 통합 단과대였던 문리대에서 시작한 학과입니다. 

설립자 전공 때문에 처음부터 단과대가 갈렸다는 건 근거가 부족합니다.


1950년대의 선택이 운명을 갈랐다고 해석하기에는 경희대 이과대 소속 변경은 그 시점으로부터 너무 동떨어져 있습니다. 



2. 영웅사관의 오류


글에서 설립자 전공이 학과 성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인정합니다. 지형윤회설을 주장했던 윌리엄 모리스 데이비스 교수라던가, 라첼 이라던가 기라성 같은 교수가 특정 대학교에 임직하면서 어떤 학파를 이끌어 갔고, 심지어 해당 국가의 지리학적 연구 풍토나 관점을 주도했던 사건들이 지리학사적 사례로 나오는 것이 수두룩 빽빽한 사실입니다.


육지수 교수가 일제강점기 경제지리학 계보를 잇는 거물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 영향으로 서울대 지리학과가 사회대에 안착하면서 지리학-=사회학 이라는 인식이 서울대 발 학벌 권위로 굳어진 면도 있다고 해석하는 것 역시 일면 타당성 있어 보이는 해석입니다.


하지만 글의 분석은 너무 인물 중심적인 해설이라는 겁니다. 당시 지리학이 문과로 간 건 육지수 교수 개인 취향이라기보다는 일제강점기 36년을 거치면서 지리학을 바라보던 환경결정론적심리와 독일 게오폴리티크적 기저 심리가 작용했다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자연환경(이과적 지식)을 분석하여 결국 인간의 삶과 국가 경영(문과적 분야)를 설명하는 도구적 관점으로 지리를 바라보았기 때문에, 어디에 세웠어도 결국 문과적 해석의 틀 속에 갇혔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3. 제도적 결정론


설령 박노식 교수가 강한 자연지리 지향성을 가지고 서울대 이과대학에 지리학과를 세웠다고 가정해 봅시다.

과연 대한민국 수험생들이 아! 이과대학에 있으니 이과과목이구나! 라고 인식했을까요? 

저는 절대 아니라고 봅니다.


이미 미군정기 교수요목 시절 지리는 이미 역사랑 묶여서 사회과로 구분된지 오래였습니다.


서울대 지리학과가 이과라 할지라도, 졸업하고 교사된다는 사람들은 결국 사회과 선생님이 됩니다. 

제도적 인프라가 사회교과군으로 묶여 있는 한 학과 소속이 하나 바뀐다고 해서 지리가 물리, 화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자연과학으로 떡상했을 거라는 건 너무 과도한 낙관으로 여겨집니다.


서울대의 학과 소속이 학계 인식에 상징적 영향을 미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중등 교육과 입시/임용 체계를 바꾸지 못하는 상징은 학문 정체성을 규정할 수 없습니다.

서울대는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도 교과군을 재편할 권한은 없었던 것입니다. 

교과군을 재편할 권리는 오직 문교부(당시 교육부)에게만 있었기 때문이니깐요. 



4. 기술적 패러다임의 부재


당시 자연지리학이 지금처럼 공학적 엄밀성을 갖추는 것 역시 시대적 한계가 명확했었습니다. 지금이야  GIS툴 돌리고 라이다나 SAR로 원격 탐사도 돌리고, 화분 연대측정도 하면서 비교적 공학적 정체성이 이뤄진 것이지 그 때는 이과대 가봤자 지구과학과 하위호완이나 설명 지형학 수준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큽니다.

19세기 지형학자 길버트가 강조하던 "직관적 지형학"이 2000년대 초반까지 지형학 개론에서 기본으로 가지고 들어가던 수준 생각해봐도 명확합니다.

오히려 사회과학대 안에서 인문지리랑 시너지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지리학 위상이라도 지킨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할 겁니다.


또한, 한국 자연지리가 위축된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연구가 안 됐기 때문이 아니라,

기후·지형·수문·환경 분야가 지질학·환경공학·토목 등으로성공적으로 분화·흡수되었기 때문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5. 경희대 이과대 전환 시점과 GIS 


경희대가 이과대학에 있어 자연지리 발전을 이끈 것처럼 묘사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현대 지리학의 기술적 변화가 소속 변경의 동인이었다 해석됩니다.

지금 경희대 강점은 기후-환경, GIS, 시공간 빅데이터 등 공학/계량적 트렉에 위치해 있는데, 이는 박노식 교수의 지형학 전통이라고 보기보다는 90년대 등장한 GIS 및 데이터 분석 수요에 발맞춰 빠르게 학제를 개편한 결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1945년 지리학과 날린 하버드대학교가 2003년 지리학/GIS 연구소 부활시킨 것만 해도 당시 지리학적 추세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었는지 알 수 있을겁니다.


참고: + 하버드 대학교 지리학과 폐부와 뒤늦은 후회를 담은 글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map&no=9204&s_type=search_name&s_keyword=%E7%B8%BD%E9%AB%94%E7%9A%84%EF%A4%9F%E8%8F%8A&page=5


앞에서 말했 듯, 당시 기술 수준으로 지금과 같은 이과적 지리학 위상 설립은 너무 시기상조였습니다.

- (애초에 계량적 지형학 등장이 1970년대 이후라는 점 생각하면 더더욱 명확할 겁니다. )


결론. 

가설은 흥미롭지만, 시간적 시차를 무시한게 너무 컸음.

지리학 정체성은 학자 한 명의 철학보다 사회과 교육과정의 제도 틀로서 결정된 것입니다. 


세 줄 요약:

  1. 서울대, 경희대 둘 다 설립 때는 '문리대'였음. 소속 때문에 성격 갈렸다는 건 구라임.

  2. 경희대가 이과대 간 건 2003년임. 박노식 교수 시절이랑 무관한 현대적 선택임.

  3. 학문적 정체성은 설립자 전공보다 당시 학계의 '환경결정론'적 심리와 교육 제도가 만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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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