耽羅年形啓 (제주도 농사 형편에 관한 보고)


本島農形。春夏以來。雨暘調均。頗有大登之望是白加尼。自七月十五日。霖雨大注。一直不止是白如可。


이 섬(제주도)의 농사 형편은 봄과 여름 이래로 비와 햇볕이 고르게 조화를 이루어 크게 풍년이 들 기미가 보였습니다. 그런데 7월 15일부터 장대비가 쏟아지더니 줄곧 그치지 않았습니다.


至於二十一日卯時。忽有東南風挾雨大作。飛瓦走石。如葉如沙。折木拔屋。如草如芥。以至二十二日寅時。始乃寢定。而公廨之稍舊者。擧皆傾壓。民屋之已老者。莫不飄沒是白如乎。


그러다 21일 묘시(오전 5~7시)에 갑자기 동남풍이 비를 동반하여 크게 몰아쳤습니다. 기와가 날아가고 돌이 굴러다니는 것이 마치 잎사귀나 모래알 같았고, 나무가 꺾이고 집이 뽑히는 것이 마치 풀이나 지라기 같았습니다. 22일 인시(오전 3~5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바람이 잦아들었습니다. 관아 건물 중 조금 오래된 것들은 모두 기울어지거나 무너졌고, 민가 중 낡은 집들은 바람에 날려 사라지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卽以發遣將吏。看審各坪。而繼而三邑馳報。各面報狀。鱗次齊到者。如印一板。名以穀物。一齊摧剝。無復餘地。至於沿浦。醎水激揚。延及高陵。無論穀草。如鹽沉菹。甚者至於拔根而洗去。一日之內。全島便赤。閭閻號哭之聲。遠近相連。田野慘絶之色。彼此無分。


즉시 군관들을 보내 들판을 살피게 하였고, 이어 세 고을(제주, 대정, 정의)과 각 마을에서 올라온 보고서들이 잇달아 도착했는데, 마치 한 판에 찍어낸 듯 내용이 똑같았습니다. 곡식이라 이름 붙은 것들은 일제히 꺾이고 벗겨져 남은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특히 해안가에는 바닷물이 튀어 올라 높은 고갯마루까지 도달했는데, 곡식이든 풀이든 가릴 것 없이 모두 소금에 절인 채소처럼 변해버렸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뿌리째 뽑혀 씻겨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단 하루 만에 온 섬이 붉은 흙바닥(황폐한 모습)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마을마다 울부짖는 소리가 원근에 이어지고, 들판의 참혹한 모습은 어디랄 것 없이 똑같았습니다.



而第以博詢老農。則咸曰已發之穗。粒旣俱落。固無可論是白遣。至於未發之穗。若得風息後卽注以數日之雨。則庶或有更起結實之望云。而今者二十二日寅時以後。旋卽開霽。曝以秋陽。已至多日。則餘存之苗頹黏泥土者。日漸枯白。處處同然。可謂耳不忍聞。目不忍見是白乎所。


경험 많은 노인들에게 물어보니 모두 말하기를, "이미 이삭이 패어 나온 것들은 알곡이 다 떨어졌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아직 이삭이 나오지 않은 것들은 바람이 멎은 뒤 즉시 며칠 동안 비가 내렸다면 혹시 다시 일어나 결실을 맺을 희망이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22일 새벽 이후 곧바로 날이 개어 가을 햇살이 며칠째 내리쬐니, 진흙 속에 처박혀 있던 남은 싹들이 날로 말라 죽어 하얗게 변하고 있다"라고 합니다. 참으로 귀로 차마 들을 수 없고 눈으로 차마 볼 수 없는 광경입니다.



窃伏念年分形止。雖在遠期。已判之狀。無容更擧。則言念民事。膓肺堪裂是白乎所。第玆公廨之傾壓者。行將分緩急。取次繕葺是白乎旀。民屋之飄沒者。飭以搆補奠接之方急。先指揮於三邑各里是白乎。


가만히 생각건대, 농사 등급을 매기는 시기는 아직 멀었으나 이미 망친 형편이 명백하니 다시 거론할 필요도 없습니다. 백성들의 일을 생각하면 창자가 끊어지는 듯합니다. 우선 무너진 관아 건물들은 급한 정도를 따져 차례로 수리하겠습니다. 바람에 날려간 민가들은 서둘러 보수하여 백성들이 안정할 수 있도록 세 고을 각 마을에 지시를 내렸습니다.


乃至於荒政。計無所出。而盖本島土本至脊。雖逢大登。民無餘蓄。今於洗鐺待熟之際。忽遭掃地無餘之患。設賑一欵。勢不可待到開春是白乎等。以面里民戶之分等排巡。從實磨鍊。追後登聞計料爲白乎旀。


기근 구제 대책(황정)에 대해서는 도무지 대책이 서지 않습니다. 대개 이 섬은 땅이 워낙 척박하여 풍년이 들어도 백성들에게 남은 저축이 없습니다. 이제 막 솥을 씻고 곡식이 익기만을 기다리던 차에 갑자기 모든 것이 쓸려나가는 재앙을 만났으니, 진휼(기근 구제)을 실시하는 일을 내년 봄까지 기다릴 형편이 못 됩니다. 마을별로 가구 등급을 나누어 순찰하고 실정에 맞게 구제 방안을 마련하여 추후에 다시 보고하겠습니다.


伏以臣職在守土。値此酷灾。十數萬人口。將不免塡壑之歎。惶恐待罪緣由。幷以爲先馳啓爲白卧乎事是良厼。詮次。


엎드려 생각건대, 신은 이 땅을 지키는 직책을 맡아 이토록 가혹한 재앙을 만났으니, 10여 만 명의 인구가 굶어 죽어 구덩이에 굴러다니게 될까 두렵습니다. 황공한 마음으로 처벌을 기다리며 우선 급히 보고를 올립니다.



양헌수, 하거집제1권(荷居集卷之一)  啓(보고서) 편. 발췌. 
총체적난국 국역


태풍과 그로 인한 폭풍서지로 인한 염해, 해안 침식, 스웰파 현상까지 눈 앞에서 발생하는 듯 생생하게 묘사한 점이 인상 깊음.